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 2심에 출석하는 이시원, 이현철, 최행관, 이문성 당시 검사(왼쪽부터). ⓒ시사IN 이명익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 당시 수사·기소·공판을 담당했던 이시원 검사가 윤석열 정부의 고위공직자로 복귀했다. 대통령비서실장 직속인 공직기강비서관(1급)으로 임명됐다. 민정수석 자리가 사라지면서 대통령과 공직기강비서관의 거리는 더 가까워졌다. 그만큼 대통령 측근이라는 뜻이다.

공직기강비서관은 내부감찰과 사정 등을 담당한다. 이 비서관 임명이 적절한 인사냐는 비판이 자연스레 따라붙는다. 그가 검찰에서 맡았던 사건은 근래 검찰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검찰개혁이 필요한 이유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으로 관련 국가정보원 요원들과 민간인 협조자들은 최대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반면 검사들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내부징계로 마무리되었다. 당시 일선에서 사건을 담당한 이시원·이문성 검사는 정직 1개월, 지휘부였던 최성남 부장검사는 감봉 1개월 처분을 받았다.

이시원 비서관은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으로 두 차례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지만 모두 불기소되었다. 2014년 증거조작 당시 검찰은 이시원 검사를 불기소했다(1차 불기소). 2019년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조사를 바탕으로 유우성씨는 이시원 당시 변호사 등을 고소했다. 1년 후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또다시 불기소 처분됐다(2차 불기소). 현재는 공소시효가 끝났다.

이 비서관이 형사처벌을 비켜간 주요 논리는 ‘몰랐다’였다. 주로 국정원이 수사를 맡았고, 국정원 요원들이 조작된 증거를 가져오거나 혹은 그것을 검증할 자료를 가져오지 않아 생긴 일이라는 취지의 해명을 했다. 그는 정말 몰랐을까. 몰랐다면 책임이 없을까.

〈시사IN〉은 유우성 사건 관련 수사·공판 기록 등을 입수해 살폈다. 문재인 정부에서 활동한 국정원 적폐청산 TF, 검찰 과거사위원회 조사 내용도 취재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과 검찰이 한 몸처럼 움직인 정황이 포착되었다.

크게 세 부분 ‘△유우성 휴대전화 속 사진 △유가려(유우성 동생) 진술 △출입경 기록’에서 이시원 당시 검사는 무능했거나 국정원으로 책임을 떠넘겼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어느 쪽이든 공직기강비서관으로서 직무수행을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이 계속 남는다.

■ 사진 속 위치정보 확인 ‘안’ 했나, ‘못’ 했나

춘절(중국 설날)이던 2012년 1월23일 유우성씨는 중국 옌지(연길) 집에서 옛날 사진첩을 발견했다. 탈북 전 북한에서의 일상이 담긴 인화 사진 여러 장이 있었다. 과거를 추억하며 자신의 휴대전화(아이폰4)로 해당 사진들을 다시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었다.

이러한 사진들이 ‘간첩 증거’로 쓰일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1년 후인 2013년 1월 국정원은 유우성씨의 노트북을 압수수색했다. 복구한 해당 사진들이 북한에서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알씨’ 프로그램을 활용해 촬영 일시 및 카메라 정보 등을 특정해 유우성씨가 2012년 1월23일 밀입북한 증거라고 재판부에 제출했다.

유우성씨 변호인이 확인한 결과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사진의 위치정보는 중국이었다. 게다가 유우성씨의 같은 휴대전화에서 같은 날 중국에서 찍은 사진이 더 나왔다. 2012년 1월23일 국정원이 유우성씨가 밀입북했다고 주장한 날 밤, 유우성씨 가족과 친구의 가족들이 춘절을 기념하며 오랜만에 다 같이 어울려 노래방에 갔다. 유우성씨를 비롯한 이들이 중국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진이 아이폰4에 담겼다.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몰아가기 위해, 그에게 유리한 증거는 일부러 뺀 게 아니냐는 지적이 2013년 1심 때부터 나왔다. 이에 대해 이시원 당시 검사는 2014년 검찰 조사를 받으며 ‘무능’했다고 고백했다. 아이폰4로 찍은 사진의 위치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을 몰랐다고 밝혔다. 같은 날 중국 노래방 사진 또한 당시 국정원 복구 프로그램으로는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수사를 지휘하고, 증거를 검토해 기소 여부를 결정하고 이에 책임을 지는 검사가 국정원 탓을 한 것이다.

심지어 유우성씨는 2013년 국정원 조사를 받을 당시 다음과 같은 취지의 진술서를 써낸 바 있다. ‘해당 사진들은 2012년 1월21~25일 중국 방문 중 아버지와 동생이 사는 집에서 내 휴대전화로 찍었다.’ 2004년 탈북 후 가족과 처음으로 보내는 명절이라 당시를 더 특별하게 기억한다는 유우성씨의 진술을 토대로 검찰과 국정원은 휴대전화 사진을 더 검증할 수 있었지만, 안 하거나 못 했다.

■ 이시원 검사에 대한 유가려씨의 진술

유우성씨의 동생 가려씨의 진술은 당시 국정원·검찰이 내세우는 ‘유우성 간첩’의 강력한 증거였다. 유가려씨는 6개월 동안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불법 구금된 채 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의 폭력·폭언 등에 시달리며 오빠가 간첩이라고 자백했다. 인권침해가 뒤늦게 알려지면서 중앙합동신문센터는 현재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로 탈바꿈했다.

2013년 유우성씨 기소 전에도 가려씨의 진술은 왔다 갔다 했다. 가려씨는 국정원 조사를 받으면서 2012년 11월에는 오빠가 밀입북을 했다고 진술했다가, 한 달 뒤 12월에는 자백을 번복했다. 핵심 증언이 흔들리는 것이었다.

