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대선 경선과 본선을 거치면서 많은 참모가 낙오했지만 조해진 공보특보(맨 왼쪽)와 박영준 네트워크팀장(가운데)은 끝까지 신임을 받았다.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5일 남긴 지난 12월14일(금요일) 오후 이명박 후보 상임특보인 박재성씨(44)에게 한 통의 협박 전화가 걸려왔다. 이명박 후보가 ‘BBK는 자기 회사’라고 직접 말하는 동영상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성산대교 아래 한강둔치로 박 특보를 데려가 문제의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사실이었다.

 

박 특보는 선거 캠프로 돌아가 상황을 보고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다시 저녁 무렵 협박범들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오늘이 지나면 대통합민주신당 ○○○ 의원에게 자료가 넘어간다. 내일까지 100억원을 마련해라”라고 알려왔다. 협박범들은 모 후보와도 직접 통화했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이튿날인 12월15일(토요일) 오후 3시, 박 특보는 마포구 도화동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협박범들을 만났다. 협박범들을 설득해보려 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협박범들은 저녁 무렵 다시 전화를 걸어 “CD가 두 개이니 첫 번째 CD에 30억원을 받고 그 다음 CD를 넘겨줄 때 30억원을 받겠다”라고 알려왔다. 5분 후 다시 전화를 걸어 이들은 요구 금액을 60억원이 아닌 30억원으로 수정했다.

박 특보는 협박범들과 한 시간 뒤쯤 만나기로 하고 마포구 서교동의 한 호텔로 약속 장소를 잡았다. 그리고 캠프에서 건장한 후배 두 명을 불러 함께 그 호텔로 출발했다. 정두언 의원에게 그 상황을 보고했다. 정 의원이 만류했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정 의원은 그에게 “꼭 거기를 직접 가야겠냐? 너무 위험하지 않냐? 몸 다치지 않게 조심해라”라고 당부했다.

 

경윤호 조직지원팀장.

협박범 세 명이 모두 와 있었다. 그는 그들과 거래를 하는 척하며 후배에게 다른 방 키를 건네주면서 돈을 가져오라는 시늉을 했다. 협박범들은 미소 지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미리 맞춰둔 신호였다. 후배가 방문을 열자마자 경찰이 들이닥쳤다. 그는 경찰에게 “제압하세요”라고 짧게 말한 뒤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갔다. 그의 손에는 범인들의 협박 내용이 고스란히 녹음된 테이프가 들려 있었다.

 

협박범들이 경찰에 붙들려간 다음 날 문제의 동영상이 대통합민주신당을 통해 공개되었다.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하루 사이에 지지율이 10% 가까이 빠져나가는 초비상 사태가 벌어졌다. 다행히 협박범들과 거래하지 않고 직접 신고해서 잡아들였다는 것으로 이명박 캠프로서는 동영상에 대한 최소한의 알리바이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어차피 동영상은 유출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박 특보는 정공법을 택했다. 협박범과 거래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한 것에 대해 그는 “정면으로 돌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빌미를 남기면 당선이 되더라도 두고두고 문제가 되리라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동영상이 공개되고 일시적인 지지율 하락이 있었지만 영남권을 중심으로 표 결집 현상이 나타나 오히려 차이가 더 벌어졌다.

보이지 않는 곳의 숨은 공로자 많아

 

박재성 상임특보.

대선 막바지 최대 이슈였던 BBK 동영상 공개와 관련해 현장을 지휘한 박재성 특보는 이명박 캠프의 정무팀장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명박 당선자의 오른팔이 정두언 의원이라면, 정두언 의원의 오른팔은 박 특보였다. 매순간 상황에 맞게 적절히 대처하면서도 그에 대한 정치적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 정무팀장의 소임이다. 박 특보는 이를 무난히 처리해 이 당선자의 총애를 받았다.

 

정확한 정무적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첩보 활동도 중요하다. 그는 이회창 후보가 박근혜 전 대표를 만나려고 한다는 첩보를 듣고 그 만남이 동영상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인제 후보나 문국현 후보가 끝내 정동영 후보와 단일화하지 않기로 했다는 첩보를 듣고 BBK 동영상 사건을 정면 돌파하기로 결정했다.

