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라진 아스팔트 사이에 핀 민들레, 쓰레기 더미에서 돋아난 새싹. 사진마다 척박한 환경에 사는 생명들이 등장했다. “모퉁이에 시선이 가나 봐요. 사진이 좋네요.” “쟤네(풀)도 주목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한 고립·은둔 청년들의 자조 모임터 ‘두더집’에서 매주 금요일 열리는 ‘사진 치유 워크숍’. 4월18일, 소파에 둘러앉아 사진을 보는 이들이 소소한 대화를 이어갔다.

“오히려 제가 위로를 받아요.” 고립 경험이 있는 박상은씨(26)는 이 수업의 강사를 맡으며 ‘시야 넓히기, 나를 만나기’로 이름 지었다. 고립·은둔 청년 4명이 참여했다. 외부와 거리를 두던 이들도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찍어온 사진을 타인과 공유하며 마음의 벽이 조금씩 낮아졌다.


올해 초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고립·은둔 청년은 5.2%로 2022년 2.4%에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정부가 정의한 ‘고립 청년’은 사회적 관계나 지지가 단절된 청년을 뜻한다. 이들 중 집이나 방 등 한정된 장소에 머물러 있으면 ‘은둔 청년’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다양한 고립과 은둔의 형태가 존재한다.


“나만 무서운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2년 전 직장에서 부당 해고를 당한 이미영씨(가명, 25)는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은둔과 고립 상태를 반복 경험했다. 그는 한국이 대학 졸업 후 다음 단계에 안착할 ‘발판’이 부족한 사회라고 느꼈다. 기준에서 살짝만 미끄러져도 ‘부족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했다. 이씨는 올해 3월부터 일 경험 프로그램 ‘두더잡(Do the Job)’에 참여하고 있다. ‘두더집’에서 ‘1일 매니저’로 일하며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두더집’을 운영하는 사단법인 씨즈(SEEDS)의 이은애 이사장은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묻는 동네 주민에게 이곳을 ‘청년들의 노인회관’이라고 설명한다. ‘두더집’이 오프라인 공간이라면 온라인 플랫폼 ‘두더지 땅굴’은 일종의 관계망 역할을 하고 있다. 땅 아래에서 생활하는 두더지처럼,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서로 연결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 착안했다. 현재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합쳐 누적 사용자가 1만명을 넘는다. 지난해 4월에는 제주에도 두더집이 문을 열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꾸준히 사회로 나가려는 고립·은둔 청년들을 돕는다. “단순히 게으른 사람으로 치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삐끗한 사람’이 어떨까요. 누구나 그럴 수 있잖아요(이미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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