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장 안의 개들은 발자국 소리가 없다. 적요한 가운데 개 짖는 소리만 오발탄처럼 간간이 터져 나왔다. 취재진의 조명이 개들의 얼굴을 비췄다. 어떤 개는 사체가 썩어가는 케이지 옆에 몸을 웅크렸다. 어떤 개는 감염돼 튀어나온 눈알로 허공을 쳐다봤다. 두려움을 숨기려 썩은 음식물이 담긴 밥통에 고개를 박았다. 오물 위에서 오물을 먹었다. 도살장은 비감스러운 악취를 풍겼다.
지난 7월9일 새벽 3시,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이하 동해물)’은 경찰 동행하에 경기 여주시에 위치한 개 도살장을 급습했다. 경기 성남시 모란시장의 한 건강원에서 운영하는 도살장이다. 개 2000여 마리를 사육하는 ‘개농장’에서 한 번에 약 60마리씩 이곳 도살장으로 개를 ‘납품’한다. 도살은 인적이 드문 새벽 3시경 이루어진다. 경찰과 단체가 들이닥쳤을 때 전기봉을 들고 있던 도살업자들 앞에는 도사견 세 마리가 쥐어짜다 만 빨래더미처럼 철장 안에 구겨져 있었다. 개들은 꼼짝하지 않았다. “죽었나? 살아 있나?” “숨쉰다. 살아 있다!” 활동가들의 손이 분주해졌다.
개 도살은 불법인가? 이를 불법으로 규정한 현행법은 없다. 다만 개를 도살하는 거의 모든 방법은 동물보호법 위반이다. 지난해 대법원은 전기 꼬챙이로 개를 감전시켜 도살한 개농장 주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이 방법이 동물보호법 제8조 1항이 금지하고 있는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대부분 도살업자들은 전기봉을 이용해 개를 도살해왔다. 동물단체들과 전문가들은 이 판결이 개 도살 금지로 나아갈 중요한 이정표가 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전국 수천 곳의 개 사육장은 여전히 합법과 비합법 사이에서 성행 중이다.
8개월간 성남 모란시장의 건강원과 도살장, 경매장, 농장 등을 추적 감시하고 조사해온 동해물의 이지연 대표는 “이곳 도살장을 너무 오래 지켜봐왔다. 지금 이 순간이 온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라며 운을 뗐다.
“이제는 목을 매서 개를 죽이거나, 때려죽이거나, 감전시키는 것이 모두 유죄가 되었는데도 농림식품부는 육견협회가 주장하는 ‘뇌를 통해서 전류를 보내 개를 죽인다’는 말을 믿으며 개 도살 자체가 불법이 아니라고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날이 밝자 여주시 동물보호과 담당자들이 도착했다. 동물학대 여부를 판단하는 데 한나절이 걸렸다. 결국 도살장 내 60마리 중 16마리만 보호소로 이송됐고 나머지 44마리는 다시 업자의 손에 넘어갔다. “개는 축산법상 가축이다. 개 사육 농장으로 등록돼 있으면 합법이기 때문에 함부로 소유물(개)을 데려올 수가 없다. 도리어 재산권 침해로 법적조치를 당할 수도 있다.”
도살장 대표는 이미 이 사달의 끝을 알고 있었던 걸로 보인다. 그는 한마디만 남겼다. “동물보호법대로 처리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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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잊는다, 그들도 생명이라는 걸 - 〈우리는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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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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