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정치 기사를 쓰면서 법안을 들여다볼 기회가 종종 있었다. 서울 양천구 아동학대 사망 사건과 정의당 당대표 성추행 사건, 민주당 언론개혁 법안을 한 주씩 다뤘는데 사안은 달랐지만 ‘강한 징벌’에 대한 요구가 공통적으로 있었다. 법대로 처리하고 법이 부족하면 처벌 수위를 강화해서라도 가해자를 징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쉽게 찬성표를 얻었다. 그에 비해 처벌이 능사가 아닌 이유를 설명하는 일은 고되고 복잡했다. 어떻게 아동학대 대응 현장을 망가뜨리고 성폭력 피해자의 자리를 지우는지 말이다.
법으로 처벌만 하면 끝일까? 사법절차로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 가능한가? 취재를 하며 쌓였던 고민들이 이 책을 읽으며 조금이나마 해소되었다. 현직 판사가 실제 재판 과정에서 회복적 사법의 관점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을 담았다. “판결 이후 남은 피해자의 고통과 회복되지 않은 피해, 깨어진 관계와 파괴된 공동체. 재판과 판결의 뒤에 남겨진 이것들은 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가.” 2012년 형사재판을 담당하던 그가 마주했던 질문이다. 임 판사는 피해 당사자가 형사재판에서 철저히 수동적 입장에만 놓여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법정이라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피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도록 한다. 때로는 가해자 처벌이나 금전배상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한국의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도는 42개국 중 39위로 낮은데(2015년 OECD), 민형사 소송 건수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법정에 서는 것은 연루된 모든 이들의 삶이 무너지는 경험에 비유되곤 한다. 한국 사법체계는 이런 ‘2차 피해’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능했다. 회복적 사법은 ‘처벌 강화’라는 쉬운 선택 대신 복잡하고 고된 대화의 과정을 이끌어내는 일이다. 저자는 “법원이 작금의 사법 불신을 극복하는 하나의 좋은 통로가 ‘회복적 사법’ 제도화의 모색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읽는 내내 법의 존재 이유를 새롭게 질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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