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코로나19 제한조치가 완화되면서 다시 문을 연 학교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는 싱가포르 학생들. ⓒEPA

최근 ‘싱가포르 방역 포기’라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단 기사들이 국내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소셜미디어에 퍼졌다. 그런데 싱가포르의 대학에서 근무 중인 필자는 오늘(7월5일)도 마스크 의무 착용, 2인 초과 식당 취식 금지, 5인 초과 집합금지, 비필수 인력 재택근무 의무화 등 엄격한 규제를 지키며 살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한국에서 이미 시행하기 시작한 백신접종 완료자의 자가격리 면제조차 아직 허용하지 않았다. 6월 말에는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격리 장소를 이탈한 싱가포르인이 징역 10일을 선고받기도 했다.

‘싱가포르 방역 포기 선언’으로 와전된 기사의 진실은 무엇일까? 싱가포르 코로나19 범정부 태스크포스는 지난 6월28일 기자회견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변이를 거듭함에 따라 백신으로 집단면역을 달성하더라도 독감이나 수족구병처럼 풍토병 형태로 장기화되리라 예측했다. 이에 따라 대규모 확진자 동선 파악, 검사, 격리, 집단검사 등에 초점을 둔 기존 방역 방식에서 앞으로는 중증 코로나 환자 치료 및 사망 예방, 주기적인 코로나 백신접종, 경제활동 및 일상생활 회복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대규모 백신접종과 중증 환자 집중치료를 통해 코로나19의 건강 위협 정도를 독감 수준으로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독감 환자 수를 매일 집계해 발표하거나 밀접접촉자를 격리하지는 않는다. 코로나19에도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7월2일자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도 싱가포르와 동일한 방역 정책 전환을 고려 중이다.

최근 델타 변종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올라가긴 했지만, 싱가포르는 코로나19 신규 지역 확진자 수가 7월4일 기준 1명에 불과할 정도로 잘 막아내고 있다. 앞서 언급한 강력한 규제와 처벌도 긴요했겠지만, 신속한 백신접종 덕이 크다. 7월3일 기준 싱가포르는 인구 62%가 1차 접종을, 38%가 2차 접종을 마쳤다. 독립기념일인 8월9일까지 2차 접종률 67%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확진자 발생이 적을 뿐 아니라 사망률도 전 세계 최저 수준(코로나19 대유행 이후 36명 사망, 확진자 사망률 0.06%)으로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백신접종을 통해 집단면역까지 달성한다면, 자연스럽게 기존의 방역 정책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싱가포르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정책 전환 선언은, 신종 변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에서 완벽한 방역은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학계의 주장을 정부가 공식 수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싱가포르의 최근 방역 정책 변화는 ‘방역 포기’ 선언이 아닌 ‘지속 가능한 방역으로의 전환’ 선언으로 해석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싱가포르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의 ‘뉴노멀’을 선도적으로 준비할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보건 전문가뿐 아니라 경제 전문가도 대응의 주축이 었다. 싱가포르 정부는 코로나19 대유행 초기에 관련 부처 합동 대책기구를 설립해 정부 대응 관련 전권을 이 기구에 일임했다. 재무장관, 보건장관, 통상산업장관 세 사람이 대책기구의 지도부가 되었다. 재무부와 보건부 두 장관은 차기 총리 내정자였던 헹스위킷 부총리가 5월 초 지명을 자진 철회하면서 사실상 차기 총리 후보로 부상한 정권 ‘실세’들이다. 합동 대책기구는 매일 신속하게 방역 관련 사안들에 대한 결정을 내린 뒤 기자회견을 통해 시민들과 공유하고 집행했다.

