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12월19일 저녁 이명박 당선자 부부가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무서운 결과다. 2위와 530만 표 차이, 거의 더블 스코어다. 이승만 정권 이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이렇게 일방 게임은 없었다. 여야 정치인들은 선거 결과를 접한 뒤 한결같이 ‘무섭다’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한나라당 박형준 대변인은 “국민의 시각이 무섭도록 단호했다”라고 말했다. 대통합민주신당 관계자는 “완벽하게 졌다. 국민이 너희 역할은 이제 끝났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무섭다”라고 말했다.

 

표심을 살펴보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강력한 정부를 꾸리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지금 추세라면 4월 총선도 한나라당의 압승이 예상된다. 물론 낙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른바 이명박 특검이 기다린다.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국회는 당분간 ‘여소야대’로 굴러간다. 살얼음판 선거 정국이 4월까지 연장된다. 그런 가운데서 국민은 조속한 ‘성과’를 기다린다. 유권자는 이명박 당선자를 무섭게 지켜볼 것이다. ‘흠집이 많은데 대통령직 잘 수행할까’라는 의혹의 시선을 지지자나 반대자 모두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초반부터 삐걱댄다면 최약체 대통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여전히 상존한다.

키는 이명박 당선자가 잡고 있다. 그는 이제 장애물 달리기의 첫 번째 장애물을 건너뛰었을 뿐이다. 이 당선자가 넘어야 할 아홉 고개를 짚어봤다.

#사실상 ‘이명박 특검’이 될 BBK 특검
대통령 선거 이틀 전에 BBK 특검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명박 당선자의 주가조작 혐의를 조사하기 위한 사실상 ‘이명박 특검’이다. 대통령 당선자가 특검의 조사실에 출석해야 하는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 특검 결과에 따라 엄청난 파문이 일어날 수 있다. 결과 여부를 떠나서도 이명박 당선자에게는 정치적 부담이다. 한나라당이 특검 무산을 위해 파상 공세를 펼치는 이유다.

12월20일과 21일,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연 이틀 “노무현 대통령이 이명박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안상수 원내대표와 박형준 대변인도 정치 해법을 촉구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있다. 이 당선자도 “특검해서 무혐의로 나오면 의혹 제기자가 책임져야 한다”라고 거들었다.

특검은 여야 모두에게 양날의 칼이다. 빼들면 누구든 다칠 수밖에 없다. 청와대와 대통합민주신당은 일단 한나라당의 거부권 행사 요구에 반발했다. 신당 쪽도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역풍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신당 쪽이 정치 해결을 모색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신당 관계자는 “대선 참패를 수습하고 총선 준비를 해야 하는 과정에서 BBK 특검만큼 강력한 동력이 현재로서는 없다”라고 말했다. 여야의 BBK 재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여소야대’에서 맞는 첫 총리 인사청문회
이명박 정부의 첫인상은 연말부터 시작될 각종 인사에서 드러난다. 12월25일 전후로 대통령직 인수위원들의 인선 결과가 발표된다. 1월 초에는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수석 인선이 마무리된다. 이어서 조각 작업이 시작된다. 가장 큰 관심사는 총리를 누가 맡느냐에 쏠릴 것이다. 역대 정권마다 첫 총리가 차지하는 상징성이 컸다. 노무현 정부는 대통령의 불안감을 잠재우고 안정적인 국정운영 자세를 보여주기 위해서 고건 총리를 선택했다. 김대중 정부는 DJP 연합의 약속대로 김종필씨를 총리에 지명했다. 고건 총리는 곧바로 국회 인준을 받았지만, 김종필 총리는 한나라당의 반발로 6개월 동안 서리 딱지를 뗄 수 없었다.

 

ⓒ시사IN 윤무영12월19일 저녁 한나라당 당사에서 강재섭 당 대표를 비롯한 당직자들이 ‘이명박 당선 확정’을 알리는 뉴스를 보며 환호하고 있다.

지금은 서리 제도가 사실상 없어졌다. 한나라당은 야당 시절 서리 임명의 위헌 시비를 계속 제기했고 결국 사실상 관철했다. 총리는 대통령이 지명한 뒤 20일 이내에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한다. 내각은 총리의 제청이 있어야 구성할 수 있다. 이명박 당선자는 1월 중순 첫 총리를 지명할 예정이다. 여야 대결로 인사청문회가 파행할 경우, 이명박 정부는 초반부터 대통령만 있고 장관 한 명 없는 국정 공백 사태에 빠질 수 있다. 대통합민주신당 유시민 의원은 12월19일 밤 개표방송 때 토론자로 나와서 이런 사태를 이미 경고한 바 있다.

