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원 그림

원고 마감이 코앞이지만 제주로 향했다. 바다보다 먼저 케테 콜비츠를 보러 갔다. 중산간에 새로 문을 연 포도뮤지엄 2층에 소박하고 깔끔하게 전시된 케테 콜비츠의 작품들이 있었다. 작품은 많지 않았다. 자화상 몇 점, 아이와 어머니들을 담은 판화들, ‘전쟁’ 연작 7점, 죽음에 관한 작품들과 ‘직조공 봉기’, ‘농민전쟁’ 연작 몇 점, 그리고 청동조각상 ‘여인과 두 아이’. 작으면 엽서 크기이고 커봐야 스케치북만 한 흑백의 판화들과 조각상이 전시실 하나를 여유롭게 채울 정도였다.

전시장 끝에 케테 콜비츠에 관한 영상 세 편이 상영되고 있었다. 그는 열여덟 살의 아들을 1차 세계대전에서, 20여 년 뒤 같은 이름의 손자를 2차 세계대전에서 잃었다. 영상을 통해 이런 어머니의 슬픔을 작품으로 형상화한 예술가의 고투를 보았다. 그가 죽은 아들을 기리며 제작한 조각상 ‘슬퍼하는 부모’와 ‘피에타’를 화면으로 보는 순간 숨이 막혔다. 아들의 죽음에 괴로워하는 어머니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눈물이 흘렀다.

몇 년 전 큰맘 먹고 간 유럽 여행길에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보았다. 뙤약볕에서 근 한 시간이나 줄을 서고 성당 경비원의 인종차별적 무례함까지 겪고 난 탓이었을까. 돌로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우아하고 섬세한 조각상이었으나 솔직히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다. 너무도 매끈하고 아름다운 성모의 모습은 아들을 잃은 기막힌 슬픔을 당한 어머니라기보다 무력한 젊은 여자처럼 보였다. 눈먼 폭력에 아들을 빼앗긴 어머니가 왜 이리 고요한가, 왜 이런 어머니상을 세상은 걸작이라 하는가. 고개를 갸우뚱하다 미술에 조예가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러나 케테 콜비츠의 ‘피에타’는 달랐다. 죽은 아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는 온몸으로 비통함을 드러내며 세상에 묻는다. 왜 내 아들이 죽었는가? 젊은 아들은 죽고 늙은 부모는 슬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가? 무엇을 위해 우리 아이들이 죽이고 죽는가? 죄지은 자들은 어디 있으며, 살아남은 우리는 이 죽음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징집 연령도 안 된 어린 아들이 자원입대를 고집했을 때 어머니인 그는 이를 허락했다. 자신의 깃발을 세우고 싶은 아들의 열망을 알기에, 조국을 위해 싸우려는 그를 축복하고 한 번도 내건 적 없는 국기를 내걸었다. 그리고 한 달도 못 돼 아들의 죽음을 통고받았다. 이후 그는 남은 생 내내 아들의 죽음 앞에서 느꼈던 회한과 절망과 질문에 답하기 위해 노력했다. “전쟁, 그리고 피터의 죽음에 생각이 미치면 뿌리에서부터 무너져내린다”라고 고백하면서도 그는 이 죽음을 직시하려 애썼다.

아들의 애국심을 승인했던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1918년부터 5년간에 걸친 목판화 ‘전쟁’ 연작을 통해 온 세상에 “참담한 과거”를 보여주었다. 전쟁은 그 어떤 미명으로도 합리화되지 않는다고 외쳤다. 18년 동안 매달린 추모비 ‘슬퍼하는 부모’상과 생애 말년에 완성한 작은 브론즈 ‘피에타’를 통해 그는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는 자신의 유언을 전했다. “이것은 ‘전쟁은 이제 그만!’에서처럼 소원이 아니라 명령이다. 요구다”라고 선언했다.

오랜 고투 끝에 그는 자신이 겪은 죽음이 아들들의 헛된 미망으로 버티는 차별적 구조의 결과임을 깨달았고, 이 모든 죽음·고통을 끝내기 위해서는 전쟁과 전쟁을 요구하는 이제까지의 세계질서를 끝장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인 뮤리얼 루카이저는 그를 기리는 시에서 말했다. “한 여자가 자기 삶의 진실을 말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세상은 터져버릴 것이다.”(‘케테 콜비츠’ 부분, 〈어둠의 속도〉, 봄날의책 펴냄) 그의 말처럼 케테 콜비츠의 깨달음은 이 끔찍한 세상의 허상을 드러내 터뜨렸다.

지킬 것은 이념이 아니라 나, 인간이다

죽기 얼마 전인 1945년 4월 손녀가 그에게 “할머니는 평화주의자냐?”라고 묻자 그는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평화주의자는 전쟁 반대자 그 이상이다. 평화주의는 새로운 이상이며 인류에 대한 사랑이다”라고 말했다.

케테 콜비츠를 만나고 돌아와 나는 평화학자이며 교육자인 베티 리어든이 쓴 〈성차별주의는 전쟁을 불러온다〉를 읽기 시작했다. 베티 리어든은 책에서, 인간의 특성을 여성성과 남성성으로 분리하고 위계화하는 성차별주의가 전쟁의 작동 원리임을 보여준다. 그는 남성을 전사로, 여성을 희생자로 키우는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의 취약함에 의존”하며, “전쟁 체제는 그러한 구조를 먹이로 삼는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여성들이 점차 취약한 존재로 남길 거부하고 희생자가 아닌 적으로 인식되는 걸 불사하면서 평등을 추구하자 더더욱 대규모의 살상무기가 개발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페미니즘이 무엇인가를 놓고 말들이 많다. 여성의 이익을 평등하게 챙기는 것이 페미니즘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제껏 남성이 누렸던 것과 똑같은 이익과 권한을 누리는 것은 내 목표가 아니다. 지금까지의 체제에서 기득권을 누렸던 이들처럼 어리고 약한 존재를 타자화하고, 무력으로 다른 세계를 식민화하며, 그들의 노동과 헌신에 기대 살면서도 고마운 줄 모르는 철면피한 존재이기를 나는 원하지 않는다.

내게 페미니즘은 무엇보다 차별을 부추기는 세상에 대한 저항이고, 모두가 평화롭게 자신을 드러내고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으로 가는 하나의 길이다. 만약 그것이 페미니즘이 아니라면 나는 기꺼이 페미니즘을 버릴 것이다.

지킬 것은 이념이 아니라 나, 인간이다. 평화는 누구도 상처 입지 않고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려는 의지의 실천이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고 그래서 해볼 만한 일이다.

기자명 김이경(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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