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서산/서울 

7월21일 오전, 전북 전주시 반월동의 한 도로 좌회전 차선에 ‘유턴 금지’ 화살표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중앙선엔 철제 분리대가 설치되어 있다. 횡단보도 중간에까지 유턴 방지용 봉이 박혀 있다. 차량과 보행자용 신호등에 모두 노란색 덧칠이 입혀 있고 빨갛게 포장된 차도 위엔 ‘어린이보호구역’이란 글자가 큼직하게 표시되었다. 이곳 근처에서 지난해 5월21일 낮 12시경 G군(2)이 사망했다. 버스정류장 옆에 서 있던 G군 앞으로 SUV 승용차 한 대가 돌진해왔던 것이다. 반대편 차선에서 불법 유턴한 자동차였다.

현재 도로를 알록달록 치감은 어린이보호구역 표시와 안전장치들은 대부분 이 사고 이후 설치되었다. 가해 운전자 측은 법정에서 “(눈에 띄는 장치가 없어) 어린이보호구역인지 몰랐다”라며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상 어린이보호구역 치사’, 즉 ‘민식이법’ 적용에 반박했다. 150m 인근에 초등학교가 있고 원래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는 곳이었지만 학교가 골목길 안에 자리 잡고 있어서 큰길에선 보이지 않는 데다 관련 표식까지 없었기 때문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구역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데이터: 경찰청·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 *데이터 시각화: 브이더블유엘(VWL)

하지만 표식이 잘 보였든 안 보였든, 어린이보호구역이든 아니든, 그 지점은 당초부터 유턴해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노란색 중앙분리선이 두 줄이나 선명하게 그어진 일반 차선에서 가해 운전자는 자동차 핸들을 왼쪽으로 꺾어 유턴했다. 명백한 불법이다. 하지만 사고 이전엔 해당 지점 부근에서 수시로 관행처럼 이루어지던 짓이기도 했다. 인근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는 최용호씨는 “이 근처에서 불법 유턴과 신호위반이 워낙 빈번했다. 가게에 있다 보면 경적 소리가 잦았고 크고 작은 사고도 자주 일어났다”라고 말했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G군 사망 지점 인근 100m 내에서 10여 건의 어린이 보행 교통사고가 발생했다(〈그림 9〉).

같은 날(7월21일) 오후, 전주시 용흥동의 또 다른 어린이 보행 교통사고 다발 지역(〈그림 10〉)에서는 차량들이 2차선 도로를 역주행하는 광경이 눈에 띄었다. 불법으로 주정차한 차들 때문이었다. 인근에 초등학교가 있고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지점인데도 그러했다. 하교하는 초등학생들은 교통지도 학부모의 노란 깃발 하나에 의지해 길을 건너고 있었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앞에서 양방향 차들의 불규칙적인 움직임에 따라 깃발을 펴고 접던 한 교통지도 학부모가 말했다. “여기 상가단지엔 불법 주차가 빈번해요. 화물을 내릴 때면 트럭이 아이들 다니는 인도 위로 넘어오기도 하고요. 교통정리 하다가 트럭 좀 치워달라고 해도 무시당하기 일쑤인데 때론 좀 무섭기도 해서 더 이상 말을 붙이진 못하죠.”

불법 주정차, 불법 유턴, 과속 같은 불법 운전 행위들은 운전자들 개인으로서나 사회적으로나 비교적 가볍게 인식되는 범죄다. 저질러도 아무 제재 없이 지나갈 때가 대부분이다. 운 나쁘면 경찰 단속에 걸리고 과태료 통지서가 날아오는 정도다. 하지만 길 위의 아이들에게는 그리 가벼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는 어린이 보행 사망사고 중 최소 두 건이 운전자의 음주운전으로 발생했다. 첫 번째 사고는 지난해 6월11일 충남 서산시 읍내동에서 일어났다. 아침 8시40분, 등굣길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H군(7)은 학교 근처 사거리에 놓인 횡단보도 교통섬(우회전 차량의 원활한 통행을 위해 보행자가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릴 수 있도록 차도 상에 섬처럼 설치해놓은 구역)으로 이어지는 짧은 무신호등 횡단보도를 건너가던 중 사고를 당했다. 가해 운전자는 당시 혈중알코올농도 0.031%, 면허 정지 수준이었다. 경찰 조사에서 그는 “전날 밤 마신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사람이 있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횡단보도 인근에서 ‘툭’ 소리가 들려 내려보니 아이가 쓰러져 있었다”라고 진술했다.

두 번째 사고는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서 벌어졌다. 오후 3시30분 대낮이었다. I군(6)은 형과 함께 한 패스트푸드점 앞 인도에 서 있었다. 갑자기 커다란 물체가 위에서 아래로 덮쳤다. 술을 마신 뒤 핸들을 잡은 운전자가 형제 근처에 설치되어 있던 가로등을 들이받은 것이다.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인 0.144%였다. 운전자는 과거 음주운전 벌금형 처벌 전력을 갖고 있었다.

사고 당시는 지난해 8월 중순 이후 다시 높아진 코로나19 확산세를 누르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새 거리두기 개편안이 나오기 이전 적용된 최고 단계인) 2.5로 격상된 시기였다. I군은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최대한 지키기 위해 엄마가 가게 안에 들어가 햄버거를 포장해올 동안 형과 함께 잠깐 가게 문 앞에서 기다리던 중이었다. 가해 운전자는 조기축구를 뛰고 술을 마신 뒤 운전대를 잡았다. 원칙을 어긴 어른들의 ‘이쯤이야’에 원칙을 지킨 아이들의 생명이 끊겼다.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시사IN〉 특별기획 ‘스쿨존 너머’

1. ‘스쿨존 너머’, 어린 생명이 꺼진 자리 2. 보행 어린이 사고 지점에 점을 찍으면?

3. 길 위 아이들 눈에 블랙박스가 있었다면(통합본) 4. 보행 중 어린이 교통사고 언제 어디서 발생하나? 5. 보행 안전을 돈 주고 사야 하나요 6. 지방 소멸과 신도시가 안전에 미치는 영향 7. 민식이법 무섭다고? 사망해도 집행유예 8. “차 가게 빨리 비켜” 사람보다 차가 우선 9. 어린이 입장에서 진짜 ‘갑툭튀’는 누구일까? 10. 소달구지? 사람 살리는 5030! 11. 길 위의 아이들에게 내미는 따뜻한 손들

※ ‘스쿨존 너머’ 특별 웹페이지 beyondschoolzone.sisain.co.kr ※ ‘모든 곳을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캠페인 참여하기 makeschoolzone.sisain.co.kr

기자명 변진경·이명익·김동인 기자, 최한솔 PD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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