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어린이집 차량이 서지 않고 지나갔다. 5월13일 오후 5시, 집 앞에서 두 동생을 기다리던 민주(가명·8)는 다시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둘째 민서(가명·6)와 셋째 민희(가명·3)가 왜 어린이집 차에서 내리지 않았는지 알 수 없었다.
한 시간 뒤 공장에서 퇴근해 돌아온 엄마 흐엉 씨(가명·33)는 집에 첫째 아이만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아이들의 행방을 찾기 위해 흐엉 씨가 어린이집에 전화를 거는 도중 둘째와 셋째가 집으로 돌아왔다. 경기부천 아동보호전문기관(부천 아보전) 상담사 두 명과 함께였다. 그들은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왔다며 첫째 아이와도 따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첫째 아이의 면담이 끝난 뒤 흐엉 씨는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차례로 목욕시켰다. 아이들 몸을 닦으며 욕실에서 나오는 순간 누군가 대문을 두드렸다. 첫째가 현관을 열자 경찰 대여섯 명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경찰이 흐엉 씨에게 신분증을 달라고 했지만 그는 보여주지 못했다. 흐엉 씨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다. 그가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서류는 ‘보호일시해제기간 연장결정서’라는 종이 한 장뿐이었다. 미등록 아동(국내에 체류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지 못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아이)인 첫째와 둘째, 그리고 유일한 등록 아동인 셋째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일시적으로 그의 국내 체류를 허가하는 서류였다.
부천 아보전 상담사는 흐엉 씨에게 “아이들을 때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왜 때렸느냐”라고 물었다. 흐엉 씨는 이미 아동학대로 한 차례 신고당한 적이 있었다. 1년여 전인 2020년 7월이었다. 당시에도 상담사는 경찰과 함께 흐엉 씨의 집을 방문해 아이들과 따로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의 몸에 학대 흔적이 있는지 살핀 뒤 돌아갔다. 흐엉 씨는 그때 ‘아동학대’라는 한국어 단어를 처음 들었다. 당시 그는 “혼자 아이 셋을 키우다 보니 스트레스받고 힘들어서 아이들에게 가끔 소리 지른 적은 있지만 때린 적은 없다”라고 학대 혐의를 부인했다. 상담사는 “아이들을 때리면 안 된다. 잘 챙겨주고 보호해달라”라고 당부하고 돌아갔다.
5월13일에 들어온 이번 아동학대 신고로 흐엉 씨는 ‘재학대’ 가해자가 됐다. 지난 3월30일부터 시행된 아동복지법 제15조 6항에 따라 아이를 가정에서 ‘즉각 분리(일시보호조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즉각 분리란 ‘1년 이내에 2회 이상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된 아동’ 중 재학대가 발생할 위험이 있는 아이를 시설이나 쉼터 등으로 보내 보호하는 절차다. 2020년 10월, 생후 16개월이었던 정인이가 부모에게 학대당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을 계기로 불과 두 달 만에 국회를 통과한 제도다.
그동안 피해 아동을 분리해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 제12조에 따르면 ‘응급조치’를 통해 피해 아동을 보호시설로 분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응급조치는 72시간이라는 시간제한이 있고, 법원의 결정이 필요하다. 반면 즉각 분리는 시간제한이 없고, 아동학대 현장에 나간 사람들이 즉시 결정할 수 있다. 사법적인 통제를 덜 받는 방식인 셈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응급조치’에 올해 3월부터 시행된 ‘즉각 분리’가 추가되면서 아이들은 더욱 안전해졌을까. 그리고 더 행복해졌을까.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한 지역 아보전 관계자 ㄱ씨는 “현장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위에서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내리꽂았다. 경찰이든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해당 지역에 전담 공무원이 없을 경우 아보전 상담사가 그 역할을 대신함)이든, 아동 분리를 결정하는 데 부담을 많이 느낀다. 누가 봐도 명백히 분리해야 하는 사례는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애매한 경우가 훨씬 많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출동한 사람은 ‘판단’을 해야 한다. 제한적인 정보와 시간 속에서 자칫 훗날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는 ‘잘못된 선택’을 피하기 위해, 담당자들은 최대한 위험을 줄이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ㄱ씨는 말했다. “아동학대 대응 매뉴얼에는 즉각 분리를 고려하라고 쓰여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분리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갑자기 문 두드리고 들어와서
두 번째 아동학대 신고를 받고 흐엉 씨의 집을 방문한 부천 아보전 상담사는 응급조치를 결정했다. 경찰은 흐엉 씨에게 아이들의 옷가지를 간단히 챙겨달라고 말했다. 흐엉 씨가 “아이를 때린 적 없다”라며 아이들과의 분리를 거부하자, 부천 아보전 상담사는 “혹시 남자친구가 아이들을 때린 적은 없는지” 물었다. 흐엉 씨는 이번에도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이 남자친구의 개인정보를 알려달라고 하자 흐엉 씨는 그럴 수 없다고 답했다. 남자친구 역시 미등록 이주노동자였기 때문이다.
