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 바로 드러나듯이, 이 책은 〈브레멘 음악대〉를 모티프로 삼았다. 사람을 위해 뼛골 빠지게 평생을 일했건만 나이 들고 쓸모없어졌다는 이유로 학대당하거나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한 네 동물, 당나귀와 개와 고양이와 닭이 음악대가 되겠다며 브레멘으로 향한다.

옛이야기치고는 드물게 ‘브레멘’이라는 명확한 현실 도시 이름이 나오고, 왕자나 공주, 결혼이나 황금, 요정이나 거인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평범해 보일 수 있겠지만, 어린 시절 나에게는 그 어떤 현란한 마법담보다 더 매혹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랬던 건지, 지금도 이 이야기는 수많은 작가들이 다시 쓰고 그린다. 수많은 매체에서 끊임없이 재탄생한다.

브레멘은 무엇일까, 음악대는 무엇일까. 이 질문부터 해보자. 브레멘은 어쩐지 독자적인 나라 같다. 자유무역이 부흥했던 자유와 자본의 도시고, 노동자와 좌파의 도시로 불릴 정도로 급진적 결기가 넘치고, 녹색당이 독일에서 처음 진출할 만큼 혁명적이다. 축제 전통이 깊고, 축제에는 음악이 빠질 수 없다. 그러니 브레멘은 자유, 혁명, 자본, 대중오락, 예술이 뒤섞인, 모순과 활기가 넘치는 이상향이었을까.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절망에 빠진 존재들이 꿈에 그릴 만한 목적지였을까. 하지만 19세기 초 독일의 네 동물은 브레멘에 가지 않는다. 가는 길에 도둑들을 내쫓고 음식과 금화를 차지한 뒤 눌러앉는다. ‘음악대’가 브레멘을 향해 떠나는 동기로 보이기는 하지만 최종 목적은 아니었던 것이다. 평생 노동의 대가로 누려 마땅한 집과 음식과 금화를 확보한 그들은 굳이 브레멘에 가지 않는다.

21세기 초 한국의 네 동물은 브레멘에 결국 가지 못한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 나이 들고(당나귀), 장애인이고(고양이), 임시고용인이고(개), 무허가 좌판상인(닭) 동물들은 브레멘으로 가자는 말조차 꺼내지 못한다.

브레멘은 어쩌면 없는 곳이다

작가만이, 본문도 아닌 앞면지에, 미안한 듯 살짝 교통표지판과 영화 광고판에 언급할 뿐이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허공에. 그들이 만난 네 도둑에게는 금화와 음식 대신 꼬르륵거리는 배와 좌절만 있을 뿐이다.

성실하게 살았든 도둑질하며 살았든, 그들은 모두 빈털터리다. 서로 쫓고 쫓기는 대신 힘을 합친 동물과 도둑. 함께 차린 식당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장면이 나오지만 그건 상상에 불과하다. 이야기는 그들이 그릇을 빌리고 페인트칠을 하며 개업을 준비하는 뒷면지와 함께 끝난다.

약자들의 연대가 따뜻하고 희망찬 기대를 준다고 말하고 싶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도둑들은 여전히 복면을 벗지 못했고, 연대에는 균열이 보이기 때문이다. 무해한 유머와 불길한 풍자가 요소요소에 활력을 주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이야기는 우울하다. 부적응자는 가차 없이 버리는 거대 자본과 어설픈 좀도둑은 오히려 응원하고 싶게 만드는 거대 사기가 내리누르는 사회가 보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는 연민의 시선을 갖고 있지만, 브레멘은 어쩌면 없는 곳이며, 그곳을 향한 희망은 너무나 실낱같다고 말하는 이 책이 아프다. 

기자명 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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