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이번 대통령선거와 관련해 정치는 실종되었고 여론조사만 판친다고 말하곤 했다. 다소 비판적인 관점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한국 사회, 특히 선거에서 여론조사의 영향력이 확대되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여론조사가 이미 도를 넘어선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견제해야 한다는 인식도 존재한다. 여론조사 본연의 목적이나 의도와 상관없이 현실에서 그 중요성이 계속 커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여론조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관점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론조사와 관련한 여러 이슈가 있지만, 특히 이번 대선에서 떠오른 두 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진단해보고자 한다.
먼저, 한나라당과 대통합민주신당 모두 국민 참여 방식의 당내 경선을 치렀다. 이때 국민의 뜻을 묻는 투표는 여론조사로 대체되었다. 현실 정치에서 민심을 반영할 때 여론조사만큼 비용·시간 대비 효율적인 수단이 없다. 적은 표본을 조사하더라도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론조사는 표본 조사이기 때문에 오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흔히 간과된다. 여론조사는 여론조사일 뿐, 투표가 아니다. 여론조사가 각 정당의 후보 결정 과정에 사용되는 순간, 여론조사에는 오차가 존재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무시되어버린다.
현실적으로 여론조사를 후보 결정에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대안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후보 결정을 2단계로 나누어서 하는 방식이다. 민심을 반영하기 위해 1단계에 일반 국민 대상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순위를 매겨 1, 2위자를 선출하는 것이다. 만약 3위가 표본오차 범위 안에 있다면 3위까지 포함시키면 된다. 다음으로 2단계 결선 투표는 철저하게 당원 위주로 실시하는 것이다. 후보공천 심사위원회에서 대체하는 방식도 무방하다. 이때 중요한 것은 1단계 예선인 여론조사 성적은 반영하지 않고 2단계 투표 결과만을 사용해야 한다. 이러한 제안이 현실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일부 보완한다면 민심과 당심, 그리고 효율성과 과학성을 모두 갖춘 방법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올해 대선은 ‘여론조사 대선’으로 불린 만큼, 여론조사에 대한 각종 의혹도 난무했다. 증명되지 않는 근거 없는 가설을 가지고 여론조사 자체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식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밴드왜건 효과(승자 편승 효과)에 대한 것이다. 특정 시점의 여론을 조사한 뒤, 그 결과가 언론을 통해 광범위하게 확산되면 새로운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주로 1위 후보 쪽으로 표가 쏠리는 현상을 말한다. 하지만 밴드왜건 효과는 한국은 물론 이 이론이 만들어진 미국에서조차 실증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한나라당과 대통합민주신당의 후보 경선 과정에서 나온 질문지 워딩(Wording)과 관련된 주장들, 즉 적합도를 물어야 하느냐, 아니면 지지도나 선호도를 물어야 하느냐는 문제 역시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없는 가설이다. 올해 대선 기간에 여러 후보가 자기에게 불리한 조사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이런 가설을 들먹이며 해당 언론사와 조사기관에 항의성 문제 제기를 하곤 했다. ‘응답률이 고작 15% 안팎인 여론 조사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문제 제기 역시 여론조사에 대한 오해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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