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5일 전북 익산 한 방음벽에 부딪혀 죽은 꿩의 사체를 든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관리연구실장. ⓒ시사IN 이명익

2018년 10월 환경부와 국립생태원이 발표한 ‘인공구조물에 의한 야생조류 폐사방지 대책 수립’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서 투명 방음벽에 부딪히는 새는 한 해 19만7732마리로 추정된다. 건물 유리창에 부딪히는 새는 764만9030마리에 달한다. 모두 합치면 한 해 784만6762마리다. 하루 평균 약 2만1000마리가 사람이 만든 인공적인 구조물에 부딪혀서 목숨을 잃는다.

비율로 따지면 건물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 새(97.5%)가 투명 방음벽에 떨어져 죽는 새(2.5%)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새 유리창 충돌’ 현장으로 투명 방음벽을 먼저 떠올릴까. 국내에서 조류 유리창 충돌 문제를 본격적으로 가시화한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관리연구실장은 일종의 착시효과라고 답했다. “해마다 건물 한 채에 평균 1.07마리가 유리창에 부딪혀서 죽어요. 그런데 실제로 사람들이 사체를 목격하는 건 4년에 한 번꼴입니다. 나머지 3마리는 왜 못 볼까요? 유리창으로 들어간 새들이 건물 안에서 갇혀 죽거나 밖에서 죽더라도 도심에서는 금방 치워지기 때문이에요. 투명 방음벽 근처는 인적이 드물어서 평소에는 새 사체가 발견되지도, 치워지지도 않죠. 하지만 마음먹고 다가가서 본다면 새들의 죽음을 두 눈으로 실감할 수 있는 곳입니다.”

해마다 약 785만 마리가 죽는다는 수치는 피상적인 ‘느낌’에 불과하지만, 온몸이 으스러져 죽은 새의 몸은 보고 만질 수 있는 충격적인 ‘실체’다. 김영준 실장이 유리창 충돌 문제를 이야기할 때 투명 방음벽을 먼저 이슈화한 이유이기도 하다. 시민사회가 문제의 심각성을 체감할 수 있는, 일종의 도화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영준 실장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건 야생동물 구조센터에서 일한 경험 때문이다. 근무할 당시 구조센터에 들어온 동물 중 70%가 조류였다. 그중에서도 30%가 유리창 충돌로 크게 다쳐 들어왔다. “옛날 포장마차에서 팔던 참새구이는 누군가의 허기를 달래주기라도 했잖아요. 죽는 이유라도 있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날아가다가 사람이 세운 투명 구조물에 머리를 박고 뚝 떨어져 죽는 건 정말 ‘개죽음’이잖아요.” 죽음에 쓸모를 찾는 건 잔인한 일이지만, 그 쓸모조차 찾을 수 없는 충돌 사고는 그에게 더욱 잔인하게 느껴졌다.

방음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참새.ⓒ시사IN 이명익

“눈에 보이지 않은 사고는 더 많았겠죠. 왜냐하면 일단 구조센터에는 살아 있는 새들만 들어오잖아요.” 김영준 실장은 추가 질문을 던졌다. “살아남은 새들 중에서도 사람에게 발견된 새는 몇 마리일까요? 사람에게 발견된 새들 가운데 신고까지 이루어진 새는 몇 마리일까요?” 구조센터에 들어오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 새들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의미다. 또 먹이를 사냥하러 나간 새가 충돌해 죽은 경우 둥지에서 기다리는 새끼들은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간접적인 영향으로 사망하는 새들도 통계에 포함되지 않았다.

2014년 1월 국립생태원에서 일을 시작한 김영준 실장은 국립생태원에 유리로 지어진 건물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동료들과 의견을 모아 새들의 유리창 충돌을 줄일 방안을 궁리했다. 당시만 해도 독수리 같은 맹금류 모양의 스티커를 붙이는 게 대중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료조사를 통해 맹금류 스티커는 별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맹금류 스티커는 부착된 ‘그 부분’에서만 효과가 있었다.

대안은 ‘5×10 규칙’이었다. 세로 5㎝·가로 10㎝ 간격으로 유리창에 무늬를 넣거나 스티커를 붙이면, 새가 그 사이를 통과하지 못하는 좁은 구역으로 인식해 충돌을 피할 수 있다는 규칙이다. 미국 조류학자인 대니얼 클렘이 발견한 ‘2×4인치 규칙’을 ‘5×10㎝ 규칙’으로 변환해 처음 국내에 소개한 사람도 김영준 실장이다. 그는 말했다. “사실 5×10보다 5×5가 좋고, 3×3은 더 좋습니다. 새를 살리기 위해서는 투명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무늬 간 간격이 촘촘할수록 좋아요.”

