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위)는 득표율이 낮았다는 멍에를 써야 하지만 젊은 나이에 대선을 경험한 것은 큰 자산이다.

선거는 전쟁이다. 이기는 것만이 사는 길이다. 승자는 오직 한 명뿐. 대선에서 진 후보들은 모두 패장의 멍에를 짊어진 채 책임론에 직면해 있다. 반면, 이번 대선에서는 죽어서 산 후보도 더러 나왔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참여정부의 2인자’라는 꼬리표가 주홍글씨였다. 이해찬・한명숙・유시민 등 이른바 친노 후보를 물리치고 범여권의 대선 후보가 된 그는 정작 본선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그림자를 지우지 못해 쓴잔을 마셨다. ‘노무현과 관계 있는 것은 모든 게 싫다’는 막무가내 민심 앞에 정 후보는 제대로 힘 한 번 쓰지 못했다. 정동영 후보가 마지막 텔레비전 토론에서 언급한 “참여정부 들어 경제 기조는 더 탄탄해지고 있다”라는 말은 ‘진실’ 여부를 따지기도 전에 유권자의 속만 뒤집어놓았다.

그렇다고 대선 과정에서 정동영 후보가 노무현 대통령의 지원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대선 직전 노 대통령을 만난 한 인사는 “대통령이 정동영보다 이명박이 못한 게 무어냐고 말해 충격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정 후보 진영의 한 핵심 참모는 “경선 과정에서 청와대는 경찰을 동원해 우리를 잡으려 했다. 본선 기간에도 역시 청와대는 도움은커녕 딴죽만 걸었다. ‘노’와의 모호한 관계 설정이 결정적 패인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노명박’이라는 표현은 정 후보 주위에서 더 크게 들린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대선 패배의 책임을 근본 원인을 제공한 노대통령보다 당사자인 정 후보가 질 공산이 크다. 정동영 후보의 한 핵심 측근은 “당과 의원들의 도움을 별로 받지 못했지만 책임은 고스란히 우리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30%에 미치지 못한 득표율은 두고두고 정 후보의 발목을 잡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뉴시스무소속 이회창 후보 (위 가운데)는 정치인으로 재기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로 인해 다시 링에 오르는 데에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당장 1월 말로 예정된 전당대회, 그리고 4월 총선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가 관심사다. 정 후보의 나이가 올해 쉰다섯이다. 정계에서 은퇴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다. 그렇다고 대선에 패배한 직후 또다시 전당대회에 나서기도 머쓱한 상황이다. 총선에 출마한다 해도 현재로서는 출마 지역이 마땅치 않다. 1월 중순에 시작되는 BBK 특검도 정 후보의 입지에 변수가 될 것이다.

 

반면, 젊은 나이에 대선이라는 큰 선거판을 경험한 것은 그에게 큰 자산이다. 호남의 절대적 지지를 이끌어냄으로써, 무주공산인 호남 대표주자 자리를 꿰찬 것도 성과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대권에서 내리 세 번 실패했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 재기하는 데는 일단 성공했다는 평이 우세하다. 단기필마로 나선 이번 선거에서 이 후보는 가장 뛰어난 정치력을 보였다. 대선 막바지에 ‘스페어 후보론’을 앞세워 단숨에 2위로 끼어들더니, 5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국민의 환심을 샀다. ‘차떼기’ 멍에를 벗고, ‘제2의 이인제’라는 비아냥이 사라졌다는 것도 이회창 후보가 얻은 성과다. 정동영 후보가 이 후보에게 ‘반부패 연대’를 제안했을 정도다.

 

ⓒ연합뉴스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위 가운데)는 자기 색깔을 드러내는 데 실패했다.

