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배춘환씨가 〈시사IN〉 편집국장 앞으로 보내온 편지. 현금 4만7000원이 들어 있었다.ⓒ시사IN 조남진
2013년 12월 배춘환씨가 〈시사IN〉 편집국장 앞으로 보내온 편지. 현금 4만7000원이 들어 있었다.ⓒ시사IN 조남진

이번 21대 국회 들어 야당 단독으로 노란봉투법과 방송 3법을 통과시켰다(이전에는 양곡관리법과 간호법을 야당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은 두 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오랫동안 ‘잠자던’ 노란봉투법은 어떻게 깨어나 국회를 통과했나. 그 과정에서 법의 방점은 어디로 이동했나. 그리고 어디에서 왜, 막혔나. 노란봉투법의 ‘생애사’를 들여다보면, 정치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이 날것으로 드러난다.

■ ‘노란봉투법’의 탄생

노란봉투법은 같은 이름의 캠페인에서 시작한 법이다. 2013년 12월, 곧 세 아이의 엄마가 되는 배춘환씨는 〈시사IN〉에 보도된 한 기사를 보고 편집국장 앞으로 편지를 썼다. 쌍용차 노조가 손해배상(손배) 판결을 받았다는 기사였다. “해고 노동자에게 47억원을 손해배상하라는 이 나라에서 셋째를 낳을 생각을 하니 갑갑해서, 작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고 싶어서입니다. 47억원… 뭐 듣도 보도 못한 돈이라 여러 번 계산기를 두들겨봤더니 4만7000원씩 10만명이면 되더라고요.” 편지에는 현금 4만7000원이 들어 있었다.

〈시사IN〉은 2014년 신년호에 이 사연을 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단발성 미담’이었다. 그런데 편지를 본 독자들이 배씨를 따라 4만7000원을 넣은 봉투를 편집국 주소로 보내오기 시작했다. 당장 모금 계좌를 내놓으라는 독촉 전화가 이어졌다. 현행법상 언론사는 일정액이 넘는 모금을 주관할 수 없다. 공익기부 전문재단인 아름다운재단에 의뢰했다. 모금 사이트를 오픈했고, 가수 이효리씨의 동참 편지도 공개됐다. 그렇게 한 사람이 4만7547명이 되고, 4만7000원이 14억6874만1745원이 됐다. ‘노란봉투 프로젝트-우리가 만드는 기적 4만7000원’ 얘기다. 쌍용차 노동자에게 전달된 해고통지서가 ‘노란봉투’에 담겨 있었고, 예전에는 월급을 노란봉투에 담아 주었던 데서 착안했다.

재단은 모금 사용처 중 하나로 ‘법률 개선활동 지원’을 추가했다. 마침 열쇠를 쥔 국회의원들도 캠페인에 동참했다. 노란봉투 캠페인을 계기로 2014년 2월 출범한 시민단체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손잡고)’는, 은수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함께 ‘법·제도 개선 위원회’를 꾸린다. 1년여 만인 2015년 4월6일, 은수미 의원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다. 이전에도 비슷한 취지의 법안이 발의된 적은 있지만, ‘노란봉투법’으로 불린 건 이 법이 처음이다. 말하자면 노란봉투법이 탄생한 순간이다.

시민단체 손잡고가 2015년 7월30일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노란봉투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시사IN 이명익
시민단체 손잡고가 2015년 7월30일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노란봉투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시사IN 이명익

당초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노조법 제3조였다. 현행 노조법 제3조는 ‘이 법에 의한 파업’, 즉 합법 파업으로 기업이 손해를 입었다면, 노동조합이나 노동자에게 손배를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파업이란 원래 기업에 손해를 끼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파업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항이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손배 청구의 근거가 되어왔다. 법원이 이를 ‘불법 파업에는 손배를 청구할 수 있다’고 해석해왔기 때문이다.

