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만든 1㎥ 공간에서 파업을 벌였던 유최안 하청노조 부지회장(사진)이 회사가 청구한 손해배상액이 쓰인 피켓을 들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최안. 전쟁을 겪었던 할아버지는 그가 최고로 평안한 삶을 누리기를 바랐다. 유최안(40)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하청노조) 부지회장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이름이 전부 성씨잖아요. 유씨, 최씨, 안씨. 그래서 늘 세 사람 몫을 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는 지난 6월22일부터 7월22일까지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m에 불과한 공간에 스스로를 가뒀다.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에 ‘임금인상 30%’와 ‘하청노조 인정’을 요구했으나 결국 하청업체 대표단과 ‘임금인상 4.5%’ 선에서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 파업은 끝났지만 유최안 부지회장은 아직 평안하지 못하다.

최안. 난생처음 손에 잡은 용접기에 적혀 있는 이름이었다. “성이 최씨고 이름이 안인가 보다 했죠. 전국에 하나밖에 없는 이름일 거야.” 김형수 하청노조 지회장(48)이 웃음을 지었다. 대구 출신인 그는 서른네 살 때 조선소에 들어왔다. 당시 그에게 용접 기술을 가르쳐준 사람이 유최안 부지회장이었다. 나이는 한참 어렸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부터 용접공으로 일한 유 부지회장은 그의 사수가 됐다.

원래 유 부지회장은 취부사(용접을 하기 전 철판을 임시로 고정하는 사람)로 일을 시작했다. “하루는 철판 블록끼리 수평을 맞추고 있는데, 흔들흔들하던 블록이 넘어가는 거예요. 같이 일하는 형들이 갑자기 ‘야! 와!’ 하더니 우르르 달려들어서 그걸 손으로 막더라고요. 철판이 땅에 닿아서 휘어지면 작업을 다시 해야 하니까.”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자 아찔해졌다. 취부사 중에는 이가 없고 손가락이 잘린 형들이 많았다. 도망치듯 군대를 다녀온 뒤 그는 용접을 배웠다. 7년 만에 최종 조립공정인 ‘탑재’ 단계에서 용접을 하게 됐다. 유최안 부지회장의 얼굴에 자부심이 넘쳤다. “전 다른 사람보다 돈 적게 받고 일한 적 없어요. 돈 받는 게 일하는 사람들의 자존심 아닌가요?”

김형수 지회장은 용접 자체가 즐거웠다. “그동안 해왔던 일 중에서 제일 재미있었어요. 붙이는 거잖아요. 제가 그런 걸 좋아하는 거 같아요. 철판도 이어붙이고, 사람들도 서로 이어주고.” 실력도 빨리 늘었다. 조선소에 들어간 지 서너 달 만에 가장 높은 봉급을 받았다. “최고의 기량이었는지는 몰라도 최고의 대우는 받았어요. 엔지니어로서 자부심이 있었어요. 우리는 일 준다고 아무렇게나 막 하지 않았어요. 항상 시뮬레이션 해보고 준비해서 작업 들어가고. 하청이라고 무시 안 당하려고 일을 깔끔하게 하려고 노력했죠.”

첫 대규모 집회 발단은 성과금 

조선업계 호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중소 조선소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다. 어쩔 수 없이 대우조선해양 조선소 안에 있는 하청업체로 들어왔다. 하지만 일자리를 옮긴 지 1년 만에 업체가 폐업했다. 김형수 지회장은 고용승계를 요구했다. 노조가 만들어지기 전 첫 투쟁이었다. “이주노동자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그대로 고용하라고 했어요. 진짜 죽을 각오였어요. 왜냐면 이게 시작일 거니까. 하청 노동자들은 뉴스에도 나오지 않고 소리 소문 없이 다 잘리겠구나 싶었어요.” 고용승계는 됐지만, 2016년 한 해에만 업체 35곳이 폐업했다.

절박해진 하청 노동자들이 모였다. 금속노조 아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가 출범한 건 2017년 2월이었다. 일감을 따라 여러 조선소를 전전하는 조선소 노동자 특성에 맞춰 지역별 노조를 만들었다. 34명에서 시작한 노조는 좀처럼 규모가 불어나지 않았다. 고용형태도, 임금체계도 제각각인 하청 노동자들이 한데 뭉치기는 쉽지 않았다. 전환점이 된 건 2019년 5월10일 총궐기였다. 대한민국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이 모여서 대규모로 연 최초의 집회였다.

