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전주/서산/서울/광주
2007년 이후 보행 어린이 교통사고 7만6482건 중 4만3854건(57%)이 ‘횡단 중’ 일어났다. 이 가운데 우회전 횡단보도만큼 어린이에게 위험한 장소가 있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다. 이를테면 대구 북구 복현동 한 아파트 단지 입구와 학원 건물 사이 4차로를 가로지르는 무신호 횡단보도 같은 곳이다(〈그림 6〉). 북쪽에 산업공단이 위치해 차량 통행량이 많은 이곳에서 2015년 4월15일(9·남, 중상), 2016년 7월21일(6·남, 중상), 2019년 2월1일(8·여, 중상), 2019년 7월2일(10·여, 경상), 2020년 12월2일(10·남, 중상) 등 최근 5년 사이에 어린이 보행 교통사고가 5번 이상 발생했다. 전북 전주시 인후동 한 아파트 단지 앞, 대구 북구 동천동의 한 어린이보호구역 입구, 대구 달서구 상인동 한 초등학교 근처 학원가(〈그림 7〉) 등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6월11일 충남 서산시 읍내동(7·남), 2019년 8월8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5·남) 사망사고도 무신호 횡단보도 위에서 일어났다.
“손을 높~이 들면 돼요” “빨리 뛰면 돼요” “횡단보도니까 일단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건너요”. 사고가 잦은 무신호 횡단보도를 위태롭게 건넌 아이들에게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지날 때의 방법을 물었더니 돌아온 답들이다. 2016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는 ‘아동의 생활환경 안전연구’에서 초등학생의 등하굣길 관찰연구를 수행했다. 관찰 대상 아동 80%(348명)가 횡단보도나 육교를 통해 길을 건넜다. 그중 97.8%는 차가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96.5%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횡단보도를 지나는 중 주위를 살피는 아동은 전체 사례 318건 가운데 14명(4%)에 그쳤다. 많은 어린이들은 신호등이 있든 없든 횡단보도를 안전한 공간으로 인식했다.
반면 운전자의 생각은 다르다. 횡단보도라고 딱히 보행자 우선 공간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한국안전교통공단은 4월27일 서울 종로구의 무신호 횡단보도 5곳에서 차량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185회 건너는 동안 운전자가 일시정지 규정을 지킨 경우는 단 8회에 불과했다. 어린이보호구역인 초등학교 앞 무신호 횡단보도에서도 36대 중 2대만 보행자를 위해 차를 멈추었다.
지난해 11월17일, 광주 북구 운암동 어린이보호구역에서 D양(3)이 8.5t 화물차에 치여 숨졌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위에서였다. 함께 길을 건너던 엄마와 언니(7)도 중상을 입었고 갓난아기인 동생만 경상에 그쳤다. 차량 정체로 횡단보도 바로 앞에 정차해 있던 화물차 운전자는 정체가 풀리자 이 가족을 발견하지 못하고 차량을 출발시키면서 사고를 냈다고 진술했다. 운전자는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운전자 한 명의 잘못으로 이 참극이 벌어졌을까.
사고 당시 CCTV 속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엄마는 한 손은 둘째와 막내가 탄 대형 유모차를, 다른 한 손은 첫째의 손을 잡은 채 중앙선 부근에서 한참 멈춰 서 있었다. 반대편 차선에서 오는 차량 중 그 누구도 횡단보도 앞에서 멈추거나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엄마와 아이들이 보행자의 통행을 위해 브레이크를 밟아주는 운전자를 만나기 전, 앞에 사람이 서 있는 줄 몰랐다는 화물차 기사가 먼저 가속페달을 밟아버렸다.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시사IN〉 특별기획 ‘스쿨존 너머’
1. ‘스쿨존 너머’, 어린 생명이 꺼진 자리 2. 보행 어린이 사고 지점에 점을 찍으면?
※ ‘스쿨존 너머’ 특별 웹페이지 beyondschoolzone.sisain.co.kr ※ ‘모든 곳을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캠페인 참여하기 makeschoolzon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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