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김건희가 덫에 빠진 피해자? 국민을 ‘졸’로 보나!” [김은지의 뉴스IN] 장일호 기자 ■ 방송 : 시사IN 유튜브 〈김은지의 뉴스IN〉(월~목 오후 5시 / https://youtube.com/sisaineditor)■ 진행 : 김은지 기자■ 출연 : 박지원 전 국정원장“윤석열·한동훈 만나서 3시간 동안 민생 얘기? 누가 그걸 믿겠나”“남미 언론까지 김건희 명품 가방 수수 다뤄… 이런 망신을 국민이 왜 받아야 하나”“김대중·노무현은 임기 중 150회 기자회견, 윤석열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 한 번뿐”“김건희가 덫에 빠진 피해자? 집권여당이 국민을 ‘졸’로 보나”“김건희 최재영에게 북한 관련 책 받았다면 국가보안법 내가 기자로 일하는 이유 [미디어 리터러시] 김달아 (⟨기자협회보⟩ 기자) 모르는 이름으로 이메일이 오면 멈칫하게 된다. 반가운 소식보다는 부정적인 내용일 때가 더 많아서다. 지난 3월 어느 날 퇴근길에도 그랬다. ‘김달아 기자님을 응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이메일이 왔다. 의심할 수밖에 없는 흔한 수법이다. 긍정적 표현의 제목으로 클릭을 유도하지만, 막상 이메일을 열어보면 욕하거나 횡설수설하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마침 옆에 있던 기자 동료가 먼저 읽어보겠다며 나섰다. 정신 건강을 위해 나쁜 글이면 그냥 넘기고, 좋은 글이면 내게 보여주겠다고 했다.이메일을 연 순간 동료의 표정이 밝아졌다. 검열(?)을 ‘3·7 완전작전’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주는 교훈 [김형민PD의 역사 속으로] 김형민 (SBS Biz PD) 파국적이라는 표현이 걸맞을 인구절벽 문제로, 전쟁 이후 유지해온 ‘60만 대군’ 한국군의 편제도 바뀌는 중이다. 오랜 전통을 지닌 ‘메이커 사단’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술자리에서 기묘하게도 사라지는 부대 출신들이 많아 한동안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가 안줏거리로 올랐다. 그때 “우리 부대는 절대 안 없어진다”라며 기염(?)을 토하는 이가 있었다. 3사단 출신이었다. 이른바 백골부대.어느 사단인들 피맺힌 사연 한 자락 없을까마는 3사단 역시 우리 현대사, 6·25 전쟁사와 깊고도 짙게 엇갈리는 역사를 지니고 있 북한 출신 납치 소년, 67년 한을 풀었다 정희상 기자 남한 특수부대원들에 의해 납치된 북한 소년 김주삼이 67년 만에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이겼다. 1956년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김씨는 그해 10월10일 밤 고향인 북한 황해도 용연군 용연읍 자택에서 잠자던 중 몰래 침투한 한국 공군 특수부대에 의해 납치됐다. 이어 서울 구로구 오류동 군부대에서 4년간 강제 노역을 해야 했고, 풀려나서도 잠재적 대공 용의자로 취급돼 평생 감시와 사찰을 당했다(〈시사IN〉 제778호 ‘납치 소년 김주삼의 60년 망향가’ 기사 참조). 김주삼씨 사건은, 한국전쟁 휴전 후 첩보활동 명목으로 북한 민 ‘간첩조작 수사 공작’ 무대로 형제복지원 활용한 박정희·전두환 정권 정희상 기자 오랜 세월 정부 차원에서 형제복지원장 박인근의 범죄를 비호하고 진실을 은폐한 배경에는 뿌리 깊은 공안 유착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은 형제복지원 원생들을 처음부터 잠재적인 공안 위해 사범으로 간주했다. 