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8일 충남 야생동물구조센터 수술실에서 심규형 수의사가 새끼 고라니를 마취하고 있다. ⓒ김흥구

새끼 고라니였다. 몸길이는 40㎝ 정도, 태어난 지 2주쯤으로 추정됐다. 6월28일 충남 부여의 화훼 농가에서 구조된 새끼 고라니는 구조 상자 속에서 큰 눈을 껌뻑이며 사람을 쳐다봤다. 고개를 돌리자 머리 왼편의 상처가 보였다. 구더기가 들끓고 있었다. 하루 이틀 된 상처가 아니었다.

상처를 유심히 살펴보던 수의사는 안락사 결정을 내렸다. 치료하더라도 방생 후 자연에서 생존할 가능성이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게 신기한 수준이에요.” 심규형 수의사가 말했다. 새끼 고라니의 주둥이에 마취 기구가 씌워지자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이어 심장에 안락사 주삿바늘이 꽂혔다. 심장에서 나온 피가 주사기 통 속 용액에 번지다가 이내 다시 심장으로 주입되고, 새끼 고라니의 심장박동이 멈췄다. 사체가 멸균 비닐 백에 담기며 모든 과정이 끝났다. 새끼 고라니의 ‘이름’은 21-1182. 올해 1182번째로 구조된 야생동물이었다.

새끼 고라니가 짧은 생을 마감한 곳은 충남 예산군 예산읍에 위치한 충남 야생동물구조센터(충남 구조센터)다. 환경부와 각 시도 지자체에서 직영 또는 위탁으로 운영하는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구조센터)는 현재 전국에 16곳이 설치돼 있다. 각 구조센터는 해당 지역에서 조난 또는 부상당한 동물을 발견한 시민들의 신고를 접수받고 현장으로 출동해 동물들을 구조한다. 전국 구조센터에서 한 해 동안 구조한 야생동물은 지난해 기준 1만5397마리였다. 구조된 동물들을 치료와 재활훈련을 거쳐 자연에 방사하는 것도 구조센터의 임무다. 매번 이 과정을 완수하지는 못한다. 구조나 치료 과정에서 폐사하거나, 방생 가능성이 현격히 낮아 안락사시킬 수밖에 없는 야생동물도 많다. 충남 구조센터에서 6월28일부터 이틀간 〈시사IN〉 기자가 지켜보는 동안에도 수많은 야생동물이 신고·구조·치료·폐사(안락사)되었다.

여름은 구조센터가 매우 바쁜 계절이다. 혼자 헤매는 새끼 동물들이 가장 많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야생동물은 늦봄에서 초여름 사이에 새끼를 낳아 기르기 시작한다. 그래서 여름이면 아직 독립적인 개체로 성숙하기도 전에 여러 사정으로 어미 품에서 벗어나버린 새끼 동물이 아프고 다치고 굶주린 채로 인간의 눈에 띄기 쉽다. 여름의 초입을 지나가던 6월28일 하루에만 박새·흰뺨검둥오리·멧비둘기 등 야생동물 12마리가 구조돼 충남 구조센터로 들어왔다.

야생동물들의 입소 예정 소식을 듣고 김리현 재활관리사는 고민에 빠졌다. 충남 천안에서 구조돼 들어오기로 한 흰뺨검둥오리 3마리 때문이다. 이들을 계류시킬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흰뺨검둥오리는 자신들의 무리가 아니면 배척하고 공격하는 습성 때문에, 같은 종이어도 별도의 계류 공간이 필요하다. 충남 구조센터에서 일하는 김리현 재활관리사는 “이전에는 웬만큼 고민하면 그래도 답이 나왔는데 지금은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이곳의 계류장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충남 야생동물 구조센터에 붙은 6월의 야생동물 구조 및 결과 현황표. ⓒ김흥구

인건비 늘면 동물에게 쓸 예산 주는 딜레마

매년 구조 개체 수는 증가하지만 그와 비례해서 관리하고 치료할 공간은 늘어나지 못하고 있다. 직원들이 사용하는 공간을 동물들에게 내어주며 근근이 버티는 실정이다. 충남 구조센터 복도 한편은 지금 ‘새끼 동물’ 입원실로 사용되고 있다. 계류장이 부족해 급한 대로 새장 등을 개조해 만들었다. 그마저도 부족해 한 케이지에 다른 종을 함께 넣기도 한다.