BBK 동영상 사건 말고도 선거 과정에서 박 특보는 무수히 많은 현안에 대처했다. 현안이 발생하면 이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대책을 마련하고 그대로 실행해서 뒤처리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특히 BBK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서는 대전교도소에 김경준씨의 미국 교도소 동기가 수감 중인 것을 파악해 대비했고, 대통합민주신당의 공격 내용을 미리 파악해 대응논리를 미리 만드는 등 많은 일을 했다.

많은 큰일을 했지만 그가 언론에 등장한 것은 BBK 동영상 사건을 포함해 두 번뿐이다. 그 까닭은 그가 처음 언론에 등장하게 된 사건과 관련이 깊다. 한나라당 경선이 시작되기 전 그는 이명박 후보의 경선 캠프에서 상황실 부실장으로 내정되어 있었다(상황실장은 정두언 의원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확정되지 않은 명단이 유출된 것이다.

 

ⓒ뉴시스정태근 유세지원단 수행단장.

한 지방 일간지에 검토 단계에 있는 경선 캠프 명단이 발표되자 그는 철퇴를 맞았다. 그를 비롯해 그와 가까운 이태규·경윤호·윤석대 등이 모두 핵심 업무에서 배제되었다. 정두언·박형준 의원 등과 가깝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들은 자리를 받지 못하거나 비중이 작은 일을 맡거나 지방으로 밀려났다. 이들을 찍어낸 사람은 이재오 의원이었다.

 

한직에 밀려나 있던 이들은 정두언 의원이 대선준비팀을 총괄하면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태규씨는 전략기획간사 발령을 받았고 경윤호씨와 윤석대씨도 조직 쪽으로 일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이때도 박씨는 자리를 받지 못했다. 선대위가 꾸려질 무렵 그는 이명박 후보의 특별 지시에 의해 보직을 받았다. 그에게 직책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파악한 이 후보는 그를 상임 특보로 임명하고 정무 일을 총괄하게 만들었다.

박 특보와 함께 한직에 밀려났다가 대선준비팀부터 조직기획 일을 맡게 된 경윤호 조직기획팀장은 이제 한나라당 의원들도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었다. 남경필 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김문수 의원이 경기도지사로 당선된 뒤 경기도 대변인을 했던 경 팀장을 이제 의원들도 ‘보좌관급’으로 보지 않는다.

선대위에서 ‘좌태규, 우윤호’라 불릴 만큼 이태규 전략기획팀장과 함께 실무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경 팀장이 맡은 업무는 당 공조직의 활성화를 위한 기획과 감찰 업무다. 그는 전국 243개 당원협의회에 조직기획위원을 발령하는 실무를 관장했다(현재 200여 곳 임명). 조직기획위원은 당원협의회장을 견제할 수도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의원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진성호 뉴미디어팀장.

경 팀장은 대선 결과를 선거구별로 분석하는 작업도 맡고 있다. 이 분석 결과와 지역 관리 성적이 종합적으로 평가되어 제18대 총선 공천이 결정되기 때문에 의원들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경 팀장은 매우 조심스럽게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는 “경선이 끝난 이후 지역 조직에서 소외된 박근혜계 사람들을 배려해 포용하는 데 주력했다”라고 말했다.

 

본선에서는 각종 조직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활용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팬클럽과 같은 외곽의 우호 단체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도록 조직을 다시 편제했다. 부산 지식인 1000인 선언, IT분야 1500인 선언 등 줄을 이었던 사회 직능단체 지지 선언도 모두 그의 작품이었다. 함께 수요모임에서 실무를 맡았던 윤석대 전략지역팀장은 호남과 충청 지역을 맡아 경 팀장을 돕고 있다.

최측근 '하이서울팀'도 경선과 본선 과정에서 일부 밀려나

보좌관이었던 경 팀장과 의원들의 뒤바뀐 처지는 이명박 용인술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당선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실무자 위주로 구성하겠다”라고 말했다. ‘여의도식 정치’를 극복하겠다고 말하는 당선자는 현역 의원을 인수위 구성에서 배제할 의사를 명확히 했다. 당선자의 이 발언은 대선 캠프 실무자들을 한껏 고무시켰다. 성골·진골(국회의원)보다 6두품(캠프 실무자)인 자기들을 중용하겠다고 당선자가 약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곽승준 대선정책기획팀장.