이를 검증해야 할 검찰과 국정원은 오히려 숨겼다.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 1심 법정에서 가려씨가 “수사 과정에서 오빠가 간첩이 아니라고 말했다”라고 밝히자, 그제야 검찰은 지금껏 내지 않던 진술서 23부를 추가로 냈다. 2014년 대검 감찰을 받을 당시 이시원 검사는 “검찰 수사 단계에서 몰랐다. 1심에서 변호인이 주장해서 국정원에 확인하고 알게 되었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국정원 수사팀 관계자는 검찰 과거사위에서 이를 반박했다. 검사가 추가 서류를 사전에 봤을 가능성에 대해 “다 본다. 검사와 우리(국정원 수사팀)는 한 몸이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유가려씨는 1심 공판 전에도 이시원 검사에게 오빠가 간첩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2013년 3월4일) 검찰청에 가서 제가 ‘(오빠의) 간첩 이런 것도 없다’고 다 사실대로 얘기했다. 그런 말에도 불구하고 이시원 검사는 ‘네가 이렇게 말하게 되면 우리를 도와줄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얘기했다(2013년 5월9일 1심 공판 유가려 증언).”

유가려씨가 자백을 부인했다는 사실을 짧게나마 들었다는 이시원 검사의 말도 1심 공판 조서에 담겼다.

“검사 이시원: 피고인(유우성)이 공작원인 것이 맞다고 심지어는 2007년 여름에도 (북한에) 들어왔다라고 다시 이야기를 하였고, 그렇게 부인(유우성이 간첩이 아니라는)했던 시간은 1분도 안 되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는가요?

증인 유가려: 1분도 안 되었던 것이 아니고, 나에게 ‘왜 이렇게 거짓 진술(오빠가 간첩이 아닌데 간첩이라고 진술)을 했냐’고 물어서 내가 울면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가족을 위해서 도와주겠다고 하니깐 내가 마음고생하면서 진술에 협조했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검사 이시원: 그런 말은 들은 적이 없는데.

증인 유가려: 부인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검사 이시원: 알았습니다(2013년 6월3일 1심 공판 유가려 증언).”

유우성씨가 밀입국한 증거로 검찰이 제출한 사진. 그러나 사진의 위치정보는 중국이었다. ⓒ유우성 변호인단 제공

■ 강제수사 국정원 ○ 검찰 ×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 2심이 진행되던 2014년 3월28일, 검찰은 증거로 제출한 ‘(중국-북한) 출입경 기록’ 등 문건 3건을 철회했다. 해당 문건이 가짜라는 중국 정부의 공식 확인이 온 다음의 결정이었다. 주한 중국 영사부가 2014년 2월13일 재판부에 사실조회 회신을 보냈다. “유우성 변호인이 낸 2건의 내용이 모두 사실이며 합법·정식 서류이고, 검사가 낸 서류 3건은 모두 위조되었다.”

그럼에도 검찰은 유우성씨가 간첩이라는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해당 증거 외에도 유씨의 간첩 혐의를 증명할 것이 많다고 법정에서 밝혔다. 결과는 1심에 이어 2심도 검찰의 완패였다. 유우성씨는 간첩 혐의에서 벗어났다.

검찰은 당장 증거 조작 혐의에 가담한 국정원 요원과 민간인 협조자에 대한 강제수사에 들어갔다. 국정원 사무실 압수수색, 통신사실 확인 등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 요원과 민간인 협조자의 자살 기도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2014년 3월31일 서울중앙지검 진상조사팀(팀장 윤갑근)은 국정원 대공수사국 김보현 과장과 민간인 협조자 김원하씨를 구속기소했다.

검사들에 대한 수사는 달랐다. 압수수색과 같은 강제수사 방법이 동원되지 않았다. 이시원·이문성 검사에 대한 조사는 피의자 신문조서를 꾸미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그 결과 검사와 국정원 요원의 운명이 갈렸다. 2014년 4월4일 검찰은 국정원 대공수사국 이재윤 처장(3급)과 주선양 총영사관 이인철 영사(국정원 파견 요원)를 불구속기소했고, 자살 기도를 했던 권세영 과장은 기한부 기소중지 처분을 했다(이후 국정원 요원 등의 최종 선고는 다음과 같다. 이재윤 처장 벌금 1000만원, 김보현 과장 징역 4년, 권세영 과장·이인철 영사 벌금 700만원 선고유예, 민간인 협조자 찐밍시 징역 1년6개월, 민간인 협조자 김원하 징역 2년). 이시원·이문성 검사는 불기소했다. 국정원이 속인 것을 알 방법이 없었다는 이유였다.

국정원 요원들은 자신의 형사재판에서 이 점을 강하게 성토했다. 해당 사건에 검사들도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주장이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2014년 이시원 검사는 여러 버전의 출입경 기록을 본 사실이 있다고 진술했다. 다양한 버전의 문건이 있다는 점을 사전에 인지했다면, 국정원이 ‘비공식 루트’로 입수했다는 위조 문건의 진위를 더 검토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한 내용 등을 토대로 검찰 과거사위는 2019년 유우성·유가려씨에 대한 검찰총장의 사과를 권고했다.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은 같은 해 6월25일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은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 검사가 증거를 면밀히 살폈어야 했는데 안 한 큰 과오가 있다. 굉장히 안타깝고 부끄럽게 생각한다”라고 말하며 허리를 숙였다. 하지만 당사자인 검사들은 유우성씨 남매에게 지금껏 사과한 적이 없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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