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이후 처음이다. 〈시사IN〉이 정치 분야 올해의 인물을 뽑지 못했다. ‘정치 실종’이라는 관용구가 2013년만큼 어울리는 해를 꼽기도 무척 어렵다. 〈시사IN〉이 선정한 ‘올해의 정치 인물’은, ‘선정자 없음’이다.
‘2013 정치 실종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세 축이 꼽혔다. 먼저 국가정보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주장, 남북 정상회의록 무단 공개, 지연 전술과 비협조로 국정원 대선 개입 청문회 무력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란죄 적용, 최근의 북한 장성택 실각 발표에 이르기까지, 2013년 정치의 고비마다 국정원은 정보와 공작을 카드로 꺼내들었다. 정치는 그렇게 정보기관의 종속변수가 되었다.
그 때문에 남재준 국정원장을 정치 분야 올해의 인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어쨌거나 2013년 정치를 쥐락펴락한 인물임은 분명해서다. 하지만 남 원장은 ‘정치 인물’이라기보다는 ‘반(反)정치 인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했다. 남 원장은 〈시사IN〉이 뽑은 2013년 ‘최악의 인물’로 꼽혔다.
통진당 이석기 의원을 꼽은 의견도 적지 않았다. 남 원장과 달리 이 의원은 현역 정치인이고, 2013년 한국 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 의원도 격론 끝에 탈락했다. 첫째, 그는 올해 한국 정치를 스스로 규정한 인물은 아니다. 그보다는 늘 정권이 상대 진영을 규정하는 데 이용당했다. 주체라기보다는 타깃이었다. 집권 세력은 종북 공세의 중요한 ‘땔감’으로 이 의원을 한껏 활용했다. 둘째, 이번 사건에서 이 의원은 여전히 제도권 정치보다는 ‘정치 밖의 공간’을 더 익숙하게 여긴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정치의 운동(運動)화’라고 해도 좋을, 운동권 버전의 반(反)정치 노선이다.
해외 순방으로 지지율 떠받친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도 올해의 정치 인물 후보였다. 올 한 해 정국은 종북몰이, 강경 노동정책, 그리고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회피 시도로 정리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청와대가 있었으므로, 박 대통령과 김 비서실장을 주요 정치 인물로 꼽는 것은 자연스럽다.
두 사람이 탈락한 이유는, 올해 청와대의 행보는 ‘정치의 통치화’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4선 국회의원 출신답지 않게 일관되게 ‘정치와 거리두기’를 유지했다. 2013년 그녀의 모습은 ‘정치권 밖에 홀로 존재하는 통치자’였다. 집권 1년 만에 벌써 “왕정을 보는 것 같다”라는 야유가 나오기 시작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청와대로 들어온 후, 청와대는 고전적인 ‘내부의 적 만들기’ 전략으로 기울었다. ‘종북’과 ‘반노동’을 두 축으로 한 통치술로 정치를 대체했다.
정치의 실종은, 정치 외에는 뜻을 관철하기 힘든 약자의 입지를 좁히는 나쁜 신호다. 야당 초선 의원으로 분투한 진선미 의원, 생활정치 모델을 모색하는 박원순 시장 등에 주목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올해는 반(反)정치의 물결이 너무 거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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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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