정두언 의원 등 이명박 캠프 핵심 관계자와 참모들의 상호 평가를 통해서 이명박 당선자의 대선 승리에 기여한 ‘십이지신’을 꼽아보았다. 박재성 상임특보와 경윤호 조직지원팀장을 비롯해 곽승준(대선정책기획팀장) 권택기(스케줄팀장) 김대식(네트워크팀장) 김해수(비서실 부실장) 박영준(네트워크팀장) 신재민(메시지팀장) 이태규(전략기획팀장) 정태근(유세지원단 수행단장) 조해진(공보특보) 진성호(뉴미디어팀장) 등이 이명박 시대의 ‘앙팡 테리블(무서운 신예)’로 꼽혔다.

 

이명박 당선자가 서울시장일 때 함께했던 참모들을 캠프에서는 ‘하이서울팀’으로 부른다. 이 하이서울팀을 시작으로 안국포럼을 거쳐 경선팀과 대선준비팀, 본선팀으로 이어온 참모 계보는 피 튀기는 내부 투쟁을 통해 정돈되고 또 정돈되었다. 내부 투쟁에서 살아남고 외부 영입 전문가와의 경쟁에서 이겨낸 이들이 이명박 정부 전반부의 주인공이 되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교수 출신으로는 곽승준 교수(대선정책기획팀장)와 김대식 교수(네트워크팀장)의 활약이 돋보였다. 곽승준 교수는 정책 쪽에서 두각을 보였고 김대식 교수는 조직 쪽에서 맹활약했다. 이명박 캠프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교수가 1000여 명이 넘는 상황에서 이 두 사람이 돋보였던 것은 자기 분야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이명박 당선자와 곽승준 교수의 관계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에 비교된다. 김병준 교수가 지방자치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철학적 바탕을 정립해준 것을 시작으로 각종 정책 전반을 조율했듯, 곽승준 교수도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통해 정책에 관여하기 시작했지만 당선자의 공약 전반에 참여하며 이를 조율했기 때문이다.

 

김대식 네트워크팀장.

캠프 관계자들은 곽승준 교수의 탁월한 점으로 각종 정책의 핵심을 잘 파악하고 이를 간명하게 설명하며 정책을 정치적으로 부각할 줄 알고 약점에 대해 방어 논리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는 점을 꼽는다. 곽 교수는 각종 정책을 조율하고 이를 후보에게 요령 있게 설명해 후보가 정책을 빠른 시간에 체화하도록 만들었다.

 

김대식 교수는 탁월한 친화력과 근면성 때문에 두드러진 인물이다. 대선 1년 전인 2006년 12월19일 캠프에 합류한 김 교수는 곽승준 교수를 자신의 라이벌로 설정했다. 절망적인 결론과 희망적인 결론이 하나씩 나왔다. 절망적인 결론은 머리로는 도저히 곽 교수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었고 희망적인 결론은 친화력과 근면성으로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교수 출신으로는 드물게 조직 사업에 매진했다. ‘조직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생각한 그는 지난 1년 동안 243개 선거구를 총 여섯 번 돌았다. 경선이 끝나고 다들 쉴 때도 그는 쉬지 않고 돌았다. 매번 이동 거리를 기록했는데, 전부 합쳐보니 19만6400km였다. 그렇게 부지런히 움직이며 조직을 일군 덕에 이명박 당선자로부터 “캠프에서 가장 현장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다”라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대선 기간 중 김 교수와 바늘과 실처럼 늘 함께 붙어 다녔던 사람은 박영준 네트워크팀장이었다. 박 팀장은 경선 때까지 후보 수행단장을 하며 당선자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지만 조직 활동이 중요하다는 당선자의 판단을 받아들여 조직 사업에 매진했다. 경선 때 당원 투표에서 진 것에 충격을 받은 당선자는 조직을 재정비하라고 지시했다.

