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 경제가 죽었다’는 전제에 동의한다면, 경제를 살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기업 활동을 가로 막는 각종 규제를 없애고, 땅을 파고 운하를 놓는 따위 경기 부양책을 쓰면 침체된 경기는 활개를 칠 수 있다.
이명박 당선자는 후보 시절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공약들을 대거 내놓았다. 그의 기업정책 핵심은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되살려 경제성장을 이끄는데 있다. 그래서 당선자는 공정거래법을 경쟁촉진법으로 전환하고, 출자총액제한제를 폐지하고, 금산분리를 완화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법인세도 낮추고 세액공제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기업 경영권을 적대적 M&A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하고, 반기업 정서도 해소하겠다고 약속했다. 그의 공약이 실현되면 ‘기업 천국’이 되고, 경기가 활성화할 가능성이 높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상무는 “규제를 완화한다고 해서 기업 투자가 증가한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기업가들의 기를 살려 분위기를 쇄신할 수는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급격한 경기 부양책 효과 있을지 의문
그래서 주식 시장에서는 기대감이 높다.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 박소연 연구원은 “이명박 당선자가 친(親)기업적 성향이 강한데다 건설업종에서 30년 가까이 종사해 건설업 중심으로 경기를 부양하려 들 것이라는 낙관론이 상당하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주식 시장의 기대감이 높은 또 다른 이유는 대통령 임기 초반에는 정부가 의욕적으로 정책을 추진해 주가가 오르기 쉽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13대부터 16대까지 대통령 임기 1개년과 2개년 주식 시장은 매우 좋았다(표 참조).
참여정부의 규제 정책으로 인해 침체에 놓인 부동산 시장에서도 당선자의 경기 부양책에 기대를 갖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 당선자는 후보 시절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규제 완화와 공급 확대를 통해 집값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취득·등록세 통합, 장기보유자에 대한 양도세 및 종부세 감면 등 부동산 세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주택 대출 규제에 대한 탄력 조정과 재건축 규제 완화 및 뉴타운 건설 등을 통해 주택을 연간 50만 가구씩 공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게다가 ‘한반도 대운하’ 계획도 내놓았다.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경부운하’와 영산강 수계의 ‘호남운하’를 2009년 착공, 2012년까지는 마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금강 수계의 ‘충청운하’와 ‘안동운하’ 등을 건설하겠다고 한다. 운하가 통과하는 곳은 항구도시로 개발할 예정이다.
1993년, 김영삼 정부 초기로 돌아가 보자. 김영삼 정부는 재벌개혁 등 강력한 구조개혁을 표방하며 출범했지만 경기 침체 상황을 한 달도 견디지 못했다. 김영삼 정부는 출범 한 달 만에 ‘신경제 100일 계획’이라는 대대적인 경기 부양 정책을 내놓았다. 행정규제 완화, 금리인하, 중소기업 1조4천억원 지원, 공산품 가격인상 억제, 인금인상 억제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재벌에 손을 내밀고 투자를 요청한 것은 물론이다. 100일 동안 한국은행이 시중에 푼 돈만 6조8천억원이며, 외채는 4백억 달러에서 1500억 달러로 급격하게 늘었다. 1백일 이후에는 다시 ‘신경제 5개년 계획’을 밀어붙였다. 그 덕에 한국 경제는 93년 5.5%, 94년 8.3%, 95년 8.9%의 성장을 이뤘다. 당시 해외경제가 좋았던 덕도 크다. 문제는 그 이후다. 정부나 기관이 설비 투자에 쓸 막대한 돈을 외채에 기대야 했고, 구조조정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그로 인해 정권 말기 IMF라는 국가위기를 부르고 말았다.
차기 정부가 안고 있는 딜레마도 여기에 있다. ‘몰핀 경제’나 다름없는 급격한 경기 부양책을 써서 경기를 활성화시킬 것이냐, 아니면 경기 침체를 당분간 감수하더라도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꾸고 튼튼히 하는데 주력할 것이냐.