박인근 원장은 1975년 하반기부터 형제복지원 수용 인원이 갑자기 늘어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주장했다. “1975년 광복절에 조총련 공작원 문세광에 의해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이 발생하자 북한이 대남 공작의 일환으로 조총련을 간첩으로 훈련시켜 양아치와 부랑아로 가장해 활동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 당국이 반공 방첩 차원에 납치 소년 김주삼의 60년 망향가 정희상 기자 “지금도 북에 있는 가족과 고향 생각으로 밤잠을 못 이룬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사는 김주삼씨(85)는 국토 분단이 낳은 이산가족이다. 하지만 여느 이산가족과는 사정이 사뭇 다르다. 그는 귀순자나 피란민 출신이 아니다. 북한 황해도에서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어느 날 밤, 영문도 모른 채 괴한들에게 납치돼 남한으로 끌려왔다. 괴한은 우리 군에서 파견한 북파공작원 세 명이었다.김주삼씨 납치가 발생한 때는 1956년 10월10일 자정 무렵. 황해도 용연군 용연읍 한 농가에 백령도에서 위장 어선을 타고 북방한계선(NLL)을 이시원 검사는 진짜 ‘간첩 조작’ 몰랐을까 김은지 기자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 당시 수사·기소·공판을 담당했던 이시원 검사가 윤석열 정부의 고위공직자로 복귀했다. 대통령비서실장 직속인 공직기강비서관(1급)으로 임명됐다. 민정수석 자리가 사라지면서 대통령과 공직기강비서관의 거리는 더 가까워졌다. 그만큼 대통령 측근이라는 뜻이다.공직기강비서관은 내부감찰과 사정 등을 담당한다. 이 비서관 임명이 적절한 인사냐는 비판이 자연스레 따라붙는다. 그가 검찰에서 맡았던 사건은 근래 검찰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검찰개혁이 필요한 이유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이 시대 법 감정에 반하는’ 위자료는 대체 얼마인가 [세상에 이런 법이] 박성철 (변호사) 그는 공작원으로 북파되었다. 마흔이 넘은 나이였다.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이고 대학교수였다.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사회대중당 후보였다. 그러다 반국가단체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지명수배되었다. 수배 중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1962년 5월 갑자기 북파공작원이 되었다. 그해 7월쯤까지 육군첩보부대에서 교육을 받고, 그달 12일 새벽에 북파되었다.‘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과거사위)’ 보고서에 따르면, 좌익 활동을 하여 북한에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대상으로 물색됐다. 수배로 도피 중인 약점 한 어부에게 국가가 말했다, “넌 간첩이어야 돼.” 정희상 기자 김성학씨(72·사진)는 1971년 8월26일 강원도 속초항에서 울릉도 방면으로 나가는 오징어잡이 어선 해성호를 탔다. 당시 20세였던 김씨는 해성호 김종인 선장의 아들로, 원래 속초 시내의 한 ‘전파사(전자제품 수리 판매업체)’에서 직원으로 일했다. 해당 업체 주인이 전파사 운영을 그만두려고 하자, 김씨는 이를 넘겨받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친에게 부탁해 오징어잡이 배에 오른 것이었다.선원 23명을 실은 해성호는 속초항을 나온 다음 남쪽인 강릉 방면으로 향했다. 조류로 인해 배가 북쪽으로 이탈할 위험을 방지하고자 당시 속초 이북에 평범한 어부였는데, 갑자기 간첩이라 불렸다 정희상 기자 2021년 12월10일, 강원도 속초시 근로자종합복지관에서는 ‘동해안 납북귀환어부피해자 진실규명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 창립대회가 열렸다. 속초·고성 지역 납북귀환 어부와 유족 등 30여 명이 시민사회단체와 법률가 등의 지원을 받아 ‘50년 묵은 한’을 풀기 위해 첫 삽을 뜬 것이다. 이들은 억울하게 간첩으로 조작돼 가정이 풍비박산 난 수많은 동해안 납북 어부와 피해자 가족들을 찾아내 진실을 규명하고 재심을 신청하기로 했다. 