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9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입국자들이 방역 관계자의 안내를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RNA는 3만 개의 ‘염기’가 한 줄로 늘어서 있는 사슬이다. 염기는 유전자를 구성하는 기본 성분이다. 이를테면 글자 3만 개로 이루어진 바이러스의 설계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복제 과정에서 종종 실수가 생긴다. 3만 개 글자를 새끼 바이러스에게 그대로 물려줘야 하는데 잘못 베끼거나 중간에 빼먹는 사고가 발생한다. 어느 종에서나 나타나는 일이지만 바이러스에서는 이런 사고가 더 빈번하다. 이것이 바로 바이러스의 ‘변이’다.

사실 RNA 염기서열에 생기는 대부분의 변이는 의미가 없다. 바이러스의 특성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변화시킨다 해도 생존에 불리한 방향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수많은 변이 가운데 극소수만이 바이러스의 특성을 바꾸며 진화로 이어진다. 바이러스에게는 좋은 소식이다. 인간에게는 나쁜 뉴스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적인 코로나 대응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는 변이주(株)를 따로 분류하고 있다. ‘관심 변이(Variant of Interest·VOI)’는 여러 나라 혹은 여러 집단감염 클러스터에서 검출되고, 이에 대한 ‘WHO 코로나19 진화 워킹그룹’의 논의에서 ‘주의 필요’로 평가된 변이주다. 6월30일 현재 7개 변이주가 ‘관심 변이(VOI)’로 지정돼 있다.

‘우려 변이(Variants of Concern·VOC)’는 이보다 한 단계 높은 등급이다. ‘관심 변이’ 중에서 ①전파력이 올라갔거나 유행 양상에 해로운 변화를 가져오는 경우 ②감염 증상이 바뀌었거나 병독성이 강해진 경우 ③백신·치료제·진단검사 등의 효과를 감소시키는 경우 가운데 한 가지 이상에 해당하면 ‘우려 변이’로 분류된다. 현재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우려 변이로는 알파, 베타, 감마, 델타로 명명된 네 종류가 있다.

5월31일 WHO는 코로나19 주요 변이주에 그리스 알파벳을 붙여 호칭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해온 것처럼 발견된 지역 이름을 따면 해당 지역에 낙인이 찍힐 위험이 있고, 학술적인 계통군으로 부르면 일반인과 언론을 상대로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에 따라 기존의 영국 변이(계통군 B.1.1.7)는 알파, 남아프리카공화국 변이(B.1.351)는 베타, 브라질 변이(P.1)는 감마, 인도 변이(B.1.617.2)는 델타라는 새로운 명칭을 얻었다. ‘관심 변이’를 포함하면 11번째 그리스 알파벳인 ‘람다’까지 변이의 이름으로 지정된 상태이다. 과학 커뮤니티에서는 그리스 알파벳이 24개뿐인데 24개 중 마지막 문자인 ‘오메가’ 변이까지 붙이고 나면 그다음엔 어떻게 이름을 정하느냐는 우려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떠돈다.

백신, 중증도로 가는 것은 잘 막고 있다

델타형은 최근 급격히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변이는 지난해 10월 인도에서 발견된 뒤 한동안은 별다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높아진 전파력을 바탕으로 코로나19 확산을 주도하던 알파형, 백신의 효능을 저해하는 것으로 나타난 베타형과 감마형이 주로 전 세계 방역 당국의 우려를 샀다. 그런데 올해 4월을 기점으로 델타형이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4월4일 WHO가 관심 변이로 지정했고 한 달 남짓 지난 5월11일에는 우려 변이로 등급을 높였다. 6월에 들어서면서 WHO는 “델타형이 전 세계적인 지배종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여러 차례 내놓았다.

관측 데이터나 연구에 따르면 델타형은 지금까지 나온 변이 가운데 전파력이 가장 높은 것으로 보인다. 알파형의 경우 중국 우한에서 발원한 오리지널 타입보다 전파력이 50%가량 향상되었다고 알려졌는데, 델타형은 이 알파형과 비교해서도 전파력이 50~60%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 코로나19의 기초감염재생산지수(R0)는 2.5 정도로 추정돼왔다. 감염자 1명이 평균적으로 2.5명을 감염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오리지널 타입을 기준으로 구한 값이었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알파형의 R0는 대략 4, 델타형의 R0 값은 5 이상으로 나타난다. 오리지널 타입보다 2배가량 전파력이 강해진 것이다.