은수미 의원의 법안은 노조법 제3조의 ‘이 법에 의한’이라는 문구를 삭제하고자 했다. 기본적으로 파업은 합법이라고 보고 손배 청구를 할 수 없게 한 것이다. 단 폭력이나 파괴를 주되게 동반한 경우 등은 예외로 했다. 또한 기업이 손배를 청구하는 경우에도 노동조합이 아닌 간부나 조합원 같은 ‘개인’에게는 청구할 수 없도록 했다. 액수 제한도 뒀다. 손배를 청구하더라도 해당 노동조합이 재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하라는 취지다. 법안에 따르면, 조합원 수가 300명 이하일 경우 최대 2000만원, 1만명 이상일 경우 최대 5억원까지만 청구할 수 있었다. 영국의 입법례를 참고한 것인데, 이런 법이 통과되면 적어도 쌍용차 노조처럼 47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당하는 일은 사라지리라고 기대되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들이 2014년 3월5일 노란봉투 캠페인에 참여했다. ⓒ우원식 의원실 제공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들이 2014년 3월5일 노란봉투 캠페인에 참여했다. ⓒ우원식 의원실 제공

그런데 당시는 박근혜 정부 시절이었다. 2015년 12월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법안소위에서 고영선 당시 고용노동부 차관은 은수미 의원 법안에 대해, “노사정위원회에서 이 이슈를 논의하기로 했기 때문에 그 결과를 보고 개선해나가겠다”라고 말한다. 여당이던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들은 법 통과 가능성을 일축한다. “불법적인 부분까지 면책해서는(책임을 면해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 여당 위원들의 의견이니까 이 정도로 정리하고…(권성동 의원, 당시 법안소위 위원장).” “민사법의 대원칙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에 길게 논의할 필요는 없다(김용남 의원).”

여기서 ‘민사법의 대원칙에 어긋난다’는 말은 이런 뜻이다. 민법 제750조는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한다. 지금도 ‘합법 파업’인 경우에는 손배 청구를 당하지 않는데,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불법 파업’에도 손배 청구를 할 수 없게 하는 것은 다른 시민들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논리다. 19대 국회(2012~2016년)에서 노란봉투법 논의는 사실상 이날 한 차례 이뤄진 게 전부다. 이렇게 첫 노란봉투법은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 과반 의석수 부족 때문이 아니었다

뒤이어 들어선 20대 국회(2016~2020년) 때도 비슷한 내용을 담은 노란봉투법을 2016년 10월 이정미 정의당 의원, 2017년 1월 강병원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별다른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2017년 5월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의원 시절 노란봉투 캠페인에 참여했으며 손잡고 발기인이기도 했다. 19대 국회 당대표 시절에는 “노란봉투법을 관철시켜낼 것입니다”라는 축사를 손잡고 행사에 보냈다. 문재인 정부 초대 민정수석이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손잡고 공동대표 출신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20대 국회 후반기 때 노란봉투법은 단 한 번도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못했다.

“19대 국회 때 민주당은 ‘의지는 있는데 인원이 부족해서 추동력이 약하다’고 했다. 20대 국회 때는 민주당 의석이 더 많아졌기에 기대를 했는데, 이번에는 ‘과반이 안 되어서 어렵다’고 하더라”는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의 말처럼, 과반이 안 되는 민주당 의석수 때문에 노란봉투법이 도입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21대 국회(2020~2024년)에는 민주당이 과반을 달성했다. 정권이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 국회 의석이 과반을 넘긴 시기, 즉 21대 국회 전반기가 노란봉투법의 ‘골든타임’이 될 수도 있었다.