이를 토대로 피해자 명예회복 및 국가 배상을 신청한다는 계획이다. 시민모임 대표는 15세 때 속초의 [기자들의 시선] ‘한국이 최대 동맹국’이라는 미국민, 고작 1%? 정희상 기자 이 주의 여론조사미국민 중 겨우 1%만이 한국을 최대 동맹국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재단·연구소가 12월1일 발표한 미국인 252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방 의식에 관한 여론조사’에서다. 지난 10월25일부터 11월7일까지 실시한 이 조사에서 미국인이 최대 동맹국이라고 응답한 국가는 영국(37%), 캐나다(9%), 이스라엘(7%) 등이었는데, 한국이라고 답한 비율은 1%였다. 반면 최대 위협국을 꼽으라는 설문에는 중국(52%), 러시아(14%), 북한(12%) 순이었으며 한국은 1%로 나타났다.이 “체포되면 죽어라, 살면 이중간첩 된다” 김형민(SBS Biz PD) 스파이 세계에서는 불문율이 하나 있다고 해. “성공한 공작은 공개되지 않는다.” 남북도 마찬가지다. 남이나 북이나 엄청난 수의 공작원을 상호 침투시켜 파괴 공작을 벌이거나 지하조직을 구축하고 누군가를 포섭하려 들었지만 그만큼 많은 실패를 했지. 이 실패가 드러날 때 양쪽 당국은 당연히 그 사실을 부인하고 자신들은 관계없다고 우기게 된다.전 세계 정보기관들이 가장 탐내는 공작 중 하나는 이중간첩 공작이야. 즉 적의 스파이를 포섭해 우리 편으로 만드는 거지. 그만큼 위험부담도 크고 투자도 많이 해야 하지만 일단 성공하기만 하면 상대방의 “국가보안법 아는가” “그것 인정한 적 없다” 김형민(SBS Biz PD) 우리나라가 걸어온 험준하고 가파른 현대사의 길섶에는 피 어린 ‘사실’들이 무더기로 들꽃처럼 피어나 있다. 그런데 이 들꽃들을 엮어 만든 저마다의 꽃다발은 서로 다른 경우가 많아.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실을 찾고 다른 사실은 무시하거나, 압도적인 사실에 매몰돼 일면의 사실을 외면하거나, 아예 사실을 제 맘대로 ‘창조’한 경우조차 적지 않지. 일례로 중앙정보부, 안전기획부 그리고 그 버릇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던 국가정보원이 생사람을 잡고 간첩을 제조해낸 일은 어마어마하게 많단다.하지만 북한이 집요하게 대남 공작을 편 것도 사실이고, 공 김정일 위원장도 사과하게 만든 일본인 여중생 납북기 김형민(SBS Biz PD)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는 ‘개구리 소년’ 사건의 기억을 더듬어본다. 도롱뇽 알을 채집하겠다고 산에 올라간 소년 다섯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11년 뒤에야 시신들이 발견됐어. 누군가에게 살해된 것으로 판명됐지만 범인은 끝내 잡지 못했지. 그들이 실종 상태였을 때 여러 설이 분분했는데 그 가운데에는 ‘북한 납치설’도 있었어.너도 알다시피 우리나라 수구세력들은 뭔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터지면 무조건 북한 탓으로 돌려버리는 나쁜 습관이 있지. 그 대부분은 허무맹랑한 것이고,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꿰맞춘 헛소리에 불과한 이야기가 많단 6년 만에 다시 나타난 간첩, 반잠수정에서 발견되기까지 김형민(SBS Biz PD) 휴전 이후 남북의 첩보전은 치열했다. 남쪽도 북파 요원 수천 명을 침투시켰고, 북한도 집요하게 공작원들을 내려보냈지. 이들의 주요한 임무는 상대방 내부에 파고들어 그 일원으로 일상을 살면서 자신들에게 협조하는 조직을 구축하는 일이었어. 그렇다 보니 남북의 ‘방첩(남한 측 표현)’ ‘반탐(북한 측 표현)’ 활동도 불꽃을 튀겼다.그 과정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희생됐다. 없는 간첩이 만들어지고, 뚜렷이 한 일도 없는데 갑자기 잡혀가서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진 사람들이 엄청나게 생겨났지. 