경기 부양책을 기대하는 시장의 기대와 달리 경제 전문가들은 경기 부양책을 쓸만큼 다급한 상황이 아니고, 그 효과도 크지 않다고 내다본다. 지방 건설업체의 도산과 미분양이 줄을 이어 건설과 부동산 경기가 위태로워 보이지만, 전문가들은 2008년에는 회복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LG경제연구원 이근태 팀장(거시경제팀)은 “새 정부 정책과 관계없이 2008년 건설 경기는 좋아질 전망이다. 행정복합도시, 혁신도시 등 계획된 대규모 공공사업이 적잖아 계획대로 시행만 되면 2007년보다는 성장세가 높아질 것으로 본다. 2008년에 당장 경기 진작을 위해 부양정책을 써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주식 시장 전문가들은 경기부양 정책 효과에 대해 회의적이다. 한국투자증권 박소연 연구원은 “한국 경제는 글로벌화한 상태다. 중국‧미국 경기와의 연동성이 커서 정부 주도의 경기 부양 효과가 전체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다. 잠재 성장률 이상의 무리한 경기 부양은 반드시 부작용이 뒤 따른다”라고 경고했다. 박 연구원은 또 과거와 달리 이명박 정부에서는 주가가 좋아지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1980년 이후 대부분의 대통령 임기는 경기 저점 국면에서 출발해 주가가 올랐지만, 차기 정부는 경기 정점에서 시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명박 당선자의 스타일과 그의 경제 참모들을 보면 규제 완화 정책은 빠르게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 진다. 이 당선자는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 “경제가 산다는 것은 결국 기업이 투자하는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 하는 것 자체로 투자의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다”라며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됨으로써 기업인들이 투자할 수 있는 경제 환경이 완전히 바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삼성과 재벌들 해결사 노릇할까 걱정"
당선자 곁에 있는 경제 참모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당선자에게 경제 정책을 조언하는 대표적인 참모는 고려대 곽승준 교수와 강만수 전 재경원 차관, 황영기 전 우리금융회장,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 등이다. 이들 모두 ‘시장’을 중시하는 경제관을 가졌다. ‘삼성맨’ 출신 황영기 전 회장은 말할 것도 없고, 강만수 전 차관과 윤진식 전 장관 역시 시장 지향적인 관료로 유명했던 이들이다. 이들은 외환위기 당시 각각 재경원과 청와대에서 일했었다. 환경경제학이 전공인 곽승준 교수는 오래 전부터 경부운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시장보다 강한 정부는 없다’는 논리를 주장해 왔다.
그래서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한성대 교수‧무역학)은 “당선자나 경제 참모들을 보면 너무 보수적인 동질성을 가지고 있어 위험해 보인다”라고 지적한다. 특히 핵심참모 중 상당수가 재경부 관료 출신이어서 일방적으로 보수적이고 재벌 중심적 경제정책이 집행될 위험성이 있는데, 여기에 이명박 당선자의 ‘불도저형 리더십’까지 결합되면 사회갈등을 유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인하대 김진방 교수(경제학)는 “당선자의 공약과 참모들을 보면 삼성과 재벌들의 해결사 노릇을 해주지 않을까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즉 금산 분리 완화나 출자총액제한제 폐기, 경영권 방어 장치 도입 등은 모두 삼성과 재벌들이 소원하던 것이어서 이런 공약을 실천할 경우 재벌 체제가 고착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김 교수는 “당선자 공약의 실현 여부는 집권 후 손 잡는 세력들 사이의 역학관계에 달려 있다. 당선자가 재벌을 연대 세력으로 낙점하는 순간 경제력 집중과 그 폐해는 막을 길이 없어 질 것이다”라고 걱정했다.
규제 완화와 경기 부양책 결합하면 큰일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규제 완화와 경기 부양책을 동시에 시행하는 것이다. 김상조 소장은 “차기 정부의 규제 완화가 경기 부양과 결합되면 한국 경제에는 태풍이 몰아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이명박 당선자가 급한 마음에 무리한 경기부양정책과 무분별한 규제완화정책을 동시에 시행한다면 한국 경제는 김영삼 정부 때와 비슷한 위험에 봉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차기 정부가 내놓을 구체적인 정책보다 곧 진행될 조직 개편을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홍익대 전성인(경제학) 교수는 “조직은 일단 한번 개편되면 되돌리기 어렵다. 차기 정부에서 작은 정부를 만들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든다는 미명 아래 공정거래위원회를 축소하고 금융감독원과 금융감독위원회를 통폐합해 기능을 약화시킬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위원회는 기업 규제와 재벌을 불편하게 만들고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정 기관이다. 그래서 재벌과 전경련을 비롯한 경제단체들은 틈만 나면 두 사정기관을 ‘흠집내기’ 바빴다. 전성인 교수는 “두 사정기관의 힘을 빼면 기업들은 심판 없는 게임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그 폐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결과적으로 한국 경제에 심각한 그늘을 드리우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명박 당선자는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 “성장의 혜택이 서민과 중산층에게 돌아가는 신발전 체제를 열어야 한다” 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대로 될 것인지 아니면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재벌과 기득권층에게만 떡고물이 떨어지는 ‘그들만의 경제 살리기’로 남을 것인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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