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5월26일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감골실내체육관에 차려진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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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팀과 ‘경기도 공공보건의료지원단’이 공동으로 수행한 ‘코로나19 치료·방역 인력 인식’ 조사에 따르면, 보건소 직원 가운데 82%가 코로나19 업무와 관련해 ‘울분’을 경험했다. 치료·방역 인력 45%는 ‘코로나19 업무로 인해 건강이 악화됐다’고 답했다.

그 이후 1년이 더 지났다. 보건소는 기존 방역 업무에 더해 코로나19 예방접종 사업까지 맡게 됐다. 지난 5월23일에는 업무 부담을 호소하던 한 보건소 간호직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발생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

‘번아웃’의 현장에서 스스로 과로를 감당하며 동시에 직원들에게 과중한 업무를 부과해야 했던 딜레마의 시간을 거쳐온 보건소장들이 입을 열었다. 허목 부산 남구보건소장(전국보건소장협의회 회장), 김주연 대전 대덕구보건소장, 박미영 대구 달성군보건소장, 권근용 세종시보건소장, 김미경 군포시보건소장, 박건희 안산시 상록수보건소장과 익명을 요청한 A 보건소장까지 모두 7명의 보건소장을 5월27일 온라인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으로 만났다.

5월27일 〈시사IN〉이 전국의 보건소장 7명을 ‘줌’으로 만났다.

지금 각 보건소 상황은 어떤가?

김미경(군포시):초창기보다는 많이 안정되었지만 아직도 한 달에 기본 80~100시간씩은 초과근무가 나온다. 많으면 190시간 초과근무를 하는 직원도 있다. 이런 표현을 쓰고 싶지 않지만, 마른 걸레 쥐어짜듯이 일하는 상황이다.

A(익명):쓰러진 직원도 있다. 자가격리자가 많을 때는 하루에 1000명씩 생기는데 전화를 돌릴 때 민원이 엄청나다. 이 직원이 전화를 하다가 스트레스 때문에 쓰러졌다. 그걸 본 옆 직원도 울음이 터져서 도저히 감당이 안 됐다. 그래서 둘을 보내고 나니까 직원 1명이 남아서 새벽 3시까지 전화를 돌렸다. 마음이 아파서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라, 일이 많아지면 내가 누구라도 끌어오겠다’고 했다.

김주연(대전 대덕구):어린 자녀가 있는 직원들이 특히 힘들다. 집에 밤 10~11시쯤 들어가면, 그것도 일찍 들어간 편인데, 초등학생 아이가 혼자 있다가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울었다는 얘기를 직원들한테 여러 번 들었다.

허목(부산 남구):(최근 간호직 공무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부산 동구보건소 상황을 알아보니 정규 인력이 40명이 채 안되더라. 적은 수의 직원들이 근근이 버텨오다가 1월에 예방접종 추진단이 만들어지면서 이 업무도 보건소에 거의 ‘올인’된 거다. 번아웃을 피할 수가 없다.

보건소 직원들이 왜 이렇게 과도한 업무 부담을 지게 됐을까?

김미경(군포시):절대적으로 업무량이 늘어났는데 그만큼 인력은 보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건소에 필요한 인력을 파악해서 올리라는 공문이 어제 처음으로 내려왔다. 한시 인력이 지원되기는 하지만 업무를 하는 데 제한점이 많다.

박미영(대구 달성군):지자체에 인력 충원을 요청하면 행정인력이 단기간 교대로 파견된다. 최소 한 달 이상은 있어야 업무도 숙달되고 우리도 교육하는 부담을 더는데 그렇게 오시는 분들은 너무 짧게 머물고, 확진자가 줄어드는 추세면 금세 또 빠져나간다. 안 오는 것보다는 낫지만 숫자만큼 힘을 보탤 수가 없다.

권근용(세종시):고용형태가 이분화돼 있다는 점도 코로나 대응을 상당히 어렵게 만든다. 정규직 공무원 이외에 시간선택제나 임기제, 공무직 직원들이 보건소마다 40~50%가량 된다. 보건복지부에서 여러 시범사업을 계속 확대하고 이게 다시 보건소 사업으로 정착되는데, 정규직 정원은 그만큼 늘리지 않았다. 대신 비정규직에 가까운 형태로만 인력을 그때그때 추가해왔다. 여러 복무규정상 야근이나 주말 근무는 정규직 공무원이 주로 맡을 수밖에 없다. 밖에서 보기에는 보건소 직원이 130명이나 되는데 왜 인력이 없다고 하나 싶겠지만 사실 비상근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그중 절반밖에 안 된다.

김주연(대전 대덕구):한 달 전쯤 우리 보건소 의사 선생님 한 분이 그만뒀다. 올해 정년을 앞둔 분이었는데 반년을 남겨두고 명예퇴직을 했다. 코로나19 예방접종을 하면서 4월 안에 300만명 접종을 달성하려고 몰아치는 분위기가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 접종했어도 며칠 뒤면 ‘300만명 접종 완료’라는 뉴스가 나갔을 텐데 그걸 조금이라도 더 당기려고···. 그 선생님은 지난해 내내 선별진료소 근무에 이어 올해는 예방접종센터에서 예진을 보셨는데 그렇게 무리를 하니까 결국 못 버티더라. 붙잡기가 어려웠다.

