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가 개도살 금지법의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1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지난 7월, 법무부는 민법에 이런 내용의 조항을 신설하겠다고 입법 예고했다. 그렇다면 그동안 동물은 휴대전화나 유리컵 따위처럼 물건 취급을 받았다는 것일까? 그렇다. 2021년 현재 한국에서 동물의 법적 지위는 물건에 머물러 있다.

동물이 법적으로 물건일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건은 소유권을 비롯한 물권(物權)의 객체다. 소유자(사람 또는 법인)가 ‘사용·수익하고 처분’할 수 있다.

당신의 반려동물이 누군가의 난폭한 운전으로 차에 치여 죽었다면? 당신이 받게 되는 손해배상금은 그 물건(동물)의 분양가에 불과하다. 고소해도 상대방은 재물손괴죄로 처벌받을 뿐이다. 당신이 빚을 못 갚아 강제집행을 당하게 되었다면? TV, 냉장고 등 값나가는 세간살이와 ‘동등하게’ 강아지와 고양이에게도 ‘빨간 딱지’가 붙는다. 그런 다음 법원 경매를 통해 헐값에 팔려나간다. 이혼을 하게 되었다면? 당연히 양육권 분쟁의 대상이 아니다. ‘재산’ 목록에 올라 냉정하게 ‘분할’된다.

동물 보호 및 권리 확대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일부 변화가 있기는 하다. 법원은 타인의 위법한 행위로 반려동물을 잃은 사람이 물질적 손해뿐 아니라 정신적 손해까지 입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소액이지만 위자료나 장례비를 지급하라고 판결하기 시작했다. 이혼 과정에서도 조정 절차를 통해 부부가 헤어진 뒤에 반려동물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곁에 두고 함께 살(반려할)’ 것인지 합의를 진행하는 사례도 있다. 무엇보다 동물보호법 제·개정에 따라 시민들은 남의 재물(동물)뿐 아니라 자기 소유의 동물이나 누구의 소유도 아닌 야생동물까지 학대하지는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동물보호법으로 보호되는 동물의 대상은 개·고양이 등 몇 종으로 제한되어 있다. 가령, 반려 거북이는 보호 대상이 아니다. 동물보호법 위반죄 단독범으로 처벌받는 경우도 거의 없다. 주인으로부터 학대당한 동물은 소유자인 주인의 품을 벗어날 수 없다. 처벌도 벌금형에 그치거나 드물게 징역형이어도 집행이 유예된다. 올해 초 발각된 ‘동물판 N번방’(동물을 잔인하게 학대하는 영상과 사진을 공유한 온라인 단체 채팅방)의 운영자는 벌금 300만원에 약식기소되었는데, 최근 그 형량마저 높다며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이번 법무부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민법이 개정되더라도, 당장 이런 일들이 없어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동물에 대해서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물건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라는 조항이 개정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법(私法)의 기본법인 민법의 세계를 사람과 물건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 동물로까지 확대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수십 년 전 오스트리아가 최초로 동물이 물건이 아님을 규정한 이래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이 그 뒤를 따랐다. 이 나라들에서는 동물 보호와 권리 확대를 위한 다양한 입법이 이루어졌다. 특히 독일은 헌법에서 동물 보호 의무를 국가에 부여했다.

인간만을 위한 세상은 존재할 수 없다

법무부 또한 이번 개정이 선언적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감추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동물 학대에 대한 처벌이나 동물 피해에 대한 배상 정도가 국민의 인식에 보다 부합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동물 보호나 생명 존중을 위한 다양하고 창의적인 제도들이 이 조항을 토대로 추가로 제안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고 입법 효과를 밝혔다.

다만 이번 개정안이 주로 반려동물 관점에서 마련되었다는 점은 아쉽다. 세상에는 소·돼지 등 사람에게 먹이기 위해 사육되는 가축, 길고양이처럼 도시의 길 위에서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동물, 야생에서 태어나고 죽는 동물이 더 많다. 이번 개정은 인간이 이들 동물 모두와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 코로나19, 기후위기 등 현재 세계가 처한 근본적인 위기는 오로지 동물을 물건 취급하며 철저히 자기 위주의 세상을 만들어온 인간에게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만을 위한 세상은 존재할 수 없다.

기자명 노주희 (경기국제평화센터장·변호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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