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이름으로 이메일이 오면 멈칫하게 된다. 반가운 소식보다는 부정적인 내용일 때가 더 많아서다. 지난 3월 어느 날 퇴근길에도 그랬다. ‘김달아 기자님을 응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이메일이 왔다. 의심할 수밖에 없는 흔한 수법이다. 긍정적 표현의 제목으로 클릭을 유도하지만, 막상 이메일을 열어보면 욕하거나 횡설수설하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마침 옆에 있던 기자 동료가 먼저 읽어보겠다며 나섰다. 정신 건강을 위해 나쁜 글이면 그냥 넘기고, 좋은 글이면 내게 보여주겠다고 했다.

이메일을 연 순간 동료의 표정이 밝아졌다. 검열(?)을 거쳐 받아 든 이메일엔 생각지도 못했던 마음이 담겨 있었다. 발신자는 자신을 〈시사IN〉 구독자로 소개했다. 내가 〈시사IN〉 ‘미디어 리터러시’ 코너에 쓰는 칼럼을 잘 보고 있다며 짧게라도 응원의 글을 보내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언급한 글은 〈시사IN〉 제806호 ‘돌아온 대왕 카스텔라, 언론도 달라질 수 있을까?’였다. 오래 고민하다 썼지만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해 가슴을 졸였는데, 그 글을 콕 집어 치켜세워준 것이다. 1년 전 칼럼에서 ‘좋은 기사를 쓴 기자에게 칭찬해달라’던 나의 부탁을 잊지 않았다는 설명도 함께였다.

얼마 전에는 기자들을 칭찬하는 분을 직접 만났다. 우연히 인사한 박근영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언론홍보팀장이었다. 박 팀장은 한밤중 잠결에 납치돼 67년째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86세 김주삼씨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김씨는 14세이던 1956년 황해도 용연군 집에서 잠을 자다가 한국군 북파공작원 3명에게 납치된 뒤 남한에 강제 정착했다. 지금까지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채 수십 년을 감시와 가난 속에서 살아왔다(자세한 사연은 〈시사IN〉 제778호 ‘납치 소년 김주삼의 60년 망향가’, 제808호 ‘북한 출신 납치 소년, 67년 한을 풀었다’ 기사 참조). 최근 법원이 김씨의 납치 피해 사실을 인정하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그에게 1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한 게 기자들 덕분이라고 박 팀장은 말했다.

사실 이런 결과가 나오기까지 진실화해위의 역할이 컸다.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8월 김씨의 진술이 사실임을 규명하고 국가에 책임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진상규명 결과가 손해배상 소송에서 명백한 증거로 작용한 것이다. 그런데 박 팀장은 어째서인지 기자들에게 공을 돌렸다. 홍보팀장의 인사치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의 말과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진심을 다해 기사를 써준 덕분”

북파공작원에 의한 북한 주민 납치 피해가 공식적으로 인정된 건 김씨 사례가 처음이다. 박 팀장은 언론이 이 사안을 조명하지 않았더라면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을 거라고 했다. 과거사 문제를 꾸준히 취재하고 보도하는 기자들이 고맙던 차에 이번에 큰 결실을 거뒀다며 ‘영광’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기자들의 노고를 누군가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벅찬 기분이었다.

김주삼씨(사진)가 납치 피해 사실을 인정받기까지 언론의 역할도 컸다. ⓒ시사IN 이명익

내게 온 응원 이메일이나 동료들을 향한 칭찬은 내가 기자로 일하는 이유가 된다. 박 팀장의 진심이 닿길 바라며 그의 마음을 여기 대신 전한다. “피해자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진심을 다해 기사를 써준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과거사는 무겁고 관심받기 어려운 주제이지만, 국가로부터 소외당한 사람들을 위해 늘 귀를 기울이고 보도해주시는 모든 기자님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기자명 김달아 (⟨기자협회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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