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천씨는 공장에서 나오는 분진 등 유해물질을 걸러내는 백필터 교체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회사는 지난 1월27일부터 확대 시행된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는다. 2022년 1월부터 50명 이상 사업장(공사 현장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에만 적용했던 중대재해처벌법이 상시근로자 5~50명 미만 사업장(공사현장은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에도 확대 시행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씨는 중대재해처벌법이 확대 시행되기 이전과 현재,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12월에 고용노동부에서 팩스가 하나 왔다. ‘안전보건관리 체계 구축’에 대한 컨설팅을 해주는 온라인 강의를 들어보라는 거였다. 우리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차라 수강신청을 해서 듣고 있다. 그것 외에는 아직까지 정부로부터 중대재해처벌법에 관한 별도의 안내를 받은 것은 없다.”
중대재해는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경우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동일한 사고로 2명 이상 발생한 경우 △동일한 유해 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하는 경우 등 세 유형이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는 사업장에서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법 시행 직전까지 정부·여당·경영계가 추가 적용 유예를 주장하면서 혼선이 이어졌다. 정치권 논쟁도 계속됐다. 2월2일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현행대로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확정하자 “운동권 특유의 냉혹한 마키아벨리즘”이라고 비판하며 “총선 때 양대 노총의 지지를 얻고자 800만 근로자의 생계를 위기에 빠뜨린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사업주 엄벌법’처럼 인식되는 데 반발했다. 경영자에게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는 법이 아니라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에 규정된 안전보건 의무를 정확히 지키게 하는 법이라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확대 시행에 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지만 명확한 사실이 하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는 사업장의 경영인 대부분이 이 법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2월8일 KBS 라디오에 출연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2년 유예기간 동안 50인 미만 사업장 83만7000개 중 절반 정도인 45만 개 사업장이 (…) 예방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2년 가지고는 반밖에 못했다”라며 여전히 준비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중대재해가 발생한다고 사업주가 무조건 처벌받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중소상인들을 ‘예비 범죄자’로 만드는 법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둘러싼 각종 ‘소문’들 중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일까? 중대재해처벌법을 이해하기 위해 그 내용을 문답 형태로 정리했다.
① 누가 상시근로자에 속하고, 상시근로자 수는 어떻게 계산하나?
정규직 노동자는 물론이고 기간제·단시간·일용직 아르바이트생 등 사업주와 근로계약을 맺고 노동을 제공하는 모든 사람은 상시근로자에 속한다. 사업장과 별도의 근로계약을 했다면 배달 라이더 역시 상시근로자에 포함될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도 등록 여부와 상관없이 이에 포함된다.
조금 까다로운 것은 ‘상시근로자 계산법’이다. 예를 들어보자. ㄱ씨는 평일 4명, 주말 5명이 근무하는 식당을 운영한다. 주 7일 문을 여는 이 식당의 가동 일수(사업장을 운영한 날)는 한 달에 30일이다. 상시근로자는 연인원(사업장에서 하루에 근무한 사람 수Ⅹ가동 일수)을 가동 일수로 나누면 된다. 이 식당의 경우 평일 연인원(4명x20일)과 주말 연인원(5명x8일)을 합친 한 달 연인원(120명)을 한 달 가동 일수(30일)로 나누면 4명이 나온다. ㄱ식당의 상시근로자는 4명이다. 전체 직원 수 9명이 아니다. 그러므로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이 아니다.
② 동네 빵집 사장도 처벌받을 수 있나?
상시근로자 수가 5명이 넘는 경우라면 동네 빵집, 식당, 카페 등을 운영하는 개인사업주 역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는다. 이를 두고 지난 1월31일 중소기업중앙회 등 단체들은 국회 본관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83만이 넘는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들이 한순간에 예비 범법자로 전락했다”라고 호소했다.
그런데 음식점 및 숙박업 등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빈도는 낮다.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2022년 산업재해 현황분석’ 자료에 따르면, 5~49명 사업장에서 발생한 업무상 사고사망자는 총 800명인데 이 중 도소매·음식·숙박업 종사자는 44명으로 전체의 5.5%였다. 노동자 1만명당 산재 사망자 수를 뜻하는 ‘사망사고 만인율’을 비교해도 해당 업종은 사고사망 확률이 낮다. 모든 사업장의 평균 사망사고 만인율은 1.10명인데, 도소매·음식·숙박업은 0.33명이다. 사고사망자가 많이 발생하는 제조업은 1.27명, 건설업은 2.16명이다.
