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윤여준 전 장관(맨 오른쪽)과 이태규씨(오른쪽 두 번째) 등은 한나라당 개혁을 주장한다.

2006년 10월16일 저녁, 서소문 동양빌딩 지하 ‘오키도키’ 주점에서 일일 호프가 열렸다. 이 자리에 윤여준 전 장관은 자신의 보좌관이었던 이태규 여의도연구소 객원 연구위원(이명박 선대위 전략기획팀장)과 박재성 전 부산시의원(이명박 선대위 상임특보), 윤석대 수요모임 사무처장(이명박 선대위 전략지역팀장), 김주식 부대변인(이명박 선대위 언론특보), 권철현 의원실 김성현 보좌관(이명박 선대위 전략기획위원) 등과 함께 참석했다. 남경필 의원실 경윤호 보좌관(이명박 선대위 조직지원팀장)은 다른 약속 때문에 오지 못했다. 초야에 묻혔던 윤 전 장관을 모셨던 이들은 한나라당에서 비주류 중의 비주류였다. 한나라당의 개혁을 외쳤지만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14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다시 현장에서 만난 당시 일일 호프 손님들은 지위가 변해 있었다. 그들은 이명박 선대위에서 주류 중의 주류가 되어 있었다. 선대위 전략기획총괄팀장인 정두언 의원과 함께 캠프를 쥐락펴락하는 실세 중의 실세가 되어 있었다.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선대위에서 아무런 자리도 받지 않고 ‘정치 카페’라는 사이버 카페를 차려놓고 여유 자적하게 대선판을 음미했던 윤여준 전 장관은 박세일 서울대 교수(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와 함께 유력한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후보로 거론된다.

윤여준 전 장관과 이들 사이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 바로 박형준·정병국·남경필·원희룡·이성권·김희정 등 한나라당 소장파 수요모임 출신 의원이다. 이들은 주로 수요모임 소속 의원들의 보좌관이었다. 수요모임 의원들은 윤 전 장관을 ‘정치적 멘토’로 생각하고 늘 조언을 구했다. 강재섭 대표가 선출된 2006년 전당대회에서 윤 전 장관을 당 대표로 옹립하려 하기도 했다.

당 주류와 소장파의 관계 역전

그러나 수요모임 의원들의 시도는 한나라당 주류 세력의 방해로 완벽하게 실패했다. 당시 수요모임 주도로 한나라당 소장·중도 개혁파 연대 모임인 ‘미래모임’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예비 경선을 통해 소장파 대표를 뽑아 당 대표최고위원 경선에 도전하려고 했다. 남경필 의원이 출사표를 던졌지만 당 주류 세력의 교란으로 예선에서 탈락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대신 후보로 내세웠던 권영세 의원이 최고위원에도 선출되지 못하면서 미래모임은 곧 궤멸했다. 수요모임도 이후 급속히 와해했다.

그러나 이제 시절이 바뀌었다. 수요모임 의원들의 보좌관이었던 이들은 이명박 후보 당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수요모임의 젊은 의원들 역시 대변인(박형준)과 홍보본부장(정병국) 등으로 선거운동 기간에 맹활약했다. 수요모임의 모태인 ‘미래연대’의 사무국장이었던 권택기씨(이명박 선대위 스케줄팀장)도 당선자의 최측근 그룹에 속해 있다. 윤여준 의원은 조용히 뒤에서 조언하며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 그의 조언은 결정적 순간마다 이 후보를 구했다.

당 쇄신을 외치는 이들을 철저하게 견제했던 박근혜 전 대표계 의원들은 이제 이명박 당선자의 눈치를 보는 처지로 전락했다. 공수가 바뀐 셈이다. 당선자의 당 개혁 의지는 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당선자의 막강한 후광을 입은 이들이 다시 당 개혁을 외칠 때 어떤 ‘복수혈전’이 펼쳐질지 관심을 모은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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