월등히 향상된 전파력을 바탕으로 델타 변이는 백신접종률이 높은 국가에서도 다시금 확산 규모를 키우고 있다. 한때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5만4000명대에 달했던 영국은 예방접종 사업이 확대되면서 확진자 수가 극적으로 감소했다. 6월30일 기준 영국에서 1회 이상 백신접종을 한 인구는 66.7%, 2회 접종을 마친 인구는 50% 정도다. 그러나 5월 초 1600명대까지 낮아졌던 영국 확진자 수가 5월 중순을 거치며 증가세로 돌아서더니 6월 말엔 2만명을 넘어서버렸다. 이 같은 현상의 주된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 바로 ‘델타형의 확산’이다. 백신 미접종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변이주가 이전 유행주보다 더 왕성하게 퍼지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변이 정보를 제공하는 비영리 사이트 ‘코베리언츠(Co Variants)’는 국가별로 각 변이주가 차지하는 비율을 시각화해 제공한다. 〈그림 3〉을 보면 영국에서 델타형이 이미 유행하던 알파형을 밀어내고 단기간에 지배력을 넓힌 것을 볼 수 있다. 영국 신규 확진자 가운데 90% 이상이 델타형 감염이다. 알파형이 우세종 자리를 차지하는 데 걸린 기간보다 델타형이 우세종으로 등극하는 기간이 확연히 짧다. 미국(접종 완료율 46%)이나 이스라엘(접종 완료율 57%)도 영국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델타형의 분포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델타형에 대한 백신 효과는 어떨까? 남재환 가톨릭대 의생명과학과 교수는 “기존 백신에 의해 유도된 중화항체의 효과가 꽤 낮아진다. 그러나 델타 변이 감염 때문에 증상이 중증도로 가는 것은 백신이 여전히 상당히 잘 막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영국 보건국이 6월 발표한 데이터는 이를 실증적으로 뒷받침한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과 화이자 백신 모두 1회 접종만 마쳤을 때는 델타형 감염을 예방하는 효과가 상당히 떨어졌지만, 2회 접종 시에는 제법 준수한 수준의 방어 효과를 나타냈다(〈그림 2〉의 그래프 ① 참조). 델타형에 대한 입원 예방 효과(중증에 이르러 입원하는 것을 막는 효과) 역시 아스트라제네카와 화이자가 각각 92%와 96%로 나타났다. 감염이 될지라도 중태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효과는 충분히 유지된다는 뜻이다(〈그림 2〉의 그래프 ② 참조).

델타형은 왜 이러한 특성을 가지게 된 걸까? 알파형, 베타형, 감마형, 람다형 등 각 변이주들은 바이러스 RNA 염기서열에 변이가 하나 생겼다고 출현하는 것이 아니다. 델타형의 경우도 바이러스 RNA 전체에 걸쳐 10~16개의 변이가 생겼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가운데 과학자들이 특히 각별한 관심을 갖는 것은 ‘스파이크 단백질에 생긴’ 변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표면에 돌기처럼 돋아 있는 스파이크 단백질을 인체세포의 표면(세포수용체)에 결합시켜 세포 내로 침투한다. 인체의 빗장을 여는 일종의 열쇠라고 할 수 있다. 면역세포가 만들어내는 중화항체는 바로 이 스파이크 단백질에 달라붙어서 코로나19가 자물쇠(세포수용체)에 열쇠를 꽂지 못하도록 막는 일을 한다. 백신의 작용은 좀 더 복잡하지만, 기본 원리는 더 많은 중화항체를 더 빨리 생성하도록 우리의 면역체계를 준비시켜놓는 것이다. 항체 치료제의 타깃도 스파이크 단백질이다. 따라서 스파이크 단백질에 생기는 변이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투하는 능력(전파력), 백신과 치료제의 효과 등에 두루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대부분의 변이주는 스파이크 단백질에 변이를 가지고 있다. 델타형 역시 스파이크 단백질의 내부 구성이 변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은 아미노산(단백질의 기본 구성 단위) 1000여 개로 이루어져 있고 일일이 순번을 매길 수 있다. 이미 존재하던 아미노산이 다른 종류의 아미노산으로 바뀐다면 변이가 일어난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같은 스파이크 단백질 내 아미노산 서열의 변화에 이름을 붙이고 있다. 예컨대 1000여 개 아미노산 가운데 614번째가 아스파르트산(D)이라는 아미노산에서 글리신(G)으로 불리는 아미노산으로 바뀌는 경우를 D614G라고 부른다. 이 밖에도 델타형의 스파이크 단백질에는 T478K, L452R, P681R 같은 변이가 일어난 것으로 파악된다(〈그림 1〉 참조). 여기서 T478K는 478번째 아미노산이 트레오닌(T)에서 리신(K)으로 변이했음을 의미한다. 나머지 L452R과 P681R도 마찬가지로 452번째와 681번째 아미노산이 달라졌다고 이해하면 된다.