③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는 무조건 범죄자가 된다?
아니다. 중대산업재해 발생과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 사이의 인과관계가 법적으로 명확히 규명된 경우에만 사업주가 처벌을 받는다.
심지어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 수준이 높다고 보기도 어렵다. 50명 이상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2022년 1월 이후의 통계를 살펴보자. 2022년 1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법 위반 사건은 총 510건 발생했다. 이 중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은 14건이다. 그 가운데 실형(징역 1년에 벌금 1억원)을 받은 이는 지난해 12월 대법원 판결이 난 한국제강 경영책임자 한 명뿐이다.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된 양형 요인은 ‘산업재해 이력’이었다. 이곳은 과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실이 적발됐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벌금형 처벌이 여러 차례 내려졌을 뿐만 아니라 2021년에 근로자 사망사고가 발생해 이미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그러던 차에 2022년 또다시 근로자가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한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을 통해 “안전보건 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를 취할 필요성이 다른 사업장에 비해 긴절(緊切)하였던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짚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김용균씨 사망사고에서 유족을 지원한 박다혜 변호사(법률사무소 고른)는 산안법으로는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해도 대부분 벌금형과 집행유예 같은 경미한 처벌만 내려진 탓에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진 것이라며 애초의 취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처벌’을 하려는 법이 아니라 안전보건을 지키게 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수단이다. 처벌받을 게 두려워서 해당 법의 시행을 막아야 한다면,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야 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④ 사업주가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갖춰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4조를 보면 관련 실행 방안이 상세히 나와 있다. 이 가운데 중대산업재해 사건에서 위반 여부가 가장 많은 조항은 △제3호(유해·위험 요인 확인 및 개선 절차 마련)이고, 그다음이 △제5호(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의 업무수행 평가)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중대재해 사전 예방률을 높일 수 있는 ‘위험성 평가’라도 꼭 실시할 것을 조언한다. 김동욱 변호사(법무법인 세종 중대재해대응센터장)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통해 고용노동부가 사업장에 요구하는 것은 ‘돈을 들여 안전관리 조직을 만들고, 문서를 작성해, 책임자가 직접 보고받으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 가장 대표적인 안전 관련 문서가 ‘위험성 평가 보고서’라는 것이다.
산안법이 규정하고 있는 ‘위험성 평가’란 사업주와 노동자가 함께 사업장 내 유해·위험 요인을 파악하고 개선책을 마련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고용노동부는 노동자로부터 의견을 청취하는 절차를 갖추고, 노동자가 자유롭게 개선책을 제안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할 것을 권장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4조 제3호에 따르면 위험성 평가를 실시한 경우, 유해·위험 요인을 확인하고 개선에 대한 점검을 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한다. 처벌에 겁먹기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사업장 내 안전예방 조치를 강화하는 데 집중하라는 의미다.
‘위험성 평가’ 관련해서는 ‘산업안전 대진단 상담·지원센터’를 방문하거나 대표번호(1544-1133)로 연락하면 안전보건관리체계에 대한 정부 지원책을 안내받을 수 있다.
⑤ 동네 분식집에서도 안전담당 관리자를 채용해야 하나?
지난 1월30일 〈매일경제〉에서 보도한 기사 제목은 “동네 분식집도 중대재해법 공포…‘안전담당 이모’ 둬야 할 판”이었다. 정말 분식집에서도 추가 인건비를 들여 안전 전문가를 외부에서 영입해야 할까? 답은 ‘아니다’이다. 안전 인력 배치 의무는 5~50명 미만 사업장에 해당되지 않는다. 다만 20~50명 미만이 일하는 제조, 임업, 하수·폐수 및 분뇨 처리 등 5개 업종에서는 예외가 적용된다. 이들 업종의 경우 안전보건관리 담당자를 둬야 한다.
정부는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안전보건관리 담당자를 채용하는 것이 기업 경영을 악화시킬 거라 우려하지만 박다혜 변호사는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곳이 있다면 어느 영세 사업장이든 안전관리에 대한 의무를 지우는 방향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법체계는 ‘사업자라면 어떤 일이든 해도 된다’고 허용하지 않는다. 사람이 죽을 수 있는 노동 환경에 대해서까지 법이 보호하진 않는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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