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26 사건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최후진술을 하고 있다(위). ⓒ연합뉴스

1979년 가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궁정동 만찬장 총격으로 유신 철권통치가 종식된 지 42년이 흐른 지난 10월26일, 노태우씨가 유명을 달리했다. 공교롭게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기일이 겹쳤다. 노씨는 전두환씨와 함께 ‘10·26 사건’을 빌미로 12·12 군사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등 내란 과정을 거쳐 정치 전면에 부상하면서 훗날 나란히 대통령을 지냈다. 전두환씨도 현재 노인성 치매를 앓는 등 건강이 급속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군사 반란과 내란의 원죄를 안은 이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하나둘 퇴장하는 현실을 유난히 안타까워하며 노심초사하는 이가 있다. 10·26 사건의 주역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셋째 여동생 김정숙씨(83)다. 김씨는 오빠가 전두환 신군부의 주도 아래 ‘내란목적 살인범’으로 지목돼 사형당한 지 만 40년이 되던(1980년 5월24일 사형 집행) 지난해 6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적어도 전두환씨가 10·26 사건 재판에 개입해 적용한 ‘내란목적 살인범’이라는 결론은 거짓이므로 사실과 정의에 입각해 바로잡아달라는 취지였다.

올해 10·26 사건 42주년를 맞아 경기도 파주의 자택으로 찾아간 취재진을 만난 김정숙씨는 이렇게 말했다. “전두환씨 건강상태도 나날이 안 좋다는데 10·26 사건 재심이 길어지니 초조하다. 오빠를 내란목적 사범으로 처벌했지만 사실은 본인이 내란범으로 판정된 전두환씨가 죽기 전에 재심 결정이 나와서 역사의 정의가 바로잡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김정숙씨가 오빠의 형사사건 재심 신청을 낸 가장 큰 근거는 지난해 초 발굴된 10·26 재판 당시 ‘보안사의 불법 개입’을 입증하는 녹음 파일이었다. 10·26 당시 보안사령관으로서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아 이 사건 수사를 벌인 전두환씨는 재판 당시 법정 안팎에 보안사 요원들을 잠복시켜 몰래 불법 녹음하고 신군부 입맛대로 재판을 이끌도록 압력을 가했다. 이 과정이 녹음 파일 원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 전 부장의 여동생을 대리해 재심 청구서를 제출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보안사가 ‘쪽지 재판’을 통해 재판에 개입한 데 그치지 않고 공판조서조차 김재규 전 부장 일행의 발언을 그대로 적는 대신 입맛대로 작성해 근본적으로 당시 재판 과정의 적법성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재심 사유로 들었다. 또 대법원 상고 기각 당시 내란목적 살인 혐의에 대해 대법관 8대 6으로 의견 대립이 있었다는 점도 재심을 할 만한 근거로 제시했다. 총검으로 무장한 보안사 군인들이 변호인과 법관들을 직간접으로 위협하고 압박을 가해 ‘내란목적 사범’으로 몰아가는 엄혹한 상황에서도 14명 중 무려 6명의 대법관이 양심을 저버리지 않고 내란목적이 아닌 민주주의 회복을 주장하는 ‘단순 살인’이라고 보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심리 미진 등을 이유로 내란목적 살인을 부정한 6명의 대법관은 양병호·민문기·임항준·김윤행·서윤홍·정태원 대법관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김재규 전 부장의 사형이 집행된 뒤 보안사에 연행돼 갖은 고초를 겪었고, 6명 모두 사표를 제출해야 했다. 특히 선임인 양병호 대법관에 대해서는 사표 수리 후 3년 동안 변호사 개업도 못하게 보안사가 나서서 온갖 방해 공작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1년5개월여 동안 대법원에 계류된 재판