김 교수와 박 팀장은 지역의 포럼과 자발적 지지 그룹을 하나로 묶어 ‘선진국민연대’로 재편했다. 허수가 포함된 숫자일 수 있지만 선거를 마치고 ‘선진국민연대’에 포함된 회원 수는 463만명에 달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민주산악회’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청’과 비슷하고도 다른 ‘선진국민연대’는 구전 홍보단 노릇을 톡톡히 해서 BBK 동영상 파문 이후 표를 결집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태규 전략기획팀장과 권택기 스케줄팀장은 캠프에서 전략적 마인드가 가장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는 전략통들이다. 이태규 팀장은 캠프에서 ‘키 맨’ 구실을 하는 인물로 정두언 의원이 빠질 경우 오후 5시 회의를 주관하기도 했다. 이 팀장은 특히 시기별로 점검해야 할 중요한 사안들을 잘 집어내고 이에 대한 대책을 적절히 수립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권택기 팀장은 단순히 스케줄만을 잡는 참모가 아니다. 전략적 마인드로 무장한 그는 후보가 증권사 객장에 들르더라도 단순히 둘러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증시 3000 시대를 열겠다고 말하게 해서 방문 효과를 극대화하는 등 스케줄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인물로 꼽힌다. 경선 전에는 박근혜 전 대표 진영에서도 그를 붙들기 위해 적극 구애를 펼치기도 했다.

김해수 비서실 부실장과 정태근 유세지원단 수행단장은 후보의 지근거리에 있으면서 후보의 심중을 가장 잘 파악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김 부실장은 비서실 기능을 수행과 일정 중심에서 기능 중심으로 전환해 효율을 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비서실과 선대위 각 팀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업무를 조율해냈다는 찬사를 듣는다.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정 단장은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에 무난하게 잘 대처했다는 칭찬을 받는다.

캠프 실무진들이 의원 제치고 인수위 주축될 듯

정태근 단장은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김해수 부실장, 이태규 팀장도 학생운동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명박 캠프의 특징은 한나라당과 어울리지 않게, 운동권 출신이 캠프의 주력이라는 점이었다. 경윤호 팀장은 “기동성과 조직적인 팀플레이가 중요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운동권 출신이 실무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주간조선〉 편집장 출신인 신재민 메시지팀장과 〈조선일보〉 기자 출신인 진성호 뉴미디어팀장은 실무 능력을 인정받은 대표적인 영입 인물로 꼽힌다. 진 팀장은 당선자의 홈페이지인 ‘MB 플라자’를 포털 개념으로 확장해 진일보시켰고 블로그 등을 통한 후보 홍보를 효과적으로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해진 공보특보는 숱한 언론인이 캠프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영역을 지키며 끝까지 본연의 임무를 수행했다는 점이 높은 점수를 얻었다.

이명박 후보의 특징은 참모들을 끝없이 경쟁시킨다는 것이다. 최측근으로 불리는 하이서울팀 멤버들도 경선과 본선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수가 낙오했다. 한 캠프 관계자는 “지방행정과 중앙정치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는 참모가 많았다. 뚜렷한 특장이 없는 사람은 외부 영입 전문가에게 역할을 빼앗겼다”라고 회고했다. 선거 운동은 후보에게 도전과 응전이었던 것인 동시에 참모들에게도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인수위가 구성되면 대선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이들이 인수위의 ‘척추’ 구실을 계속 하며 이명박 정부의 밑그림을 그릴 것으로 보인다. 인수위에 합류하지 않은 사람은 지역구에 내려가 4월 총선을 준비할 것이다. 이 ‘앙팡 테리블’의 거센 도전에 현역 의원들, 특히 박근혜계 의원들은 좌불안석이다.

남은 이들 대다수는 인수위를 거쳐 청와대로 들어갈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386’으로 불린 실세 그룹처럼 이들 역시 앞으로 이명박 정부의 실세 그룹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이 오만해지면 이명박 정부 역시 오만한 정부라는 비난을 들을 것이고, 이들이 무능하면 이명박 정부 역시 무능한 정부라는 비난을 들을 것이다. 이들은 과연 5년 후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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