6월20일 구조된 새끼 고라니와 6월25·27일에 각각 구조된 새끼 너구리 두 마리를 어쩔 수 없이 한 케이지에 넣었다. 고라니는 농기계에 다쳐 몸에 상처가 났는데 그곳을 새끼 너구리가 발톱으로 긁거나 혀로 핥을 것이 직원들의 걱정거리였다. 임시로 천을 이용해 두 종 사이를 분리했지만 너구리가 그 사이를 넘나드는 걸 막지 못했다. 결국 철망으로 한 케이지를 둘로 나눠놓았다.

이곳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8년 기준 전국 구조센터의 1년 평균 수용률은 138%에 달했다. 성수기(여름)에는 239%까지 증가한다. 빽빽한 계류장 안에서는 다친 야생동물들이 휴식을 취하며 야생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만큼 회복되기가 쉽지 않다.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치료 효율은 낮아진다.

6월28일 오후 3시쯤, 재활관리사들이 야생동물들의 먹이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우유, 밀웜에서부터 메추라기, 병아리까지 다양한 먹이를 저울에 계량하며 정해진 중량을 넘지 않도록 체크했다. 충남 구조센터는 최근 동물들이 남기는 먹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운영비 증액 속도가 구조 개체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다. 김리현 재활관리사는 “이제껏 동물들 먹는 것에는 인색하게 군 적이 없었는데, 점점 운영비가 빠듯해 넉넉하게 줄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치료 장비도 열악하다. 6월28일 오후 4시께, 수의사 두 명은 지난 6월5일 천안에서 구조돼 들어온 황조롱이의 엑스레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상완골(사람의 팔뚝에 해당) 골절상을 입은 황조롱이의 뼈가 잘 붙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촬영을 마치자마자 기계에서 마찰음이 나기 시작했다. 오예은 수의사는 기계가 지난 4월부터 저 모양이라고 말했다. “원래는 삑 소리가 나고 끝나야 하는데, 계속 뭔가 갈리는 소리가 난다. 어제는 뭔가 ‘펑’ 하는 소리도 났다. 고쳐야 하는데 이 기계를 만든 회사가 이미 망했다.”

아쉽지만 부실한 대로 쓸 수밖에 없다. “만약 엑스레이마저 없다면 기초적인 진단도 안 된다. 만져보고 추측해서 진단해야 한다.” 새 기계를 사기 위해 필요한 돈은 3000만원. 올해까지만 쓰고 내년엔 어떻게든 다른 부문의 허리띠를 졸라매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기계가 올해를 무사히 버텨줄지 위태로운 상태다.

지난 10년간 계속 운영돼온 전국 11개 센터의 구조 개체 수는 2011년부터 2020년까지 평균 194% 증가했다. 그러나 운영비 증가는 이에 못 미치는 147%(국비 기준)였다. 인건비 일부가 별도로 지원되는 직영 구조센터의 상황은 나은 편이다. 운영비 내에서 인건비를 모두 부담해야 하는 9개 위탁 구조센터는 그야말로 ‘제로섬 게임’에 놓여 있다. 빠듯한 예산을 야생동물에게 더 쓸 것인가, 인건비에 더 들일 것인가 선택해야 한다. 동물을 잘 구조하고 먹이고 치료하려면 사람(인건비)이 넉넉해야 하는데, 직원이 늘어나면 동물에게 쓸 예산이 줄어든다.

인력 충원도 쉽지 않다. 과로와 낮은 급여 수준으로 인해 이직률이 높고 지원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 직종인 수의사의 경우 인력 수급 문제가 더 심각하다. 2018년 기준 전국 구조센터의 수의사 필요 인원 대비 충원율은 39%에 그쳤다. 충남 구조센터의 경우에도 두 달 전 수의사 채용 공고를 올렸지만, 지원자가 없어서 채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안정적인 고용도 어렵다. 2018년 기준 전국 구조센터 직원 전체 55명 중 74%가 계약직이다.