김재규 전 부장의 여동생 김정숙씨(위)는 재심 관련 재판 결과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김정숙씨가 지난해 신청한 ‘김재규 형사사건 재심’은 적잖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재심 신청 기사에 각계각층에서 지지·응원 댓글이 쏟아졌다. 대부분 박정희 유신독재를 종식시킨 10·26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뒤늦게나마 ‘김재규 의사’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김정숙씨는 해마다 오빠의 기일이면 그가 사형당한 서대문형무소(서대문독립공원)를 찾아 추도식을 한다. 김 전 부장의 41주기였던 지난 5월24일에는 서대문독립공원 사형장 터에 이부영, 이철 전 의원 등 과거 유신 반대 민주화운동을 했던 인사들이 방문해 유족을 위로하고 재심 승리를 기원했다고 한다. 또 다른 변화라면 올해 들어서 생각지도 못한 추모객 방문 행렬이 늘었다는 점이다. “서대문형무소 사형장에 예비역 해병대 모임에서 제복을 입고 단체로 찾아와 독자적으로 오빠 제사를 모시고, 이어서 오빠가 잠든 경기도 광주 삼성공원묘지까지 이동해 절도 있는 군대식 예법으로 추모했다. 그분들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오빠의 재심 결과를 애타게 기다리는 김정숙씨는 10·26 사건의 진실을 알리고 바로잡기 위해 앞장선 이들의 퇴장을 지켜보는 일이 가슴 아프다. 10·26 재판 과정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부탁으로 김재규 변론을 맡았던 유신 시절 대표적인 인권변호사 강신옥 변호사는 당시 전두환 신군부가 감추고자 했던 김재규의 거사 동기와 심경을 가장 가까이서 파악하고 널리 알리고자 했던 법조인이다. 강 변호사는 그날 이후 수십 년 동안 10·26의 감춰진 진실과 김재규의 진심을 알리는 활동을 벌여오다 지난 7월31일 85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지난해 재심 청구도 김재규명예회복추진위 강신옥 변호사를 주축으로 민변 변호인단이 김정숙씨를 대리했다. “강 변호사님은 해마다 오빠 기일에 서대문형무소와 삼성공원묘지를 찾았다. 올해 추도식 때는 지병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묘역 꼭대기에 자리 잡은 오빠 묘소까지 올랐다. 그날 나에게 ‘아마 내년에는 여기 찾아오기가 어렵지 않겠나 싶다’라고 하시더니 두 달 만에 별세하셔서 형언할 수 없이 슬프다.”

김재규 전 부장 유족과 김 전 부장 지시에 따라 10·26 사건에 가담했다가 사형당한 다섯 명(박흥주, 박선호, 유성옥, 김태원, 이기주)의 유족은 사건 후 박정희 지지 세력에게 ‘역적의 가족’이라는 비난과 수모를 당하며 숨죽여 지내야 했다. 유족 중 유일하게 김 부장 여동생 김정숙씨가 오랜 트라우마를 딛고 일어나 오빠의 생전 유언을 이루고자 분투해왔다. 그 유언의 내용은, 자신을 사형당한 부하들과 한자리에 묻어달라는 당부와 ‘역사의 재심에서는 의로운 민주혁명이라고 평가받을 것’이라는 자부심이었다. 졸속 재판을 거쳐 6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뒤 유족들은 모여서 김 전 부장의 유언대로 한 장소에 함께 매장하려고 의논했다. 그러나 전두환 신군부는 강제로 각각의 시신을 의정부, 동두천, 벽제 등지에 뿔뿔이 흩어 매장시켰다. 김 전 부장의 유족은 재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으면 유언에 따라 적당한 시기에 합동 묘역을 마련하는 작업까지 물꼬를 트는 게 소원이다.

지난 1년5개월여 대법원에 계류된 김재규 형사사건 재심 재판은 아직 기일이 잡히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재판부가 이 사건의 정치적 파장을 민감하게 의식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인다. 민변 이상희 변호사는 “현재 법원에서는 10·26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김계원씨의 재심 청구 사건이 진행 중인데 곧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사안의 성격상 김계원 전 실장 재심 사건에 이어서 김재규 전 부장 형사사건 재심 심리도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전했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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