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시내 모습. 서구적인 과거의 풍경이 놀랍다. 작가 미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아프간)의 수도 카불로 재입성했다. 2000년대 초 당시 아프간을 지배했던 탈레반은 9·11 사태의 주범 오사마 빈라덴을 넘겨달라는 미국의 요청을 거부했다. 이로 인한 미국의 침공으로 쫓겨났다가 20년 만에 권력을 되찾은 것이다. 탈레반은 여성 인권 탄압 등 상상을 초월하는 중세로의 반동 정치를 통해 아프간 시민은 물론 전 세계를 경악시킨 바 있다. 이번엔 민간인 학살은 물론 교전도 없이 무혈입성했지만 카불은 공황에 빠졌다.

사진을 보면 직관적으로 과거의 것인지 현재 또는 미래(예컨대 SF 영화의 스틸컷)의 것인지 알 수 있다. 역사가 낡은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 ‘진보’한다는 생각(선형적 역사관)이 우리 머릿속에 박혀 있기 때문이다. 이와 어긋나는 장면을 볼 때 우리는 어리둥절해하거나 호기심을 느끼게 된다.

1970년대 카불 시내에서 찍힌 미니스커트 입은 젊은 여성들의 사진이 최근 화제다. 이 사진이 신기해 보이는 것은 선형적 역사관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최근 나오는 아프간 여성들의 사진 대다수는 부르카를 뒤집어쓴 모습이다. 이보다 훨씬 진보적인 사회가 오히려 과거에 존재했던 것이다. 1970년대 카불에서 나온 인쇄물에 담긴 이 사진은 과연 왜 찍혔고 또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아프간은 20세기 초의 이란처럼 서구지향적인 왕국이었다. 1920년대에 여성참정권, 1960년대엔 헌법으로 양성평등권이 보장되었다. 1973년 공화국이 된 뒤부터 1990년 전후의 소련군 철수에 이르는 대부분의 기간, 아프간은 사회주의를 표방한 나라였기 때문에 이슬람 율법에 따른 여성권 침해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원래 주어진 것’ 아니라 쟁취한 산물

아프간 정부는 자국 여성들의 자유로운 삶을 사진으로 찍어 해외 선전물로 사용하기도 했다. 한때는 의회 의원 가운데 여성 비율이 아시아에서 중상위권이고 교사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었을 정도로 이슬람 세계에선 여권이 대단히 존중되는 편이었다. 이처럼 여성 인권이 그런대로 존중되던 사회를 일거에 중세시대로 돌린 탈레반, 무자헤딘 등 이슬람 무장세력을 지원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권국가 미국이었다.

2017년 허버트 맥매스터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카불의 미니스커트 여성 사진을 제시하고는 ‘과거엔 아프간에 서구식 규범이 적용되었으며, 그렇게 되돌릴 수 있다’라며 아프간에 대한 적극적 개입을 설득했다고 한다. 얼마나 ‘웃픈’ 이야기인가? 하지만 트럼프는 아프간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로 탈레반과 합의했다.

1970년대 카불 거리의 사진을 보면, 인권이란 ‘원래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매 시기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며 투쟁으로 쟁취되는 역사적 산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탈레반이 재집권한 아프간에서 또 어떤 인권의 풍경이 사진에 담길지 궁금하다. 나는 좀 더 진일보한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기자명 이상엽 (사진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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