발단은 성과금이었다. “하청은 안 주고 정규직에게만 주는 거예요. 그때 현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죠.” 김형수 지회장이 말했다. 대규모 총궐기 집회를 연 바로 다음 날, 원청은 애초 약속대로 성과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일주일 뒤에 열린 2차 총궐기 때는 하청 노동자 200명이 현장에서 노조 가입서를 썼다. “줄 수 있는데 안 주려던 거를 항의해서 받아낸 거니까요. 노동조합이 별다른 게 아니잖아요. 먹고살기도 바쁜데 무슨 다른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적어도 부당한 일은 당하지 말자는 거였죠.” 김형수 지회장이 말했다.

압박은 점점 심해졌다. 상여금 550%가 400%로, 400%가 0%로 차례로 삭감됐다. 100개가 넘는 업체 중 김형수 지회장과 유최안 부지회장이 다니던 두 업체만 상여금을 지켜냈다. 상여금을 없앤다는 취업규칙 변경안이 사내 투표에서 통과되지 않자 업체는 근로계약서를 새로 써서 조건을 바꾸려고 했다. 노조 조합원들은 새로운 근로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사건은 결국 법원으로 갔다. 2019년 1월30일,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1심)은 취업규칙이 바뀌더라도 노동자가 서명한 근로계약서가 우위에 있다고 판단했다. 해당 판결은 2020년 4월9일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그러자 업체는 폐업신고를 해버렸다. “이번 한 번만 막으면 되겠다 싶었는데 아니더라고요. 변호사 비용 수천만 원은 쓰면서 우리 1년 치 상여금 700만원은 결국 안 주더라고요.” 유최안 부지회장이 말했다.

2020년 1월 김형수 지회장은 해고됐다. 노조 지회장에 당선된 지 23일 만이었다. 복직투쟁을 할 여유도 없었다. 해마다 임금인상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파업을 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내지 못했다. 어렵사리 협상을 해도 업체마다 실제 약속을 이행하는 정도가 달랐다. 최악의 경우 폐업으로 끝이 났다. 원청과의 협상이, 번복되지 않는 약속이 절실했다. 하지만 원청은 서류로만 대응했다. 대우조선해양은 2021년 4월, 16일 동안 진행된 파워공(철판 표면을 매끄럽게 갈아내는 사람) 집회 때문에 소음 발생과 작업 지연 등의 손해가 발생했다며 10억4708만여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액을 청구하기도 했다. “박두선 사장 취임식 날에 소장을 받았어요. 홈페이지에 ‘대우조선해양 구성원 여러분 함께 살아갑시다’ 이런 글귀가 뜨던 날 우리한테는 10억원을 내라고 소장을 보낸 거예요.” 김형수 지회장이 말했다.

합의안에 담겼던 고용승계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김형수 하청노조 지회장(사진)은 단식을 벌였다. 그가 대우조선해양이 청구한 손해배상액이 쓰인 피켓을 들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해고자 복직 아직 안 이뤄져

지난 6월2일 하청노조는 다시 파업에 들어갔다. 임금인상 30%와 하청노조 인정이 목표였지만 원청은 꿈쩍하지 않았다. 6월20일 임시 계단과 통로 등을 설치하는 ‘발판’ 일을 하던 여성 조합원 나윤옥씨(53)가 경비원과 실랑이하던 중 넘어져 병원으로 실려갔다. 흉추 12번이 골절돼 석 달 동안 입원했다. 유최안 부지회장이 ‘용역이나 구사대가 와도 절대 뚫리지 않는 곳’을 마련해야겠다고 결심하는 데에는 이 사건이 영향을 미쳤다. 조합원들이 다치는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의경들에게 밀려 어쩔 수 없이 뜻을 굽혀야 했던 지난해 파업이 떠올랐다.

6월22일, 유최안 부지회장은 제1도크에서 만들던 30만t급 원유운반선 바닥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당시를 떠올리던 김형수 지회장은 먼 곳을 바라봤다. “매일 (유최안 부지회장을) 보러 내려갔어요. 어떤 때는, 마음이 힘들 때는 차마 못 보겠더라고요. 조합원들도 그냥 다리 위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막상 앞에서 가서 보니까 다들 못 보겠다고 하고요. 한 사람이 갇혀 있는 모습이잖아요.”