분위기는 점점 나빠졌다. 경찰이 재차 아이들 짐을 챙겨달라고 말하자 흐엉 씨는 무릎을 꿇고 “아이들을 데려가지 말라”라고 애원했다. 세 아이도 가기 싫다며 무릎을 꿇고 울었다. 경찰은 흐엉 씨에게 “업무방해죄로 체포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흐엉 씨는 ‘업무방해’라는 한국어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 출동한 경찰과 아보전 상담사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통역 없이도 의사소통을 하는 데 별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지만, 현장에 통역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대화는 계속 맴돌고 부딪쳤다. 계속해서 “안 된다”라고 말하는 흐엉 씨와 “업무방해”를 이야기하는 경찰을 번갈아 바라보던 첫째 아이가 엄마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엄마, 내가 안 따라가면 엄마는 업무방해라고 벌받아. 나 혼자 갔다 올게. 가서 내 사진 찍어서 보내줄게.”
둘째 아이 민서는 침대 위에서 무릎을 꿇고 울며 빌기 시작했다.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데려가지 마세요.” 당시 상황을 떠올리던 흐엉 씨는 잠시 말을 멈췄다. “민서 모습, 아직도 너무 마음 아파요. 제가 ‘민서 잘못한 거 없어’라고 했어요. 상담 선생님도 ‘민서 잘못 없다’고 말했어요. 그래도 민서는 계속 무릎을 꿇고 이렇게 두 손을 싹싹, 싹싹 (빌었어요)….”
아동학대 사건을 주로 다루는 김예원 변호사(장애인권법센터 대표)는 즉각분리제도 도입 이후 ‘죄는 어른들이 짓고 죄책감은 아이들이 갖는’ 분리 현장이 부쩍 늘었다고 우려했다. “아동학대가 사실이고 분리가 필요하다고 해도, 아이들이 받을 충격을 줄이는 게 최우선이어야 한다. 갑자기 문 두드리고 들어와서 ‘신고가 접수되어 아이들이 가야 하니까 짐을 챙겨라’는 식으로 통보할 게 아니라, 아이가 낯선 환경에 가서도 불안해하지 않도록 상황을 명확하게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가난하고 못 배웠으면 애 낳지 말란 신호 같아” 기사 참조).”
‘아동학대 유관기관 공동업무 수행지침’에 따르면 피해 아동을 보호시설로 데려갈 경우 반드시 서면을 통해 당사자의 동의를 확인해야 한다. 해당 서식에는 ‘분리보호 취지와 목적 및 내용에 관한 사실은 피해 아동의 연령, 장애 유무, 언어발달 수준 등을 고려하여 피해 아동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조치자(경찰·공무원 등)에 의해 설명되었음’을 확인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러나 이 지침이 현장에 적용되기는 쉽지 않다.
