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운을 입은 할머니 손님이 빗자루로 머리카락을 쓸어 담는다. 샴푸실에서 나온 손님은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직접 말린다. 머리 손질을 마친 빨간색 정장 차림의 김미선 원장(67)이 손님에게 3000원을 받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빨리 밥 먹으러 가요.”
7월14일 오전 11시30분, 전북 전주시 각시 미용실에 있던 손님들이 밖으로 나섰다. 바로 건너편 건물 식당에서 옹기종기 줄을 서서, 그릇에다 고추멸치조림·미역줄기·열무김치와 보리밥을 담고 식탁에 앉아 미역국에 곁들여 먹는다. 뒤늦게 들어온 김 원장이 말했다. ‘멸치조림의 고추를 더 넣어서 비벼 먹으면 엄청 맛있다’고. 반찬과 밥은 김 원장이 직접 만들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2시간 동안 약 40인분의 밥을 짓고 반찬을 준비한다. 머리하다 손님을 남겨놓고 혼자 밥 먹는 게 미안해서 ‘같이 밥 먹자’며 시작한 일이 26년이나 됐다.


47년 경력의 김미선 원장은 쉴 틈 없이 일한다. ‘빠르고, 머리도 안 상하고, 가격이 좋아서’ 항상 손님들로 북적이기 때문이다. 70대 이상 손님에게는 커트 비용으로 단돈 3000원, 파마는 1만5000원을 받고 있다. 그 때문에 정읍·진안·임실 등 시골에서 오는 어르신이 많다. 30년 단골인 임분순씨의 말처럼 ‘돈도 많이 없으면서 퍼주는’ 김 원장이 마음 쓰여서, 그와 함께 봉사활동하다 알게 된 윤성중씨처럼 자비로 매 주말 봉사하는 김 원장에게 보탬이 되고 싶어서 찾아오는 손님도 여럿이다.




24년간 함께 일한 딸 박주연씨는 ‘여행도 안 가, 옷도 화장품도 안 사, 식재료를 누가 훔쳐 가도 그러려니’ 하는 엄마가 답답할 때가 있지만, 곁에 있는 아빠와 함께 이 모든 일을 해나가는 것이 대단하다고 느낀다.
“내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돈 생각하면 못해요.” 그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기쁘다. 어려운 상황이라도 이웃에게 나눠줄 수 있는 마음이 사랑이라 믿는다. “그런 사람으로 100살까지 밥하고, 머리하며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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