지난 1월19일 싱가포르에서 한 의료진(오른쪽)이 화이자 백신을 맞고 있다. ⓒEPA

집단면역 달성하면 독감처럼 관리하게 될 것

태스크포스 지도부는 모두 ‘경제통’이다. 재무장관과 통상산업장관뿐 아니라 보건장관도 경제학 전공자다. 싱가포르에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지난해 3월 유치원 및 초중고교 개학을 과감하게 결정할 수 있었던 것도 보건 측면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이득까지 고려한 방역 지도부 덕분이었다. 한국의 일부 언론보도와 달리 싱가포르에서 지난해 개학으로 인해 발생한 코로나19 확진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개학과 외국인 노동자 확진자 수 폭증과도 관련이 없었다.

두 번째 요인은 국민들의 높은 방역 정책 수용도와 정책 신뢰도다. 집권 여당인 국민행동당의 장기 집권이 가능한 이유에 대해 다양한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지속적인 경제성장, 낮은 실업률, 안정적인 공공주택 공급, 효율적이고 청렴한 공무원 조직 등에 기반한 국민 다수의 전폭적인 지지를 부인할 수 없다.

필자가 부소장으로 있는 대학 연구소에서 올해 6월 싱가포르인 약 8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정부의 코로나 사태 대처에 73%가 “신뢰한다”라고 응답했다. “신뢰하지 않는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6%가 채 되지 않았다. 또 응답자의 61%가 “정부의 코로나 유행 관련 지원이 충분하다”라고 응답했다. 주요 언론사가 정부 소유인 싱가포르 언론 지형상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감염병 공포를 조장하는 논조가 적다는 점도,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 싱가포르 국민이 정부의 코로나 대응 정책을 효과적으로 수용하게 만들었다.

세 번째는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SARS) 대유행으로 얻은 교훈 덕분이다. 싱가포르는 2003년 사스 유행 당시 큰 피해를 입은 국가 중 하나다. 감염자 수는 지금보다 훨씬 적었지만 사스는 당시 치사율이 14%에 달할 정도로 치명적인 감염병이었다. 해외 주재원 탈출 러시가 이어지는 등 싱가포르 경제와 사회가 공포에 떨었다. 그 이후 싱가포르는 전염병 유행 정도에 따른 단계적 대책을 범정부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마련하고 이에 따른 훈련도 시행해왔다. 대학에 몸담은 필자도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정부 정책에 따라 전염병 대유행 같은 긴급사태에 대비한 온라인 수업을 매년 한 차례 실시해야 했다. 또한 2003년 사스 사태를 통해 백신의 중요성을 간파해서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백신 조기 확보에 힘써, 지난해 12월 아시아에서 최초로 화이자 백신을 도입한 바 있다.

1918년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가 변이를 거듭해 아직도 계절성 독감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코로나19 역시 바람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싱가포르 정부의 방역 정책 전환 선언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의 ‘뉴노멀’을 준비해야 하는 한국에도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

감염자 동선 추적, 대규모 검사 및 격리에 기반한 현재의 감염 전파 최소화 전략은 경제 부문 등 전 사회적 영향을 고려했을 때 지속 불가능하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중증 환자 및 사망자 수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업률이 1% 증가하고 소득이 1% 감소할 때마다 더 많은 사람이 병들고 죽게 된다. 온라인 수업으로 인한 교육 기회 박탈은 수십 년 뒤 소득 감소의 형태로 지금의 학생들이 그 대가를 치를 확률이 높다.

연말까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백신접종을 통한 집단면역이 달성되고, 코로나19 경구약이 출시돼 기대만큼 효과를 낸다면, 싱가포르 정부의 예측대로 코로나19를 독감처럼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라마다 처한 방역 상황과 인구·사회·경제적 특성에 따라 그 시기와 방법이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결국 독감 같은 계절성 전염병 방역 모델로 전환할 것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으리라 본다. 싱가포르가 먼저 그 방향으로 가겠다고 선언했을 뿐이다. 우리나라 보건 당국도 싱가포르 사례를 차분히 검토하고 분석해, 대한민국에 가장 알맞은 ‘지속 가능한 방역 전환’의 방식과 시기를 찾아내기를 바란다.

기자명 김성훈 (싱가포르 경영대학 경제학과 조교수· 성공적노화연구소 부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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