출마 선언 당일 선거사무실 책상 위로 올라간 이 후보는 “바닥부터 시작하겠다. 나에게 총재라고 부르지 마라. 여러분과 나는 다 같은 동지다”라고 말했다. 점퍼 차림으로 유세장을 누비며 대구 서문시장에서 달걀 세례를 받고 “마사지 잘 했다”라며 너털웃음을 짓기도 했다. 권위를 벗어던진 이 후보의 모습에 기자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국민의 정서를 읽는 데는 이회창 후보가 우리 후보(이명박 후보)보다 한 수 위다. 이회창 후보가 5년 전에 지금의 10분의 1만큼만 유연했다면 그때 정권을 되찾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국현, 범여권 언저리 맴돌다 '좌초' 

이회창 후보는 국민중심당 심대평 대표와 손을 잡고 충청을 기반으로 한 정통 보수 세력의 결집을 꾀하고 있다. 정통 보수의 적자 자리를 놓고 박근혜 전 대표와 벌이게 될 한판 승부가 관건이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는 자기 고유의 색깔을 내기보다는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선언’이라는 외부 변수에 삼고초려의 심정으로 매달렸지만, 4월 총선을 앞두고는 이회창-박근혜 두 전 대표의 격돌이 불가피하다. 두 사람의 지지 기반이 거의 100%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회창 후보 진영의 곽성문 의원은 “늦어도 1월 중순까지는 이회창 후보를 중심으로 새 보수 신당이 만들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는 지난 12월14일 밤 대학로 유세를 마친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의 차에 동승한 적이 있다. 단일화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문 후보는 “이명박 후보가 정동영 후보보다 낫다”라고 거리낌없이 말했다. 문 후보가 댄 이유는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 사람들은 몇 천억씩 해먹고 말았지만, 노무현・정동영은 부패한 데다 무능까지 해서 몇 십 만명을 죽였다”라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문국현 후보는 결코 범여권 후보가 아니다. 그런데도 끝까지 자기로 단일화를 해야 한다며 범여권 언저리를 맴돌다 결국 ‘반노 쓰나미’에 좌초됐다. 이 때문인지 고원 전략기획단장은 선대본부에 보낸 편지에서 “(후보 단일화 압박을 가한) 통합신당 세력과 재야 일부 인사들을 용서하지 못한다”라고 화풀이했다. 여기에는 역설적으로 문국현 후보가 대선 기간에 자기 색깔을 드러내는 데 실패했다는 고백이 깔려 있다.

 

ⓒ뉴시스대권 삼수생인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위 가운데)는 참담한 패배를 당했다.

이번 대선을 통해 문 후보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는 데는 성공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정치인으로는 참패했다. 정치인, 특히 정치 지도자의 기본은 혼자서 날랜 표범이기보다 무리를 거느리는 코끼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거 날이 가까워질수록 그의 주변에 있던 지지자들이 오히려 떠나갔다. 오랜 지기였던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그랬고, 선대본부 공동대변인을 맡았던 장유식 변호사도 선거 전날 캠프를 떠났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후보 고집에 ‘꽉 막힌 사람’이라며 고개를 흔든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선거 중반부터 문국현 후보와 측근의 시선은 온통 총선 쪽으로 쏠렸다. 대선에서 패배한 직후 문 후보는 “100만이 훨씬 넘는 유권자 여러분의 꿈과 열정을 꼭 실현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총선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부자인 문국현 후보가 오히려 돈 문제 때문에 앞날이 밝지 않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대선에서 문 후보는 70억원라는 거액의 사비를 들였지만 득표율 10%를 넘기지 못함으로써 선거자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게 됐다. 문 후보의 한 측근은 “이번 선거는 전적으로 문 후보 사비로 치렀다. 1000만원을 낸 사람이 몇 있었지만 언 발에 오줌누기다. 정치판에서 돈을 만들 줄 모르는 경제인 출신이 효율성과 상관없이 돈이 엄청 드는 정치판을 어떤 식으로 평가할지, 그에 따라 문국현 후보의 앞날이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 