21대 국회에 들어선 2020년 6월 강병원 민주당 의원이, 그해 9월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대동소이한 내용의 노란봉투법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2020년 12월3일 국회 환노위 법안소위에 출석한 박화진 당시 고용노동부 차관은 노란봉투법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거의 20년 전부터 이 문제를 저희도 고민을 해왔는데… 해당 법률의 원칙을 흔드는 특례조항들이 많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 때 국민의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정부 막바지인 2021년 3월 임종성 민주당 의원도 비슷한 내용의 노란봉투법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까지 추가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왜 문재인 정부 때도 민주당은 노란봉투법에 적극적이지 않았을까. 여당 시절이던 20대 국회 후반기 환노위 간사를 맡은 한정애 민주당 의원은 “정권을 잡고 난 뒤 가장 큰 이슈가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이었다. 그 이후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을 논의했고, 과반을 넘긴 21대 국회 초반에는 중대재해처벌법(2021년 1월 본회의 통과) 제정에 힘을 쏟았다. 저희가 여당이긴 했지만 전선을 막 여러 개 칠 수는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역시 여당 시절이던 21대 국회 전반기 환노위 간사를 맡은 안호영 민주당 의원은 “다수당이라고 모든 걸 일방적으로 할 순 없다. 그때도 야당인 국민의힘은 반대했고, 의견 수렴에 시간이 걸려서 제대로 못했다. 의지가 없었던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는 “결국 민주당이 의지가 없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국회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가 ‘여론을 만들어 오세요’다. 민주당 환노위 구성이 바뀔 때마다 노란봉투법의 기원부터 새로 설명해야 했다.” 한국노총, 민주노총도 관심이 적기는 마찬가지였다. “손배는 파업을 한 이후의 일이라, 그동안은 양대 노총의 주요 의제가 되지 못했다. 정권이 바뀌고 지난해 6월30일 손잡고에서 손배 판결문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기자가 단 두 명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손배 이슈가 좀처럼 힘을 받지 못했다.”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지난해 6월22일 거제 대우조선 옥포조선소에서 농성을 시작했다.ⓒ금속노조 제공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지난해 6월22일 거제 대우조선 옥포조선소에서 농성을 시작했다.ⓒ금속노조 제공

그 직후 ‘반전’이 일어났다. 지난해 여름 대우조선해양 하청 용접공 유최안씨가 가로·세로·높이 1m짜리 쇠창살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며 점거 파업을 벌였다. 총 51일간 이어진 하청 노동자들의 ‘불법 파업’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대우조선이 그해 8월 유최안씨 등 하청 노동자 5명에게 470억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9년 전인 2013년 쌍용차 노조가 받은 손배 판결 액수 뒤에 ‘0’ 하나가 더 붙었다. 23년 차 대우조선 하청 도장공의 230여만원짜리 월급명세서가 공개되기도 했다. 지난해 8월12일부터 9월16일까지 이수진(비례)·강민정·양경숙·노웅래 민주당 의원,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노란봉투법을 새로 대표 발의하면서 논의는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2015년 노란봉투법이 처음 발의된 이래 어느 때보다 법 통과 가능성이 높아졌다.

■ 노조법 2조, ‘게임 체인저’로 떠올랐지만

지난해 8~9월 발의된 노란봉투법 대부분에는 기존 노란봉투법에 없던 내용이 추가됐다. 노조법상의 여러 용어를 정의하는 조항이 노조법 제2조인데, 이 중 ‘사용자’ 개념에 ‘근로조건에 관해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자’도 포함시키도록 개정하자는 내용이다.

지난해 9월14일 민주노총·참여연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시민단체 84곳이 출범시킨 단체 이름도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다. 노란봉투법 논의 과정에서 ‘노조법 제2조’가 3조 못지않은 쟁점으로 올라선 것이다. 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이용우 변호사는 그 취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실 파업에 대한 손배 청구는 ‘결과’다. 손배 청구의 ‘원인’을 줄여주는 게 핵심이라고 봤다.” 무슨 뜻일까.

한국의 법원은 단체교섭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사람이(주체), 근로조건의 유지·개선을 목적으로(목적), 시기와 절차를 지켜서(절차), 폭력·파괴 행위를 수반하는 등 반사회적이지 않은 형태로(수단) 벌인 파업이어야 ‘합법 파업’이 되어 손배 청구를 면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 특히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이 진행한 ‘점거 파업’의 경우 수단 면에서 불법이라고 간주되는 경향이 높다. 그런데 대우조선 하청 노조가 처음부터 점거를 택한 건 아니다. 하청업체와 교섭을 시도했으나 결렬되었고, 절차를 지켜서 집회 방식으로 파업을 하다가, 사용자 측과 충돌이 생겨 점거로 나아갔다.