공간·장비·인력 등 모든 부문에서 나타나는 구조센터의 예산 부족 문제를 소관 부처인 환경부도 모르지 않는다. 환경부 관계자는 “부족한 예산을 확보하려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올해도 기획재정부에 예산 증액 요구를 해놓은 상태다”라고 답했다. 구조센터 종사자들은 예산 증액과 더불어 구조센터별 적절한 평가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구조 동물 수가 많다고 무조건 많은 예산을 배정받는 것이 아니라, 어떤 동물을 어떻게 구조하고 어떻게 치료하고 어떻게 방사하는지 등에 대한 복합적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6월29일 오전 11시, 이기민 재활관리사는 충남 태안군 안면도로 구조 야생동물을 인계받으러 나섰다. 태안군청에서 구조 업무를 위탁받은 민간 구조사가 현장에서 구조한 괭이갈매기와 황조롱이였다. 황조롱이 새끼(유조)는 미아로 발견돼 탈진한 상태였고, 괭이갈매기는 오른쪽 날개가 완전히 꺾여 날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을 데리고 구조센터로 돌아가는 중간에도 끊임없이 구조 요청 전화가 걸려왔다. 충남 보령의 국도에서 차에 치인 고라니, 충남 아산의 한 주택에서 쥐 끈끈이에 잡힌 참새를 구조해달라는 전화였다. “여름엔 구조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가을쯤 돼서 본격적인 재활훈련을 하고 자연에서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상태가 되면 방사하죠. 오래 걸리는 경우 방사까지 2~3년 걸리기도 해요. 그래도 방사가 가능하면 운이 좋은 편이죠. 오늘 구조한 괭이갈매기는 좀 가능성이 낮아 보이네요.” 운전대를 잡은 이 재활관리사가 말했다.

6월29일 이기민 재활관리사가 충남 태안군에서 민간 구조사에게 괭이갈매기를 인계받고 있다. ⓒ김흥구
6월28일 충남 야생동물 구조센터의 대형조류재활비행장에서 수리부엉이가 비행 연습을 하고 있다.ⓒ김흥구
총상으로 오른쪽 날개를 잃은 흰꼬리수리는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6년째 머무르고 있다.ⓒ김흥구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비율 35%

충남 구조센터에서 구조한 동물 중 자연으로 돌아가는 비율은 약 40%이다. 전국 평균으로도 구조센터에 들어온 야생동물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비율은 35% 정도다. 충남 구조센터에 6년째 머무르고 있는 터줏대감 흰꼬리수리(16-053)도 원래 이 ‘운이 좋은’ 축에 든 야생동물 중 하나였다. 흰꼬리수리는 2015년 충남 서산에서 밀렵꾼의 총에 맞은 뒤 충남 구조센터에 구조돼 원래 ‘15-009’라는 이름을 얻었다. 당시 11개월간의 치료와 재활 끝에 GPS 추적기를 달고 야생에 방사됐다. 그로부터 3개월 뒤 흰꼬리수리는 다시 구조센터로 돌아왔다. 또다시 총상으로 추정되는 부상을 입고서였다. 이번에는 오른쪽 날개를 아예 적출해야 했다. 한쪽 날개를 잃은 흰꼬리수리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생존할 확률은 0%에 가깝다. 흰꼬리수리는 생태계 파괴의 증인으로서 자연과 인간 사이의 경계인 구조센터 야외 계류장에서 6년째 한쪽 날개를 퍼덕이고 있다.

“사실 냉정하게 말해서, 야생동물구조센터가 생태계 복원에 큰 역할을 한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10년 넘게 충남 구조센터에서 활동해온 김봉균 재활관리사의 이야기다. 그러면 왜 구조센터 예산을 늘려야 할까? 야생동물이 자연 속에서 알아서 먹고살고 다치고 회복하고 태어나고 죽게 놔둬도 되는 건 아닐까? 인간이 신경 쓰고 돈과 품을 들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봉균 재활관리사는 야생동물구조센터의 존재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은 야생동물과 늘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그것을 매일 인지하지는 못해요. 역설적으로 사람이 야생동물의 존재를 확인할 때는 그들이 다치거나 죽어서 사람 눈에 띄었을 때죠. 저희들은 매일 보는 광경이지만, 구조를 요청한 일반 시민에게 그 동물은 자연생태계 그 자체예요. 그때 제대로 된 조치가 취해진다면 그 신고자는 야생동물이 인간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인지하고, 인간이 도와줄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앞으로도 변화할 거예요. 야생의 자연이 우리 인간과 연결되고 관계 맺는 그 지점에 우리 같은 야생동물구조센터가 있고, 이런 곳들을 통해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인식과 행동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어요.”

기자명 예산·주하은 수습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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