김예원 변호사는 “즉각분리제도가 시행된 뒤로 아동이 분리될 당시 해당 동의서를 받았다는 경우를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사람의 몸을 이동하고 구속하는 중요한 법인데, ‘2회 이상 신고 시 즉각 분리’라는 허술한 법 한 줄만 추가되고 나머지는 모두 매뉴얼에 의존해 현장에서 처리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아동의, 시민의 기본적인 권리가 무시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흐엉 씨의 세 아이 역시 분리 당시 동의서를 작성하지 못했다.
피해 아동을 대변하는 전문가들은 학대 행위자인 어른이 아니라, 학대 피해자인 아동을 중심에 두고 아동보호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동학대 사건을 다수 맡아온 김영주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분리제도의 목표가 ‘가정이 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하도록 돕기 위한 일시정지’이지 ‘영구 분리’가 아니라고 말했다. “아동학대 사건은 특수성이 있다. 아이들은 학대를 당했을지라도 부모에게 애착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 애착에 대해 ‘잘못된 그리움’이라고 말해선 안 된다. 그런 말을 들으면 아이들은 굉장히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워한다. 당장 아이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더라도 ‘지금 보호자가 보고 싶겠지만 일정 기간 이후에 만나야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시켜야 한다. 기간도 명확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힘든 시간을 잘 견딜 수 있다.”
“편지 써주세요. 제발요, 엄마”
흐엉 씨의 세 아이는 결국 당일 밤 아동보호시설로 분리됐다. 엄마가 준비 중이던 저녁도 먹지 못한 채였다. 이동할 차량에 타서도 울고 소리치는 아이들을 보며 흐엉 씨는 “잠깐 진정이라도 시키고 데려가면 안 되나. 엄마가 너희를 버리는 게 아니라는 것만 말해주고 싶다”라고 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흐엉 씨는 곧바로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돼 수갑을 찬 채 경찰서로 끌려가 새벽까지 조사를 받았다.
흐엉 씨의 아이들은 7월20일 현재까지 경기도의 한 아동보호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아이들이 떠나고 사흘 뒤 흐엉 씨는 ‘응급조치’가 ‘즉각 분리’로 바뀌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분리 기간이 언제까지 될지 모른다는 의미였다. 법원으로부터는 ‘임시조치 결정서’를 받았다. 그날부터 두 달 동안 아이들 부근 100m 접근을 금지하고, 휴대전화나 메일로 연락을 취하지 말 것을 명령하는 문서였다(현재 해당 명령은 2개월 더 연장됐다). 아이들이 어떤 종류의 시설에서 지내고 있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흐엉 씨는 혹시라도 아이들이 ‘엄마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낄까 봐 가장 두렵다고 했다.
그나마 6월29일부터 매주 상담과 교육을 받기 시작하면서 글을 쓸 수 있는 첫째 아이로부터 첫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는 큼직하고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편지 써주세요. 제발요, 엄마.” 흐엉 씨는 서툰 한국말이 빼곡하게 적힌 답장을 썼다. 그가 쓴 편지가 아이들에게 전해질지는 불확실하다.
6월30일 흐엉 씨는 경찰 조사를 받았다. 학대 혐의를 함께 받는 흐엉 씨의 남자친구도 자진 출국을 앞두고 자발적으로 경찰조사를 받았다. 이 사건이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된다면, 사법 절차가 끝날 때까지 아이들은 시설에 분리돼 있어야 한다. 이후 가정 복귀 과정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정 복귀 관련 절차가 복지부의 ‘매뉴얼’에 적혀 있기 때문이다. 이 매뉴얼은 법도 시행령도 아니다. 공개되어 있지도 않다.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알지 못하는 매뉴얼에 따라 이 제도가 굴러간다. 흐엉 씨의 국내 체류기간이 만료되고 더 이상 갱신되지 않는다면, 그는 강제 추방될 수 있다. 그러면 세 아이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보호시설에서 살아야 한다.
흐엉 씨나 흐엉 씨의 남자친구가 실제 세 아이를 학대했는지 아닌지는 조사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다. 통역사의 도움과 서툰 한국어로 전해들은 흐엉 씨의 말들이 모두 사실인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하다. 설령 아동학대가 사실일지라도 그 벌을 어른들이 아닌 아이들이 받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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