문제는 이들이 ‘사내하청’이었다는 점이다. 사내하청이란 같은 사업장 내에서 일감을 떼어내 외주를 주는 형태를 말한다. 이들이 점거한 대우조선은 자신들의 사업장이기도 했던 것이다. 파업 당시 대우조선 생산직은 직영 4900명과 사내하청 1만100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은 원청이 지급하는 ‘기성비(물량에 대한 단가)’에 전적으로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최안씨 등이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은 하청업체이지만, 이들의 ‘근로조건에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자’는 원청인 대우조선일 가능성이 높다. 유최안씨 등은 조선업 불황 시기에 깎인 임금을 회복시켜달라며 파업을 벌였는데, 만약 처음부터 원청과 교섭(의논)할 수 있었다면 극단적인 갈등으로는 치닫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470억원이라는 손배 청구도 없었을 것이다. 노란봉투법과 노조법 제2조 개정이 바로 여기에서 만난다.

물론 재계는 이런 변화를 반기지 않는다. 지난해 11월17일 국회 환노위 공청회에 출석한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현재 대기업 원청은 수십 개 내지는 수백 개의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고 있다. 이 경우에 하청업체 근로자들한테 다 교섭 의무가 부과될 수 있고… 모든 n차 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교섭 요구가 가능할 것으로까지 해석이 될 수 있는 우려가 고민된다.” 국민의힘의 반대도 완강했다. 지난해 11월30일 국회 환노위 법안소위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노란봉투법을 두고 심도 있는 논의를 했으나, “불법을 법으로 보호하는 데 참여할 수 없다(임이자 국민의힘 의원)”라며 국민의힘 의원들은 중도 퇴장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12월7일 법안소위에는 참여했으나 12월26일 법안소위에는 다시 중간에 자리를 떴다.

■ 민주당 입장과 노란봉투법의 ‘재구성’

핵심 쟁점이 노조법 2·3조 개정으로 모아졌지만, 민주당이 그리 적극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당초 노란봉투법 핵심으로 꼽힌 노조법 3조 개정에는 난색을 표했다. 폭력·파괴 행위를 제외하면 파업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게 하는 조항은 노란봉투법 대부분에 포함돼 있었는데, 앞서 언급한 민법 제750조(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나아가서는 재산권과 재판 청구권을 보장한 헌법에 어긋난다는 오랜 비판에 다시 맞닥뜨렸다.

이는 운동본부도 인식하고 있던 문제점이었다. 지난해 11월 고민정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노란봉투법은 운동본부의 고민을 담은 ‘최종판’이라 할 만하다. 고민정 안은 ‘이 법에 의한 파업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노조법 3조에서 ‘이 법에 의한’을 ‘헌법에 의한’으로 바꾸자고 했다. 노조법 일부를 어겼더라도 헌법에 의한 파업권 행사라면 보호를 받게 하려는 조항이다. 또한 단순히 일을 안 했다거나 적법한 파업이었어도 발생했을 손해(영업이익, 고정비 등)에 대해서는 배상을 청구할 수 없게 했다. 손배를 청구하는 경우에도, 법원이 각 파업 참여자의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비율을 정하도록 했다. 모두 손배 자체는 청구할 수 있게 여지를 열어주면서도 무분별한 소송 제기는 억제하는 내용이다.

11월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배춘환씨(가운데)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읽고 있다.ⓒ시사IN 조남진
11월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배춘환씨(가운데)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읽고 있다.ⓒ시사IN 조남진

노조법 3조와 관련해 결과적으로 반영된 것은 ‘파업에 손배를 인정하는 경우 법원이 각 파업 참여자의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비율을 정하도록 한다’는 조항뿐이다. 전해철 환노위원장(민주당 의원)이 마련한 민주당 단일안에서다. 원래 전해철 위원장은 노조법 2조의 사용자 개념 확대에도 회의적이었다고 전해진다. 정의당은 노조법 2조의 사용자 확대는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논의는 한동안 공전했다.