권근용(세종시):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이면 직원들도 기운을 내서 하는데 그렇지 못한 업무는 굉장히 힘이 빠진다. 한 어린이집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을 때 그 지역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검사를 하는 건 이해가 된다. 그런데 전국적으로 모든 어린이집을 검사하라는 지침이 내려오면 잘 납득이 안 된다. 그런 식의 전수검사 지시가 빈번했다.

박미영(대구 달성군):지자체별로 방역 성적을 비교하고 실적을 올리려는 분위기가 있다. 그런 이유로 합리적이지 않은 결정이 내려올 때 확실히 스트레스가 가중된다.

A:보건소는 그동안 각종 예방접종 사업의 거점 역할을 해왔다. 경험도 많고 노하우도 있다. 코로나19 예방접종은 속도감 있게 진행해야 하고 접종센터처럼 하드웨어도 새로 마련해야 해서 행정안전부에서 관여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입장에서 예방접종은 처음 해보는 일이다. 지금 공부해서 지침을 내리다 보니 현실에 맞지 않게 세분화된 내용이 적지 않다. 다 현장의 부담으로 지워진다.

ⓒ시사IN 이명익5월29일 상록수보건소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대기 중인 의료진. 노란 아이스 조끼를 덧입었다.

방역 전략을 세우고 지침을 정하는 중앙정부와 이를 직접 실행하는 일선 보건소 사이 소통은 잘 되었나?

권근용(세종시):정부에서 지침을 발표할 때 지자체와 보건소에 공유하는 시점이 언론 발표보다 항상 늦었다. 지자체에 알리면 사전에 소문이 날까 봐 조심스러운 건 이해하는데 그래도 최소한의 정보는 공유해야 현장에서 준비를 하지 않나.

박건희(안산 상록구):매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주재로 중앙-광역지자체-기초지자체 간에 영상회의를 하는 공식적인 소통 창구가 있다. 예방접종 관련해서도 월요일마다 이 영상회의를 한다. 질병관리청(방대본) 등과 단체 채팅방을 통해서도 의견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많다. 예를 들면, 최근에 얀센 백신이 그랬다. 미국에서 얀센 백신이 들어오고 6월1일부터 사전 예약을 받아 일반 의료기관에서 접종한다는 사실을 주말에 뉴스를 보고 알았다. 의료기관에서 접종을 해도 전반적인 관리는 보건소에서 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러고는 곧바로 다음 날 오후 3시까지 얀센 백신을 접종할 위탁 의료기관 신청을 받아서 보고하라고 하더라.

김미경(군포시):월요일 아침에 출근했는데 (얀센 백신 접종을 문의하는) 전화가 폭주했다. 그런데 우리도 공문을 받은 게 없으니까 뉴스 내용 이상으로 아는 게 없었다. 답을 드릴 수가 없었다. 그러면 또 모른다고 화를 내시고. 지역 현장에서는 너무 혼란스럽다. 얀센 사례뿐만 아니라 그런 일들이 내내 반복돼왔다.

감염병 위기는 불확실성이 높은 데다 급박하게 돌아가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 않나?

박건희(안산 상록구):그래도 보건소의 부담을 줄일 대안이 없지 않았다. 지금은 선별진료소를 보건소가 운영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사실 민간에서 할 수도 있는 일이다. 검체 채취 행위료만 적당한 선에서 책정한다면, 민간 의료기관이나 검진 업체 등에서 수행할 수 있다.

예방접종도 그렇다. 화이자 백신의 경우 극저온에서 mRNA 백신 콜드체인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보건소마다 체육관 같은 곳을 빌려서 예방접종센터를 개소했다. 그런데 5월 말에 식약처가 지침을 바꿔서 화이자 백신을 해동한 뒤 냉장 보관할 수 있는 기간이 5일에서 31일로 늘어났다. 이제 화이자도 아스트라제네카처럼 일반 병의원에서 접종이 가능하다. 7월부터는 일반인 예방접종이 시작돼 접종 대상자가 크게 늘어난다. 민간 위탁 의료기관 네트워크를 통해 화이자 접종이 확대되길 바라고 있다. 예방접종센터에서 이 인원을 다 감당하려면 접종 건수를 지금보다 3~4배 늘려야 한다. 그만큼 접종센터에 인력이 더 필요하다. 지금도 예진 의사는 구인난이다.

보건소가 꼭 집중해야 할 업무들이 있다. 확진자가 나왔을 때 역학조사는 보건소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예방접종 뒤에 이상반응 의심 신고를 받고, 상담을 하고, 피해보상을 신청하는 것도 보건소가 해야 한다. 접종자 수가 많아지면 이 업무도 훨씬 더 늘어날 거다.