조류 충돌 공공데이터 만드는 한국

어떻게 하면 ‘5×10 규칙’이 확산될 수 있을까? 김영준 실장은 국가의 적극적인 유도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신이 소유한 건물에 5×10 무늬 스티커 등 충돌 방지 시설을 설치하려는 개인·기업·단체 등에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것도 방법이다. “새들은 주인이 없는 무주물입니다. 다시 말하면 공공이 관리해야 하는 공공재라는 의미예요. 민간 영역의 참여를 기다리고 손 놓고 있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모두에게 돌아갑니다. 우리 집 창문에 자꾸 새가 부딪혀서 죽으면 옆집 사람은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못 듣잖아요.”

서울시 구로구는 2019년 8월 전국 최초로 ‘조류 충돌 저감 조례’를 통과시켰다. 이후 청주시·충주시·창원시·광주광역시·서산시·충청남도 등에서 잇달아 관련 조례를 의결했다. 또 환경부는 지난 3월22일 ‘방음시설의 성능 및 설치기준’을 일부 개정해 앞으로 투명 방음벽을 설치할 경우 의무적으로 조류 충돌을 방지할 대책도 함께 세우도록 했다.

국립생태원 식당 유리문에 부착된 조류충돌방지 스티커.ⓒ시사IN 이명익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데이터가 쌓이기 시작한 건 2018년 7월부터다. 김영준 실장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네이처링(www.naturing.net)’이라는 생물다양성 정보 공유 플랫폼에서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조사’라는 미션으로 새 충돌 관련 데이터를 모아나갔다. “지금까지 이 문제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건, 새의 죽음이 그걸 목격한 사람들의 개인적인 경험 차원에서 끝나버렸기 때문이에요. 현장 조사를 나가면 마을 주민들이 ‘나도 봤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기억 하나하나가 증거자료로 모이고 기록돼야 정책을 만들고 문화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생기거든요.”

네이처링에 모인 기록은 국립생태원에서 정리한다. 정책을 만들고자 하는 지자체가 있으면 그 데이터를 활용할 수도 있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조류 충돌에 관한 공공데이터를 만들어내는 곳은 한국뿐이다. 정보가 누적되는 속도도 빠르다. 3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참여자는 2300여 명, 기록 건수는 2만여 건을 넘어서고 있다. 네이처링 지도에 표시된 기록을 보면, 어디에 투명 방음벽이 설치돼 있는지 한눈에 보이는 지역이 꽤 많다.

현장 조사를 하는 방식도 국립생태원과 시민들이 함께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직접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사진을 찍어서 위치와 주변 구조물에 대한 간단한 정보만 체크해 올리는 방식이었어요. 그런데 투명한 방음벽에 찍힌 충돌흔을 찍으려니 스마트폰 카메라가 제대로 초점을 못 잡더라고요. 그래서 ‘구하자’라는 특수 자(ruler)를 만들었어요. 조사했던 충돌흔을 다시 찍는 경우가 있기에 촬영한 충돌흔 아래에 스티커를 붙이는 방법도 추가했고요.” 시민들은 네이처링과 페이스북 그룹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등에 업데이트된 조사 방법을 숙지한다. 5월31일 국립생태원은 홈페이지를 통해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시민 참여 조사 지침서'를 배포했다.

김영준 실장 역시 틈이 날 때마다 현장 조사를 나간다. 특히 타지 출장을 가기 위해 익산역으로 이동할 때마다 도로 위에 설치된 투명 방음벽 8개를 유심히 살펴본다. “이 지역은 몇 년 뒤에 생물다양성이 확 낮아질 거예요. 새끼일 때 죽을 확률은 높지만, 다 자란 성조(成鳥)가 이렇게 퍽퍽 죽는 건 자연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확률이거든요.” 꿩의 사체를 발견한 그가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청딱따구리와 멧비둘기 사체도 연달아 발견됐다. 그는 충돌흔이 하도 많아서 챙겨온 스티커를 다 쓸 때도 있다고 말했다. “조만간 이 벽은 스티커로 뒤덮일 겁니다.” 투명한 방음벽과 유리창은 새들의 최상위 포식자가 됐다.

기자명 서천/글 나경희 기자·사진 이명익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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