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의 심장 쏜 뜻을 왜곡하지 말라”
  • 정희상 기자
  • 호수 648
  • 승인 2020.02.2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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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국선 변호인이었던 안동일 변호사를 만났다. 안 변호사는 김재규가 밝힌 저격 이유, 김형욱 제거 공작 등에 대한 비화를 소개했다.
ⓒ시사IN 윤무영안동일 변호사(오른쪽)는 “김재규는 겸손하고 온화한 사람이었다”라고 말한다. 왼쪽은 정희상 〈시사IN〉 기자.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1979년 10·26 사건 전 40일을 다뤘다. 박정희 대통령을 정점으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중정) 부장과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 김형욱 전 중정 부장 간의 권력 암투를 재구성했다. 영화는 얼마나 사실에 기반하고 있을까? 10·26 사건 평가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기자는 1990년대 초부터 ‘김재규와 10·26 사건’을 심층 취재해온 바 있다. 김형욱 제거 사건도 취재 목록에 있었다. 이 사건 취재기를 모아 지난해 〈팩트와 권력〉(2019)이라는 책을 썼다.  

10·26 사건 당시 김재규 부장의 국선 변호인이었던 안동일 변호사를 만났다. 안 변호사는 〈10·26은 아직도 살아 있다〉(2005), 〈나는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다〉(2017)를 펴내기도 했다.

정희상:영화는 유신정권 말기 실제 있었던 사건에 기반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돋보였다. 하지만 유신의 심장을 쏜 김재규 부장의 깊은 내면이나 각오와 배경 등이 영화에 충분히 드러나지는 않았다. 10·26에 대한 풍부한 해석이 제공되어야 하는데 ‘충성 경쟁에서 밀린 자의 우발적 총격’이라는 통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아쉬웠다. 영화를 어떻게 봤나?

안동일:그 시대를 안 살아본 사람이나 10·26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실제 상황처럼 오해할 부분, 왜곡된 부분이 적지 않았다.

정희상:10·26 사건을 일으키기 직전에 박정희 심기 경호를 위해 김재규 부장이 김형욱 전 중정 부장을 파리로 유인해 죽이는 암살 공작을 동시에 벌였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그럼에도 영화에는 마치 김재규 부장이 김형욱 제거 공작을 벌인 것처럼 단정적으로 묘사했다. 그렇게 되면 현대사의 분수령인 10·26 사건 동기는 왜곡되고 만다.

안동일:동감이다. 영화는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합수부장) 발표처럼 김재규 부장이 박정희의 신임을 잃어 그를 제거하고 자기가 대통령이 되려는 과대망상을 가졌다는 쪽에 맞춰져 있다. 차지철 경호실장과의 권력 다툼 속에서 자신이 쫓겨날 거 같으니까 저격을 했다는 식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부장을 향해 김형욱 전 부장 제거를 암시하면서 “임자 곁에는 내가 있어. 임자 맘대로 하라”고 지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김재규 부장이 김형욱을 제거했다는 건 확인되지 않았다.

정희상:10·26 사건 재판 과정에서 접견할 때 김재규 부장은 김형욱 사건을 어떻게 얘기하던가?

안동일:그걸 내가 아주 끈질기게 물었다. 1심 재판하면서 세 번 정도 면회 가서 김재규 부장을 만났다. 항소심 때도 여러 번 만났다. 김형욱이 파리에서 실종된 때가 10·26 사건 20일쯤 전이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중정이 한 거 아니냐” 했더니 김 부장이 “아니다”라고 펄쩍 뛰더라. 자신도 의아해 중정에 김형욱 사건 조사팀을 꾸려 조사를 시켰다더라. 조사를 진행하는 중에 10·26 사건이 난 거다. 그래서 “당신 판단으로는 누구 소행으로 보이냐”라고 집요하게 캐물었더니 김 부장은 ‘청와대가 한 게 아닌가, 그쪽이 아니고는 할 사람이 없다’는 뉘앙스로 말하며 철저히 조사하면 다 나올 거라고 했다. 청와대란 차지철 경호실장을 뜻했다.