유최안 부지회장이 점거 농성에 들어간 뒤 나흘 만에 교섭 자리가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협상 테이블만 만들어지면 빨리 정리가 됐거든요. 그런데 교섭이 열릴 때쯤 되니까 사건이 보도가 많이 돼서 이미 대우조선해양 선에서 덮을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관심이 집중될수록 결재선이 올라가더라고요. 산업은행, 관계 부처, 대통령까지.” 김형수 지회장 역시 이번 교섭의 대상은 대우조선해양이 아닌 정부였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공권력을 투입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했잖아요. 사실상 정부가 개입한 교섭이죠.”

교섭 결과는 아쉬웠다. 임금인상과 하청노조 인정 같은 원래 요구안 대신 사측에서 8000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하는 손해배상 금액이 가장 큰 쟁점이 됐다. 파업이 끝난 뒤 대우조선해양은 결국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애초에 주장하던 8000억원의 약 5% 수준인 470억원을 하청노조 간부 다섯 명(김형수 지회장·유최안 부지회장·안준호 부지회장·강인석 부지회장·이김춘택 사무장)이 나눠 내라는 주장이었다.

“소장을 보면 우리 때문에 75만 시간(3만1250일)을 손해 봤대요. 그리고 시간당 손해 본 금액이 6만3113원이래요. 우리 임금은 최저시급인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솔직히 저한테는 1000만원이 더 크게 느껴져요. 만약 이 청구가 인용되고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가 자꾸 후퇴하면 앞으로 우리 사회는 470억이 아니라 470조의 사회적 비용을 내야 할 거예요.” 김형수 지회장이 말했다.

“우리가 투쟁을 정리해야만 했던 이유가 손해배상 때문이거든요. 정말 특공대가 밀고 들어와서 조합원들을 끌어내고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하면 아무도 못 버틸 거라고 봤어요. ‘너네 임금 몇십만 원 올리자고 집이며 차며 재산 몽땅 날리고 인생 한번 망해볼래’, 이걸로 협박하는 거잖아요. 손해배상 금액 앞에서는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파업할 수가 없어요. 이번에도 그게 확인된 거고요.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고요. 이 문제를 솔직히 남이 짚어줬으면 좋았겠지만요.” 유최안 부지회장 역시 470억원이라는 숫자를 봐도 아무 느낌이 없다고 말했다. “소장은 수령도 안 했어요. 봐봤자 뭐 하게요? 솔직히 노동조합 일을 하면서 남아 있는 게 없어요. 집에서도 이미 별명이 ‘골치’예요.”

나윤옥씨와 정순희씨(오른쪽). 나씨는 손해배상 문제를 환기시킨 걸 가장 큰 의미로 꼽으면서도 동시에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

추석 연휴가 끝난 9월13일, 유최안 부지회장은 현장에 복귀했다. 동료들은 무엇보다 손해배상을 걱정했다. 파업 도중 흉추가 골절돼 병원에 입원했던 나윤옥씨는 손해배상 문제를 환기시킨 걸 가장 큰 의미로 꼽으면서도 동시에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우리가 그게 제일 약점이잖아요. 돈으로 짓누르고 고용으로 흔들면 답이 없어요.” 나윤옥씨를 비롯한 노조 조합원 42명은 파업이 끝난 뒤 지금까지 실직 상태다. 파업 도중 하청업체가 문을 닫은 뒤 고용이 이어지지 않은 탓이다.

합의안에 담겼던 고용승계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김형수 지회장은 8월19일부터 국회 앞에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그제야 하청업체 대표단은 해고자 42명을 고용하기로 재합의했다. 21일 동안 김형수 지회장의 몸무게가 9.5㎏ 빠진 뒤였다. 그러나 9월22일 현재까지 해고자들은 복직하지 못한 상태다. 이들은 매일 아침 조선소 대신 농성 천막으로 출근한다.

“파업에 참여한 걸 후회해본 적 없다면 거짓말이죠. 그래도 한 번씩 농담으로 하는 소리가, 나이 먹고 조선소 그만둬도 다 같이 명예조합원으로 다니자고 해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번에 노란봉투법이 통과돼야 가능한 얘기겠죠.” 나윤옥씨의 동료이자 마찬가지로 해고 노동자인 정순희씨(46)가 말했다. 

9월15일 정의당·더불어민주당 의원 56명이 노조의 파업에 대한 기업의 불합리한 손해배상을 제한하자는 내용이 담긴 일명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기자명 거제·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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