이번 대선을 민노당의 패배로 규정하는 이도 적지 않다. 3% 득표로 5위. 권영길 후보가 얻은 득표율은 참담했다. 원내 3당이자 기호 3번의 체면을 구겼다.창당 후 민노당은 선거 때마다 도약에 성공했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울산에서 구청장을 2명 배출하며 교두보를 마련했고, 2002년 대선에서는 권영길 후보를 냈다. 2004년 총선에서는 정당 지지율 13.1%, 의석 10석 배출로 인해 단숨에 원내 3당으로 도약했다.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싹쓸이했을 때도 민노당은 13%의 정당 득표를 거뒀을 만큼 만만치 않은 저력을 발휘했다. 특히 1·2위 후보가 박빙을 달리면서 사표론에 시달렸던 지난 대선과 달리, 이명박 후보가 독주했던 이번 대선에서는 ‘사표론’에서도 자유로웠다. 이 때문에 민노당 내부에서는 “10% 득표가 가능하다”라는 예상까지 나왔다. 그런데 결과는 참담 그 자체였다.

 

ⓒ뉴시스민주당 이인제 후보(위)는 호남, 충청은 물론이고 지역구인 논산에서도 참패했다.

패인은 먼저 권영길 후보와 권 후보를 뽑은 당원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다. 민노당의 개혁을 주창하는 심상정・노회찬 의원에 비해 ‘대권 삼수생’ 권 후보는 힘이 달렸다. 불판을 갈아야 하는 민노당도 스스로 판을 갈지 못해 화를 자초했다. 민노당 내부 동력마저 떨어졌다. 대선 기간에도 당 노조와 사무국 사이의 갈등이 불거져 선거에 집중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반노 정서로 바닥을 헤매는 정동영 후보의 대안으로 권영길 후보가 자리매김하지 못했다. 심지어 문국현 후보에게 지지층 상당수를 내주고 말았다.

 

"이인제 때문에 민주당은 정치력 잃었다" 

이번 대선에서 민노당은 ‘살림살이 나아졌냐’고 묻지도 못했고, 비정규직 문제, 한·미FTA, 삼성 특검 같은 이슈를 표로 이끌어내지도 못했다. ‘가장 좋은 교육이 이명박 후보가 사퇴하는 것이다’는 권영길 후보의 말 이외에 강한 인상을 남긴 ‘어록’조차 없다. 민노당 내부에서는 “언제까지 정파 싸움에 에너지를 허비할 수 없다. NL계와 PD계가 아예 딴살림을 차려야 한다”라는 자성론이 나오고 있다. 

득표율 0.7%. 황당 공약으로 웃음거리가 된 허경영 후보(0.4%)와 별 차이가 없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더욱 절망적이다. 민주당의 텃밭 광주・전남 지역에서도 고작 1.07%, 2.37%를 얻는 데 그쳤다. 이인제 후보는 호남과 자신의 연고지 충청에서도 문국현·권영길 후보에게도 뒤진 6위를 기록했다. 충북 1.1%, 충남 2.5%. 지역구인 논산에서도 참패했다.

두 번이나 대통령을 냈던 민주당은 이제 존폐의 갈림길에 섰다. 당내는 대선 직전과 같이 여전히 혼돈 상태다. 통합신당과 통합을 추진하자는 세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감정상 노무현・정동영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비상체제라며 당 쇄신안을 내겠다고 한다. 한 당직자는 “안을 내면 뭐 하나. 1%도 못 얻은 당에서”라며 자조했다.

한 고위 당직자는 “여론조사 1% 후보가 손을 내미는 신당의 손을 잡지 않은 까닭을 모르겠다. 이인제 후보가 고집을 꺾지 않아서 민주당은 정치력을 잃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자살 폭탄을 우리 진영에서 터뜨려 당을 완전히 망가뜨려버렸다. 민주당을 닫게 만들려고 한나라당에서 보낸 X맨 같다”라고 말했다. 백의종군 의사를 밝힌 이인제 후보는 “백만 대군을 잃고 도망가는 조조의 신세다”라고 말했다. 이인제 후보가 앞으로 정치권에서 할 일이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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