정희상:내가 30여 년 동안 10·26 사건을 추적해본 바로는 김재규 부장이 파리에서 김형욱 제거 공작을 주도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오히려 차지철 경호실장이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이런 식으로 하는 거라고 과시하기 위해 김형욱 제거 공작을 벌였다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

안동일:그 점은 나도 동감한다. 10·26 사건으로 죽음을 앞둔 김재규 부장이 그렇게까지 부인했던 사안이 김형욱 암살 사건이다. 당시 그는 간경화도 앓고 있었는데 변호인인 나한테 끝까지 거짓말을 했을까? 현홍주 전 주미 대사가 당시 검사로 중정에 파견되어 국장으로 근무했다. 내 고교 후배라서 그가 전두환 정권의 안기부(중정 후신) 차장으로 있을 때 만나 김형욱 사건에 관해 슬쩍 물어본 적이 있다. 현홍주는 김형욱 제거가 김재규 부장의 중정 작품이 아닌 게 확실하다고 하더라. 안기부 차장 정도가 아니라고 하면 믿을 만하다는 생각을 가졌다.

정희상:영화에는 대사가 김형욱 제거 공작에 역할을 한 것으로 나온다. 실제 인물은 당시 파리 주재 한국 대사관 이상열 공사다. 당시 이상열 공사의 상급자는 김관봉 해외정보국장이었다. 김관봉 국장을 만났더니 당시 김재규 부장이 김형욱을 상대로 공작을 벌인 게 하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1977년 미국 의회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김형욱이 박정희 정권 비리를 떠드니까 어쨌든 현직 중정 부장 처지에서 전직 부장(김형욱)이 그렇게 하는 걸 막아야 하지 않나 해서 윤일균 해외담당 차장을 시켜 김형욱과 협상을 했다고 한다. 중정에서 40만 달러를 가져가 김형욱이 쓴 회고록 원고와 바꿔왔는데, 나중에 일본에서 책이 나왔다. 김재규 부장의 공작은 거기서 끝이었다고 한다. 김관봉 국장은, 김형욱 암살은 차지철 경호실장 쪽 소행으로 의심했다고 하더라. 이상열 공사가 중정의 공식 지휘 라인을 벗어나 차지철 경호실장 라인의 지시를 받지 않았느냐는 의심이었다.

안동일:김재규 부장도 면회 과정에서 나한테 그런 얘기를 했다. 김형욱을 달래서 회고록 출판을 중지하려고 협상을 했지, 암살 공작으로 제거하려는 생각까지는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 김형욱도 한때 중정을 위해 일한 사람이기에 돈으로 해결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는데 실패해 중지하던 중 갑자기 실종 사건이 터졌다고 했다.

ⓒ쇼박스 제공1979년 10·26 사건 전 40일을 다룬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한 장면.

정희상:당시 중정 해외정보국조차 김형욱 제거 공작을 차지철 경호실장 라인의 작품으로 믿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차지철 실장은 10·26 전 국내외 각 분야에 나가 있던 중정 직원들과 직보 체제를 구축해 실권을 행사했다고 한다. 게다가 10·26 사건 이후 김관봉 국장을 포함해 김재규 부장 휘하 중정 주요 간부들은 전두환의 합수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10·26 사건과 관련해 혹독한 심문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이상열 공사만이 아무런 조사도 받지 않고 중정에 남아 요직을 거쳤으며,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훈장까지 받았다고 했다. 전두환 합수부는 김재규와 중정 간부들을 파렴치범으로 만들기 위해 애를 썼는데, 만일 이상열 공사가 김재규 부장의 지시로 김형욱 제거 공작에 개입했다면 이를 호재로 써먹었을 것이다. 그래서 김재규 부장은 김형욱 공작과는 무관하다는 것이 김관봉 해외정보국장의 주장이었다.

안동일:파리에서 중정 요원이 가담했다면 당시 이상열 공사밖에 없을 텐데 그는 끝까지 진실을 밝히지 않고 죽었다. 이상열 공사까지 차지철 라인이었을까.

정희상:그렇다고 본다. 내가 취재한 바로는 당시 그런 형태의 암살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이는 차지철 경호실장만이 가능했다고 하더라. 유신 말기에 차지철 실장은 중정 요원을 상대로 비선 직보 체제를 구축하고, 특수공작원을 차출해 정규 지휘 계통을 통하지 않고 자기 사람으로 쓸 정도로 파워가 셌다고 한다.

안동일: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는 김재규 부장이 김형욱 제거 공작을 주도했다는 허구적인 내용 외에도 사실을 너무 많이 잘라내 아쉬웠다. 예컨대 영화 끝부분에 김재규 부장 육성으로 최후진술이 나오는데 내용이 많이 잘렸다. 김재규 부장은 재판 과정에서 여러 차례 10·26 동기를 명확히 밝혔다. 첫째는 자유민주주의 회복, 둘째는 부마항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까 봐 희생을 막자는 게 목적이었다. 세 번째는 북한에 의한 공산화를 막고, 네 번째가 주한 미군 철수 얘기가 나올 정도로 악화한 대미 관계 회복, 다섯 번째가 이승만 12년, 박정희 18년 30년간 독재국가라는 이미지를 없애야겠다는 명분이었다.