올해 1월12일 서울행정법원 1심 판결 이후 법안 통과 흐름이 급물살을 탔다. 앞서 택배노조는 직접 위탁계약을 맺은 대리점이 아니라 원청인 CJ대한통운 본사에 교섭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택배노조는 이것이 부당노동행위라고 주장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노조의 신청을 각하했지만 중앙노동위원회는 노조 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1월12일 1심 재판부는 CJ대한통운이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 내지 결정권을 갖는 원청 사업주’로서 노조법상 사용자라고 인정했다. 이미 2010년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이 사내하청 노조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하청업체들을 폐업시킨 사건에서, 노동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는 노조법상 사용자라고 판시한 바 있다. 재계와 국민의힘은 현대중공업 판결이 원청이 꼭 단체교섭을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맞섰는데, 이번 CJ대한통운 판결은 그런 반론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노조법 2조의 사용자 개념에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추가한 노란봉투법이 올해 2월15일 국회 환노위 법안소위를, 2월21일 환노위를 야당 단독으로 통과했다.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를 거쳐야 하는데, 환노위는 법사위가 60일 넘도록 ‘이유 없이’ 심사를 마치지 않았다며 5월24일 본회의 직회부를 결정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헌법재판소에 무효 확인을 청구했고, 10월26일 헌법재판소는 본회의 직회부가 적법했다고 판단했다. 11월9일,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 의원이 퇴장한 가운데 찬성 173명, 기권 1명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안은 논의 초기의 목표처럼 파업에 대한 손배 청구를 제한하지도, ‘불법 파업’이면 손배 청구를 당하게 되는 법적 구조를 바꾸지도 못했다. 노조법 2조의 사용자 개념도, 같은 법 3조의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른 책임 비율 인정’ 조항도 기존 판결을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 그나마 파업의 목적에 ‘경영권’이란 이유로 기존에는 허용되지 않던 정리해고 반대 파업 등을 추가했지만, 이 법이 시행되더라도 여전히 노동조합과 그 간부에게 파업에 따른 손배 청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국민의힘과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게 최선이었을까? 김영진 환노위 민주당 간사는 “사용자 단체가 과도하게 반발하지 않도록 순화를 많이 했는데, 국민의힘과 대통령 측에서 워낙 반대가 완강했다. 우리가 정권을 잡았을 때 통과시키지 못한 ‘원죄’가 있어서 공격에도 더 취약했다. 그래도 한번 논의를 숙성시켜놨기 때문에 다음번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될 때까지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파업권을 보장하는 문제는 그리 직관적이거나 대중에게 인기 있는 주제가 아니다. 보편적 인권의 문제이지만, 살림살이가 팍팍할수록 외면받기 쉽다. 정치란 인간 사회의 숱한 갈등 중에 무엇이 핵심 갈등인지를 결정하는 게임이다. 노란봉투법은 대우조선 하청 파업과 노동시장 변화에 힘입은 ‘노조법 2조 개정론’의 대두로 예외적으로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당분간 사회의 ‘1번 갈등’에 오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노동부에 따르면, 2009년 쌍용차 파업 이후 2022년 8월까지 노조원 등을 상대로 2752억원 규모 손해배상이 청구됐다. 10년 전 〈시사IN〉에 편지를 보낸 배춘환씨는 11월20일 다시 편지 한 통을 썼다. 이번 편지의 수신자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11월17일 정부로 이송되었다. 대통령은 이날로부터 15일 이내에 개정안을 공포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해야 했는데, 결국 12월1일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로부터 11일 전, 배씨는 ‘윤석열 대통령님께’로 시작하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노란봉투법의 시작은 여당과 야당의 대립도 아니고, 경영계와 노동계의 대립도 아니었습니다. 내 이웃이 고통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더 정의로웠으면 하는 마음, 돈 때문에 누군가 더 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그런 마음들이 모여 만들어진 법이 노란봉투법입니다. (…) 품위 있는 시민으로 살기 위한 복지이고 민생입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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