‘K방역’이 큰 명성을 얻었다. 직접 그것을 실행한 입장에서 K방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허목(부산 남구):자랑만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큰 사고가 났지 않나 싶다.

김미경(군포시):K방역의 성공 요인으로 3T(검사·추적·치료)를 꼽지 않나. 그런데 이제까지 코로나 때문에 고생한다고 할 때 주로 부각된 건 ‘치료’ 쪽이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들이 정말 고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 앞에 2T를 감당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검사하고 접촉자를 찾아내고 격리하는 건 대부분 보건소에서 했다. 하나하나 현장의 노동력이 드는 일이다.

허목(부산 남구):K방역에 대해 얘기할 때 대통령이나 정책 결정권자 선에서 보건소를 언급하는 경우를 거의 못 봤다.

박건희(안산 상록구):국제기구 등을 통해 K방역 사례를 소개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특히 ‘콘택트 트레이싱(접촉자 추적)’에 대한 문의가 많았다. 확진자 역학조사, 동선 추적, 접촉자 분리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하더라. 미국이랑 영국에서는 준비하다가 시간이 오래 걸려서 흐지부지되었다고 한다. 계획을 짜고, 사람을 뽑고, 매뉴얼 준비하고, 교육시키고 그러는 동안 몇 개월이 흘렀다는 거다. 기존 공무원들을 투입해서 방역 업무를 신속하게 가동하는 건 외국에서는 따라하기 어려운 점 같다.

김주연(대전 대덕구):오늘 닥친 일을 해두지 않으면 불과 1~2주 후에 확진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 것을 알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라도 유행 상황이 이 정도로 억제되어 다행이다 싶기는 하다.

허목(부산 남구):최근 우리 관내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해 관련 확진자가 지금까지 40명으로 늘어났다. 만약 이분들을 조기에 격리하지 않고 일주일 정도만 늦춰버리면 걷잡을 수 없어진다. 그때는 “증상 있는 분들은 와서 검사해주세요”라며 눈물로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모든 직원이 매달려서 4~5일 동안 피눈물 나게 일한 끝에 더 이상의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 자칫 방심하면 수백 명이 추가 확진되는 상황은 순식간에 온다. 그러면 안 되니까 힘들어도 따라잡고 있는 거다.

앞으로 신종 감염병은 또 올 텐데, 무엇을 바꿔야 할까?

허목(부산 남구):앞에서도 얘기가 나왔지만 보건소 인력 구조가 상당히 기형적이다. 전체 직원 중 시간선택제나 공무직 비율이 절반 가까이 되고 정규직 공무원 수가 더 적은 보건소도 있다. 정규직 비율을 80%까지는 높여야 한다. 통합 건강증진 사업처럼 그동안 보건소에 추가된 일들은 상시 업무다. 국민 건강에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판단해서 국가 서비스로 만들었다면 거기에 걸맞게 책임감과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형태로 인력을 고용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감염병 위기가 터졌을 때 현재 구조로는 보건소 인력을 유연하게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하지 않았나.

김주연(대전 대덕구):시간선택제나 공무직 직원들도 선별진료소 운영, 확진자 이송 등 코로나19 대응에 일조하고 있다. 다만 야근이나 주말 근무를 맡을 수가 없다. 정규직 비율이 높지 않으면 긴급한 대응에 한계가 있다. 정규직을 확대하는 데에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다. 지혜를 모아야 할 부분이다. 모든 직원이 이번에 같이 고생한 만큼 제대로 된 대우를 받고, 정규직 공무원들은 편중된 비상근무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면 좋겠다.

박건희(안산 상록구):감염병 대응을 군대에 빗대어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북한과 전쟁을 한 지 7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국방비를 지출하고 병력을 유지하지 않나. 감염병 대응도 100년에 한 번 센 놈이 오지만 5년에 한 번씩 작은 놈들이 온다면 계속 대응 인력을 갖추고 훈련하고 있어야 하는 거다.

김미경(군포시):언론 얘기도 좀 하고 싶다. 정당한 비판은 언론의 역할이지만 자극적이고 논란을 불러오는 게 목적처럼 보이는 기사도 있었다. 그런 기사에 정책이 흔들리고, 급하게 서두르고 하면서 보건소를 더 힘들게 했다.

박미영(대구 달성군):코로나19 이전부터도 보건소에서 하는 일은 줄곧 불어났다. 이제 보건소에서 꼭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구분해야 할 시점이다. 업무의 효율을 높이고 조직을 정비해야 앞으로 찾아오는 감염병 유행도 준비하고 대응할 수 있다. 이번 위기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절실한 교훈이 아닐까.

박건희(안산 상록구):지치고 소진된 방역 인력들이 회복하는 루트를 마련하는 일도 중요하다. 국가트라우마센터에서 ‘재난대응인력 소진 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해서 참여 방법을 알아보는 중이다. 코로나19 대응을 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 보건소 직원이 많다. 잘 짜인 프로그램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돌아올 수 있으면 좋겠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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