정희상:김재규 부장 변호인으로서 실제 변론 과정에서 지켜본 그와 영화에 드러나는 김재규 부장의 캐릭터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안동일:처음 변론을 맡았을 때 나는 김재규 부장이 유신체제의 앞잡이고 권력 핵심 인사라서 합수부 발표처럼 완전 패륜아구나, 나라를 배반한 아주 나쁜 사람이구나 하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만나보니 그렇게 겸손하고 온화할 수가 없더라. 변호사로서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면 거짓말은 금방 알 수 있다. 4차 공판까지 만나면서 점점 그의 진정성이 느껴졌다. 잘 안 알려졌지만 김재규 부장 아호가 수리(水理)다. 무인이면서도 문인의 감성이 있었다. 교사 생활을 해서 그런지 하는 말이 부드러우면서도 호소력과 신뢰감이 있었다. 김 부장은 일본에서 일어난 ‘5·15 사건’을 들며 시종일관 자기 변론보다는 자신의 지시로 10·26에 참여한 부하들은 살려달라고 했다. 5·15 사건이란 1932년 일본 장교들이 이노우에 닛쇼 수상을 저격한 사건인데, 당시 주범만 사형시켰다.

정희상:그동안 10·26 사건에 대한 평가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전두환 합수부 발표대로 과대망상증 환자에 의한 내란 목적 살인, 또 하나는 이번 영화나 일부 언론에서 말하는, 충성 경쟁에서 밀려난 2인자가 홧김에 저지른 우발적 살인, 그리고 민주 진영 쪽에서 말하는,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우국적 거사이다. 김재규 부장은 재판에서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대의를 위한 거사였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있는가?

안동일:10·26 사건 사흘 전인 10월23일 친척들을 장충동에 있는 공관으로 불러 평소 자신이 써둔 ‘민주 민권 자유 평등’과 ‘자유민주주의’ ‘비리법권천(비(非)는 이치를 이길 수 없고, 이치는 법을 이길 수 없으며, 법은 권력을 이길 수 없고, 권력은 천(민심)을 이길 수 없다)’ 등 붓글씨로 쓴 휘호를 건넸다. 이날 훗날 후손들에게 길이 물려달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궁정동 안가에서 열린 대행사, 소행사 때 거사를 시도하려고 여러 번 망설이다가 10월26일, 말하자면 어떤 우발적 계기가 생긴 거다. 10·26 사건이 필연이냐 우연이냐, 우발범이냐 확신범이냐, 양심범이냐 파렴치범이냐 라는 측면에서 볼 때 나는 반반으로 본다.

정희상:전두환은 10·26 사건 수사를 발판 삼아 권력을 잡았다. 전두환에 대한 평가가 김재규 평가와 맞물려 있다. 내란 수괴는 정작 전두환이라는 사법적 평가가 1997년에 나왔는데, 김재규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합수부 발표와 ‘내란 목적 살인’이라는 대법원 판결에 갇혀 있다. 내란 목적범(전두환)이 개입해서 만든 김재규 평가, 판결문 이런 걸 그대로 덮어두는 것은 역사적으로 정의롭지 않아 보인다.

안동일:전두환이 합수부장을 맡고 12·12 쿠데타를 일으키자 권력은 곧바로 그의 손에 들어갔다. 전두환 정부 시절 내가 재향군인회 감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장성들과 청와대에 들어갔다가 전두환한테 직접 들은 얘기가 있다. 자기가 보안사령관과 합수부장 할 때 최규하 정부 장관들이 전부 자기한테 와서 업무 보고를 하더라고 자랑했다. 매일 밤늦게까지 진행하던 10·26 사건 재판은 12·12 쿠데타 다음 날인 12월13일 딱 하루 쉬었다. 아침에 강신옥 변호사랑 육본으로 들어가는데 후문에 검은 피가 낭자했다.

정희상:법률적으로 김재규 부장의 재심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안동일:국민 저항권을 대신 행사한 거로 해서 무죄 주장 재심 신청은 가능하다. 그럼 10·26 사건의 동기가 재판 과정에서 객관적으로 나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무죄 주장 재심이 쉽지 않아 보인다. 사회 분위기가 아직은 김재규 부장을 명예회복시키거나 재평가하는 데 그렇게 능동적이거나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현재 재판을 다시 한다면 최소한 내란 목적 살인이 단순 살인으로 변경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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