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저주토끼〉 작가 정보라입니다. 전직 대학 강사였고 현재 학교를 상대로 퇴직금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강사로 일하던 시절에 저는 비정규직 강사도 퇴직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강사도 노동자이고 그러므로 다른 모든 노동자와 같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주 오랫동안 저는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데모’는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저는 유학도 하고 박사학위도 받은 특권층이니까 그런 권리를 주장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저 노력해서 논문 많이 쓰고 강의평가 잘 받으면 언젠가 기회가 와서 정규직 교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붙들고 24학기, 만 12년 동안 비정규직 강사로 살았습니다.
그 학교는 여자 교수를 뽑지 않는다는 이야기, 50세 넘으면 교수로 임용될 수 없다는 이야기도 선배 강사 선생님들한테 암암리에 들었습니다. 정규직 교수로 임용되지 못한 채 나이가 들어서 해고당하면 그 뒤에 어떻게 되는지 저는 생각만 해도 너무 무서워서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나이가 많다고, 여자라고 해고당하는 것은 명백한 부당해고인데 저는 제가 속한 분야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수도 강사와 똑같이 학교에 고용된 입장인데, 모든 교수의 마음에 들어야 하고 단 한 명이라도 저를 싫어하는 교수가 있으면 해고될 수 있다는 현실에도 의문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냥 이 분야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반 회사에서 비정규직 한 명을 정규직 전환할 때 모든 기존 정규직 직원이 다 찬성해야만 채용할 수 있다면 그 회사는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학교는 그렇게 돌아갑니다. 저는 이 모든 일이 굉장히 비정상이고 아주 부당하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부당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저도 굳이 깊이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제가 노동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노동자로서 제가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상황이 부당한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와 같은 상황에 계시는 분들을 위해서, 앞으로 대학 강단에 서실 미래의 강사 선생님들을 위해서, 저는 노동자의 권리와 노조법에 대한 지식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노조 할 수 있고 노동자로서 권리를 찾을 수 있고 나를 실제로 고용해서 내 노동으로 득을 보는 고용주가 노동자인 나에게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쉽게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정규직이 될 거니까, 나는 능력 있고 노력도 열심히 하니까, 그러니까 나는 노동자가 아니고 그러므로 부당한 상황도 능력과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틀렸습니다. 사업장에 고용되어 임금을 받는 사람은 모두 노동자입니다. 나의 노동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노동자로서 내 권리를 찾고 내 뒤에 이 자리에 설 미래의 노동자를 위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퀴즈쇼 노란봉투를 열어라!〉는 5월14일(일) 오후 3시 성동구민종합체육센터 대체육관에서 진행됩니다. 시민제작위원으로 퀴즈쇼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https://noranbong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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