#한나라당 개혁과 ‘이명박당’ 만들기
앞서 두 문제가 대선 후폭풍에 속한다면, 지금부터는 이 당선자의 정치력이 본격 시험대에 오르는 항목이다.

 

12월19일 밤, 한나라당 상황실. 방송 카메라가 물러난 뒤 이명박 당선자가 마이크 앞에 다시 섰다. 이 당선자는 강재섭 대표를 비롯한 참석자들의 이름을 죽 나열한 뒤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의 힘이 없었다면 저 같은 외래인이 승리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들 앞에서 스스로를 ‘외래인’이라고 불렀다.

“이 당선자는 한나라당에 부채 의식이 없다”라고 한 측근은 말했다. 이 당선자는 서울시장 퇴임 후 한나라당 복귀 대신 신당을 창당하려고 한 적도 있다. 스스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의도식 정치를 확 바꾸겠다”라고 말해왔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4월 총선에서 안정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당의 환골탈태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집권당을 명실상부한 ‘이명박당’으로 만들기 위해서도 당 개조가 불가피하다. 한나라당은 이미 당 개혁 프로그램 마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 개조의 면모는 우선 총선 후보 공천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한나라당은 1월 중순쯤 공천심사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다. 이 당선자 측근은 또한 당·청 분리를 규정한 당헌을 개정하는 작업을 준비 중이다.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은 참여정부 실패의 원인으로 당·청 분리 때문에 대통령이 당의 도움을 받지 못한 점을 들었다.
하지만 공천 물갈이나 당헌 개정 모두 당내 반발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특히 개혁 대상 의원 대부분이 영남 출신의 ‘친 박근혜’ 성향일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들 사이에서 “벌써부터 권력 투쟁을 시작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현실 제약을 돌파하고 당 개혁을 이루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 이명박 당선자의 정치력이 첫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이명박당’의 비주류 박근혜 전 대표
이명박당으로 새롭게 세팅을 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박근혜 전 대표다.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의 주류이다. 경선 때 당내 투표에서 이명박 후보를 눌렀지만, 본선 때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이 후보를 지원했다. 대선 직후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선 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으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꼽혔다. 이명박 당선자는 대선 직후 “(박 대표의) 협조에 대해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라고 치하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영남당, 완고한 보수주의자의 상징이다. 이 당선자가 내세우는 중도 실용주의와 색깔이 맞지 않는다. 원칙을 중시하는 박 전 대표가 당·청 분리를 명문화한 당헌 개정 작업에 선선히 응해줄지 미지수다. 공천 과정에서 마찰이 일 가능성도 크다. 그렇다고 대중 인기와 정치력을 두루 갖춘 박 전 대표를 홀대할 수는 없다. 박 전 대표는 이명박 당선자에게 이래저래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다.

#이회창당 혹은 ‘정통 보수’의 딴죽걸기
정두언 의원은 대선 직후 “과반을 넘기느냐 아니냐는 큰 문제가 아니다. 이회창 15%가 뼈아프다”라고 했다. 이회창 후보는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선거 자금을 전액 돌려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이제 신당 창당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나라당 처지에서 볼 때 보수 세력이 둘로 나뉘는 셈이다. 당장 공천 물갈이가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공천 탈락자가 이회창당으로 건너가 출마하는 사태를 우려해야 한다. 이명박식 실용주의 노선에 딴죽을 걸 ‘꼴통 보수’들의 집결지가 국회 안에 생기는 것도 신경 쓰이는 일이다.

 

ⓒ시사IN 윤무영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12월20일 오전 당선자 신분으로 첫 기자회견을 열고, 앞으로 펼칠 중도 실용주의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미 대북 정책에서 이회창 후보의 영향이 미친 바 있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지난 7월 한반도평화비전을 발표했다. 이명박 후보도 동의한 이 안은 ‘한나라당식 햇볕정책’으로 불릴 정도로 전향적인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이회창 후보가 출마한 직후 한반도평화비전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회창 후보는 선거 기간 내내 이명박 후보를 사이비 보수라고 불렀다. 일부 보수 단체가 여기 호응했다. 이명박식 실용 정치가 보수의 칼날을 맞고 휘청거릴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

