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퀴즈쇼 노란봉투'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손잡고 제공
1월1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퀴즈쇼 노란봉투'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손잡고 제공

저와 같이 〈시사IN〉을 읽고 계실 독자님들께 편지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다니 봄날의 소풍처럼 설렙니다. 저는 경기도 용인에 사는 세 아이의 엄마 배춘환입니다. 10년 전 〈시사IN〉을 처음 만났고 '독립투사에게 독립자금을 보내는 비장한 심정'으로 구독을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뭔가 정보로부터 고립된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거든요.

그때 저는 우리나라 3대 신문 중 하나를 구독하고 있었고, 지상파 3사 뉴스만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미디어에서 하는 말과 나의 삶 사이에 너무 괴리가 느껴져 제 인생을 해석해낼 팩트에 목말라 있었습니다. 그러다 〈시사IN〉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는 일반 채널에선 잘 들려주지 않는 정치나 세계의 실상, 동시대를 살아가는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성실하게 담겨 있더라고요. 드디어 팩트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잡지는 장수해야 해!’라는 사명감으로 n분의 1의 몫을 감당하고자 구독을 해오고 있습니다.

〈시사IN〉을 만나기 전 저의 세계는 우리 가족, 이웃들 정도만 들어가는 작은 곳이었습니다. 이번 달은 대출이자를 어떻게 갚지, 올해는 월세를 얼마나 올려줘야 하나, 남편 설 보너스는 좀 나오려나. 돌아보니 그때는 꿈도 비전도 계획도 없이, 통장에서 다달이 빠져나갈 금액이 모자라지 않도록 채워놓는 것에 삶의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며 산 것 같습니다. 그런 생활 가운데 만난 〈시사IN〉은 삶을 해석할 수 있는 팩트도 제공해주었지만 제 세계를 넓혀주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현장실습 과정에서 사망한 한 아이가 제 세계에 들어오고, 파업했다고 손해배상 청구를 당한 아빠가 집에 잘 들어오지 못해서 ‘아빠가 보고 싶어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는 4학년 아이가 제 세계에 들어오고, 기계에 황망하게 끼어 사망한 한 청년이 제 세계에 들어오고…. 그렇게 〈시사IN〉과 함께 제 세계는 넓어졌습니다.

오늘 제가 이렇게 편지를 띄우는 이유는 〈시사IN〉 애독자분들이 가지고 계신 하나하나의 세계와 저의 세계가 알고 보면 많이 겹쳐 있고 또 가깝게 연결돼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자리를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바로 5월14일 열릴 ‘퀴즈쇼 노란봉투를 열어라’입니다(홈페이지 https://noranbongtoo.com).

‘노란봉투’는 2014년, 파업을 한 노동자에게 삶을 무너뜨릴 만큼의 무거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낀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노란봉투 캠페인’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노란봉투 캠페인’은 노동법의 부당한 부분을 개정하자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는데요, 곧 열릴 것 같던 희망의 ‘노란봉투’가 벌써 9년째 꾹 닫혀 있습니다. 47억원, 10년 전 해고 노동자들에게 47억원을 배상하라는 기사를 읽고 기가 막혀서 말도 나오지 않았는데 그사이 470억원을 손해배상하라는 수준으로 상황이 악화되었네요. 복잡한 법리는 잘 모르지만, 살겠다고 일하겠다고 애쓰는 사람들을 법에 기대어 거액의 돈으로 눌러버리는 행위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제 첫아이가 10년 뒤 스물다섯 살이 됩니다. 그때도 노동자에게 47억원, 470억원, 심지어 4700억원이 되어 있을지도 모를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나라일까 봐 겁이 납니다.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일들이 태연히 벌어지니 마냥 이 나라는 네 꿈을 펼칠 수 있는 나라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국회의원도 열지 못하고, 대통령도 열지 못한 ‘노란봉투’를 우리 시민들이 직접 열어보자고 제안드립니다. 우리 노동자 시민을, 우리 노동자 시민이 지켜내자고 제안드립니다.

‘퀴즈쇼 노란봉투를 열어라’는 나와는 멀게 느껴졌던 ‘노동’이라는 단어가 내가 매일 마시는 커피이고, 내가 매일 타는 전철이고, 내가 매일 걷는 거리임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우리 함께 5월에 만나요. 그리하여 우리 시민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어요. 우리의 세계들이 따로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해보아요. 그날 함께 노란봉투를 열어요.

연대의 마음을 담아 〈시사IN〉 독자 배춘환이 드립니다.

기자명 배춘환(노란봉투 캠페인 제안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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