D614G는 델타 변이뿐만 아니라 ‘G군’으로 일컬어지는 유형에서 뻗어 나온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공통적으로 가진 변이다. 현재 한국에서 유행하는 우세종은 G군의 초기 타입이다. 과학자들은 D614G가 코로나19의 전파력 향상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홍기호 연세대 의대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스파이크 단백질이 하나의 돌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여러 개의 기둥이 구불구불하게 얽혀 있는 형태다. D614G 변이는 기둥들이 안정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가로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T478K, L452R, P681R의 역할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연구가 진행 중이며 과학자와 연구팀마다 추정하는 바가 조금씩 다르다. 6월16일 〈내셔널 지오그래픽〉 보도에 따르면 T478K는 중화항체를 회피하는 능력, L452R은 전파력, P681R은 세포에 침투하는 능력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여러 군데에 변이가 생기면서 코로나19 스파이크 단백질의 모양이 미세하게 달라지고 있다.

6월15일 영국 런던의 회전 관람차 ‘런던 아이’ 매표소 앞에 마스크 착용 알림판이 세워져 있다. ⓒEPA

전파력은 증가하고 병독성은 낮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점은, 기존 백신이 이런 변이주들에 대해서도 효과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거칠게 비유하자면, 아귀가 딱 맞지는 않아도 이렇게 저렇게 끼워 맞출 수는 있는 레고 두 조각을 떠올려볼 수 있다. 백신이 유도한 중화항체가 오리지널 바이러스에 대항할 때만큼 스파이크 단백질을 단단히 틀어막지는 못하지만 변이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방어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반면 델타형에 대한 항체 치료제의 성능은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셀트리온의 항체 치료제뿐만 아니라 미국 제약사인 일라이 릴리의 제품도 마찬가지다.

델타형이 치사율이나 병독성을 높이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 알파형과 비교해 델타형에 감염된 환자가 두 배 정도 더 많이 병원에 입원한다는 데이터가 나왔지만 검증이 필요하다.

한국은 현재까지는 델타형의 비중이 아주 낮다. 〈그림 3〉을 보면 한국은 코로나19 변이주의 유행 양상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알파형이 지난해 말부터 유입돼 비율을 점점 늘려가고는 있지만 다른 나라처럼 급격하게 세를 불리지는 못했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유행을 주도하는 건 지난해 3~4월 유럽에서 처음 보고돼 전 세계적으로 오리지널 타입을 대체했던 G군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시차가 다소 있을지라도 델타형이 결국 국내에서도 우세종이 되리라 전망한다. 실제로 델타형의 확산세가 가파르다. 6월21일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유전자분석 결과에서 변이 바이러스 중 델타형은 8.5%였지만 일주일 뒤인 6월28일에는 10.2%를 차지했다. 델타형으로 확인된 지역사회의 집단감염 사례도 늘고 있다.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최대한 빠르게 백신접종률을 높여야 한다는 데에는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1회 접종만 했을 경우 델타형에 대한 보호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데이터를 고려했을 때 신속하게 2회 접종을 마치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 대응에서 지난해와 올해가 다른 점은 백신이 생겼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기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변이가 발생할 만한 영역을 줄여나간다는 점에서도 백신접종은 의미가 있다. 바이러스의 복제 횟수가 늘어난다는 건 그만큼 변이를 획득할 기회도 늘어난다는 뜻이다. 백신접종자가 많아져서 코로나19에 걸리는 사람들이 줄어들거나 혹은 코로나19에 걸리더라도 백신을 맞아서 바이러스 증식이 억제된다면 바이러스가 복제를 일으킬 기회도 줄어든다.

방역 수위를 조정하는 문제에서는 의견이 다소 엇갈린다. 전파력이 높은 변이가 출현했으니 백신접종률이 일정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는 시기를 잠시 미루자는 게 국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코로나19는 사실상 종식이 어려우니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연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서 방역 수위를 강하게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고령층 백신접종이 진행되면서 5월부터 사망률이 극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변이는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그러면 ‘이 변이주의 위험이 수그러들 때까지 참고 견디자’가 아니라 델타형 속에서도 어떻게 하면 점차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지 균형점을 모색해야 한다.”

코로나19는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까.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추세를 놓고 봤을 때 대체로 전파력은 증가하고 병독성은 낮아지는 방향으로 바이러스가 변화한다고 말한다. 그 편이 바이러스 자신의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물론 장담할 수는 없다. 변이는 기본적으로 무작위적인 현상이다. 우연히 획득한 변이가 바이러스의 특성을 어떻게 바꿀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코로나19는 지금 이 시간에도 복제를 거듭하고, 간간이 유전자를 잘못 베끼는 실수를 한다. 그때마다 우리가 내놓아야 할 해답도 진화를 요구받고 있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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