#‘경제 살리기’ 기대감에 들뜬 국민
이명박 당선자는 12월19일 저녁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당사 마당과 서울시청 앞 광장, 청계 광장을 잇달아 찾았다. 그때마다 새 당선자를 환영하는 군중이 그를 둘러쌌다. 그는 가는 곳마다 ‘경제를 살려달라’는 주문을 들었다. 경제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은 엄청나게 크다. 그러나 경제에서 한순간에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환호하는 군중이 어느 순간 표변해 적대자로 돌아설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군중 심리의 열탕과 냉탕을 전형적으로 체험했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반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문에 집중할 계획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명박식 개혁은 청와대와 정부기구를 축소하고, 공공 부문을 민영화하는 데서부터 시작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럴 경우 그가 공약으로 내걸었던 금산분리 재검토나 MBC 민영화, 신문·방송 겸업 허용, 사학법 개정 등이 사회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다. 관련 단체의 극심한 반발이 예상되며, 전교조를 비롯한 노동단체가 유탄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명박식 개혁에 대한 국민 호응이 높다. 이익 집단의 반발은 여론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계륵이 되어버린 한반도 대운하
대운하가 이명박 당선자에게 짐이 될지 제2의 청계천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한반도 대운하 공약은 선거 기간 중 BBK 사건 때문에 묻히기는 했지만 이명박 후보가 내세운 가장 논쟁적인 공약이었다. 대운하 공약을 발표하자마자 환경단체에서 반대 목소리를 높였고 곧 사회 쟁점이 되었다. 한나라당 안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이 당선자는 현재까지 대운하 추진 의사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선거전 초반에 한반도 대운하 공약에 우려를 표하거나 기자들을 만날 때면 선거 공약으로 그칠 것이라고 말하던 한나라당 관계자들이 최근에는 일제히 대운하 공약이 현실화되리라는 쪽에 무게감을 싣고 있다. 이명박 후보는 대운하를 정부 예산이 아닌 민자 사업으로 한다고 발표했다.

이 당선자의 측근 중에서는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만이 유보 의견을 보이고 있다. 그는 “국민 합의가 있어야 한다. 바로 착수하기는 어렵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대운하에 대한 국민 합의를 얻어낼 수 있을까. 이 당선자가 짊어진 과제다.

#취임식 44일 뒤에 치러지는 총선
대통령 취임식 이후 44일 만에 총선이 치러진다. 이명박 정부는 총선이 끝나면서 본격 발진한다. 박희태 국회부의장은 “압도적 승리를 보장해서 국회가 뒷다리를 잡아서 못했다는 이야기가 안 나오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과반수가 무난하리라고 본다. 과거 사례를 보면 집권 초 6개월 정도는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밀월 기간이 유지되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이 기간에 모두 90%에 이르는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이 당선자는 밀월 없는 집권 초를 맞이할 가능성이 있다. BBK 특검이나 초반의 일시 여소야대 기간에 여야 격돌이 예상된다. 총선이 대선의 연장전처럼 치러질 공산이 크다. 이 기간에 국민의 견제 심리가 작용한다면 예상을 벗어난 총선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이명박의 적은 이명박
선거전 말미에 ‘노명박’이라는 표현이 유행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후보의 이름을 합쳐서 만든 조어다. 이회창 후보 캠프에서, 검찰이 이명박 후보를 봐주고 있으며 이명박 후보는 이를 대가로 노 대통령의 퇴임 이후를 보장하는 야합을 했다는 ‘설’을 흘렸다. 정동영 후보도 연설 중에 노명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노무현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꾀했다.

‘노명박’은 대선 공세 차원에서 만든 조어였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와 노무현 대통령의 공통점을 지적하는 사람도 많다. 두 사람은 가벼운 말실수 때문에 여러 차례 설화를 겪었다. 두 사람 모두 솔직하고 격식 파괴를 즐긴다는 점에서 기질이 통한다. 노 대통령은 집권 초반 한때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호감을 가졌고, 청계천 복원을 적극 지원했다. 이 당선자 또한 서울시장 시절 “솔직히 이회창 후보보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인간적으로 더 끌린다”라고 말해서 이회창 후보의 분노를 산 일이 있다.

노 대통령은 가벼운 입 때문에 초반 점수가 깎였고, 친·인척과 측근이 구설에 휘말리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지지자들이 반대하는 정책을 강행하고 반대편을 끌어안지도 못하면서 정치 위기를 겪었다. 이명박 당선자 또한 거짓말 공방에 휩싸여 있다. 사돈이 하는 기업은 벌써 구설에 올랐다. 10년 동안 ‘춥고 배고픈’ 야당 생활을 해온 한나라당 당직자들 또한 요주의 대상이다. 이명박 당선자에게 CEO 특유의 독선 면모가 강하다는언급이 그를 접해본 사람들 사이에서 나온다. 이 당선자가 닮은꼴인 노무현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느냐를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기자명 안철흥 기자 다른기사 보기 ahn@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