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산만언니 지음, 푸른숲 펴냄

“그러니 당신도 살아 있으라.”

1995년 스무 살 나이에 슈퍼마켓 물품보관대에서 일당 3만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겪었다. 일터가 삼풍백화점이었다. 갑자기 바람이 불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얼굴이 피투성이였다. 어찌어찌 살아남았고, 사건 이후로도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 일을 잊고 살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 순간 ‘세상은 생존자가 침묵하는 딱 그만큼 불행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딴지일보에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의 생존자가 말한다’라는 글을 썼다. 그 글들을 모아 이번 책을 펴냈다. 저자는 “사는 동안 내내 사회적 약자 혹은 또 다른 사회적 참사 희생자의 이야기를 쓰고 말할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헤이트:우리는 증오를 팝니다
맷 타이비 지음, 서민아 옮김, 필로소픽 펴냄

“현대 뉴스의 미학적 특징은 끊임없이 고조되는 긴장감,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폭스뉴스는 미국 공화당·우파 성향 언론사로 알려져 있다. 편파적이고 선정적인 방송으로도 악명 높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즈음부터 MSNBC가 ‘대항마’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폭스뉴스와 반대로, 민주당에 동조하는 시청자들을 위한 일종의 ‘소비재’이다. 미국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어느 정당에도 동조하지 않는 강한 뉴스 방송사’가 사라지고 있다고 탄식한다. 책의 영어판 부제는 ‘오늘날 미디어는 왜 우리가 서로 경멸하게 만드는가?’이다. 스포츠 스타의 은퇴 결정이나 단순 절도 사건처럼 사소한 일을 두고서도 사람들은 죽기 살기로 논쟁한다. 엔터테인먼트가 된 언론이 배후에 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프로레슬링’이 되어버린 뉴스를 꺼버리는 게 시청자의 정신건강에 이롭다고 그는 말한다.

 

 

 

 

 

 

혼자의 넓이
이문재 지음, 창비 펴냄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의 미래입니다.”

세상은 자꾸 안 좋은 방향을 향해 굴러갔다. 임계 상황은 분명한데 임계점은 어디일지 근심했다. 염려와 질문 가운데 쓴 시들은 희망과 절망을 오갔다. 이문재 시인이 7년 만에 여섯 번째 시집을 묶었다. 올해는 시인의 등단 40주년이기도 하다. 생태와 환경에 대한 시인의 마음은 곧 인류에 대한 연민이기도 하다. 그에 따르면 ‘진정한’ 시인은 모두 미래를 근심하는 존재다. 우리가 함께 써내려가고 있는 지금의 이야기를 바꾸자고, 미래를 미래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그는 쓰고, 또 쓴다. 이번 시집에는 ‘혼자’라는 단어가 주요하게 다뤄진다. “혼자 있어보니/ 혼자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나는 나 아닌 것으로 나”(‘혼자와 그 적들’ 일부)이므로, “화이부동 존이구동”(‘혼자의 각성’ 일부) 할 것을 곡진하게 요청한다.

 

 

 

 

 

 

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1~2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강신준·김호균 옮김, 길 펴냄

“모든 경제학자들은 잉여가치를 이윤과 지대라는 특수한 형태로만 간주하는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세계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사상가다. 그러나 그들의 저작은 불운한 운명을 겪었다. 구소련과 동독이 그들의 전집(MEW)을 발간하긴 했으나 정치적 고려에 종속된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르크스의 중요한 초기 저작인 〈경제학 철학 초고〉는 소련·동독 체제의 정치적 입장과 다르다는 이유로 전집에서 빠지기도 했다.
이런 이유 등으로 20세기 초부터 두 사상가의 지적 유산을 정치적 왜곡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을 정도로 남김없이 발간하자는 프로젝트가 세계적 차원에서 전개되어왔다. 그 결실이 바로 독일어판 총 114권으로 구성된 ‘신(新)MEGA(마르크스·엥겔스 정본 전집)’다. 이 책 〈경제학 비판을 위하여〉는 ‘신MEGA’의 한국어판 출간을 시작하는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이동호 지음, 창비 펴냄

“고기 이전에 돼지가 있고, 돼지는 인간과 연결되어 있다.”

채식을 ‘지향’하고 싶지만 그조차 쉽지 않다. 도시 직장인에게 하루 한 끼만이라도 채식을 실천하는 일은 꽤 큰 동기부여와 실천력이 필요하다. 기후위기, 동물복지, 건강한 삶 등 채식을 하려는 데엔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들이 피부로 와닿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누구보다 ‘고기’를 좋아했던 저자는 20대 후반 귀촌을 택한 뒤 채식주의자가 됐다. 지역 축산업의 현실을 목격하고 생긴 문제의식 때문이다. 고민과 실천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 책에는 저자가 1년 동안 돼지 세 마리를 직접 키우고, 잡아먹은 경험이 고스란히 담겼다. ‘동물복지’ 사육은 가능한 일인가. 인간의 육식을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비슷한 질문을 품은 ‘비건’(혹은 비건 지향인)들이 반가워할 책이다.

 

 

 

 

 

 

다정한 무관심
한승혜 지음, 사우 펴냄

“개인주의자는 많은 이들의 오해와는 다르게 오히려 공동체를 소중히 여긴다.”

저자는 스스로를 ‘이름이 많은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한국인, 여성, 엄마, 아내, 가사노동자, 마감 노동자, 독자, 작가 그리고 개인주의자. 그는 개인주의가 한국 사회에서 잘못된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개인주의자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고 강변한다. 특정한 카테고리에 묶어 타인을 단순화하기보다는 인간의 복잡성과 입체성을 인정하고 읽어내려는 노력이 개인주의자의 자세다. 나와 다른 타인의 개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적당한 무관심의 사회. 그러면서도 곤경에 처한 사람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는 서로에게 다정한 사회. 개인으로 우뚝 서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저자는 바란다. 한국 사회의 만만치 않은 문제들을 ‘다정한 무관심’이라는 프레임으로 섬세하게 풀어냈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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