한국 정보기관이 저지른 씻을 수 없는 범죄야. 북한도 기자들의 시선 - 최승우씨 정희상 기자 이 주의 인물국회 정문 앞에서 900여 일째 천막 농성을 벌여온 형제복지원 사건 생존 피해자 최승우씨가 5월5일 과거사법 처리를 촉구하며 국회 의원회관 건물에 올라가 고공 농성을 벌인 지 사흘째에 여야 합의를 통한 법안 처리 약속을 받았다. 박정희·전두환 군사정부 때인 1975년부터 1987년까지 형제복지원에서는 인권유린이 일어났다. 당시 정부는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과 고아 등 3000여 명을 불법 감금하고 강제 노역시키면서 551명이 사망했다.20대 국회가 끝나기 전 과거사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로 5월7일 여야가 합 최광준 교수가 아버지를 기억하는 방법 정희상 기자 1973년 10월25일 중앙정보부(중정) 김치열 차장이 ‘유럽 간첩단 사건’을 발표했다.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가 중정 남산 청사에서 조사받던 중 간첩 혐의를 시인한 뒤 투신자살했다는 내용이었다. 중정은 최 교수가 투신했다는 현장을 공개하지 않았다. 고문에 의한 타살 의혹이 일었다. 두 달 전인 그해 8월, 도쿄에서 김대중 납치 사건을 일으킨 중정은 궁지에 몰려 있었다. 중정이 간첩단 사건을 조작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최 교수는 그 무렵 미국 하버드 대학 옌칭 연구소에서 1년, 독일 훔볼트 재단에서 6개월 동안 교환교수를 끝내 <남산의 부장들>과 김형욱 암살 사건 [프리스타일] 정희상 기자 2007년 가을, 1970년대 중앙정보부(중정)가 양성한 북파 특수공작원 조박씨가 편집국을 찾았다. 그는 기자에게 1억원대 현금이 입금된 통장을 보여줬다. 입금자는 국가정보원(원장 김만복)이었다. 조씨는 2005년 4월, 〈시사저널〉 기자로 있던 나에게 “내가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을 파리 외곽 양계장 파쇄기에서 암살했다”라고 고백해 파문을 불렀던 인물이다. 1979년 봄부터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 라인의 부름으로 김형욱 암살 공작을 기획한 뒤 파리 외곽의 한 양계장에서 파쇄기를 통해 실행에 옮겼다고 했다.2005년 국정원은 이른바 “유신의 심장 쏜 뜻을 왜곡하지 말라” 정희상 기자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1979년 10·26 사건 전 40일을 다뤘다. 박정희 대통령을 정점으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중정) 부장과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 김형욱 전 중정 부장 간의 권력 암투를 재구성했다. 영화는 얼마나 사실에 기반하고 있을까? 10·26 사건 평가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기자는 1990년대 초부터 ‘김재규와 10·26 사건’을 심층 취재해온 바 있다. 김형욱 제거 사건도 취재 목록에 있었다. 이 사건 취재기를 모아 지난해 〈팩트와 권력〉(2019)이라는 책을 썼다. 10·26 사건 당시 김재규 부장의 국선 변호 검찰이 앗아간 이 사람의 ‘46년’ 도쿄∙이령경 편집위원 정부가 1960년대 초부터 제주도에 감귤 재배를 권장하고, 1968년부터 농어민 소득증대 특별사업의 일환으로 제주도 전역에 감귤 과원 조성을 적극 장려하면서 제주도에 감귤 재배 선풍이 불었다. 그러나 감귤 묘목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를 해결해준 이들이 일본의 재일 제주인이었다. 1960년대 초부터 1970년대 초까지 재일 제주인들이 기증한 양질의 감귤 묘목 덕분에 제주도는 감귤의 고장이 될 수 있었고 경제발전의 기반을 다졌다.1965년 도쿄의 재일 제주인 단체 ‘제주개발협회’의 사무장으로 취직한 정승연씨의 주요 업무도 감귤 묘목 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