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9일 아프간 민간인을 가득 태운 미군 수송기가 카불 공항을 떠났다. ⓒ미군 중부사령부 제공

카타르 남동쪽 사막에 미군의 알우데이드 공군기지가 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아프간) 전쟁, 2003년 이라크 전쟁 때 B52 전투폭격기와 호넷 전투기가 날아올랐던 이 기지가 요즘 전쟁 때보다 더 어수선하다. 아프간이 다시 탈레반에 장악되고 난 뒤, 카불 공항을 떠난 비행기들이 미군은 물론이고 그들과 함께 탈출한 외국인들과 아프간인들을 이곳에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중동 최대의 미군기지 알우데이드와 도하 주변의 또 다른 미군기지인 캠프 알사일리야는 갑자기 아프간 난민들의 중간 기착지가 돼버렸다.

이 두 미군기지에 머물고 있는 아프간인은 약 8500명. 환경은 열악하고, 물과 위생설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카타르 측은 시설이 포화상태라고 미국에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알우데이드는 미국의 ‘인도적 책임’을 따지는 시험대가 되었다.

14세기 북아프리카의 여행자 이븐 바투타는 아프간 일대를 가리켜 “산세는 험하고 사람들은 웅강(雄强)하다”라고 적었다. 아프간을 가리켜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제국의 무덤’이라는 말을 종종 써왔다. 영국과 러시아가 19세기에 이 지역을 놓고 패권 다툼을 벌였으나 승자는 없었다. 1979년 아프간을 침공한 소련은 만신창이가 되어 10년 만에 발을 뺐다.

역사는 배우려 하지 않는 자에겐 교훈을 주지 않는다. 2001년 9·11 테러 한 달 뒤, 테러조직 알카에다 지도부를 숨겨주고 있다는 이유로 미국 부시 행정부는 아프간 탈레반 정권을 쫓아냈다. 당시만 해도 그 전쟁이 20년을 끌 줄은, 탈레반이 부활해 카불로 돌아올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바이든 정부가 올해 8월 말까지 미군을 완전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한 뒤 넉 달 만에 탈레반은 대공세를 시작했다. 34개 주의 주도 가운데 처음으로 남서부 님로즈의 주도 자란지를 함락한 것이 8월6일이었다. 수도 카불에 입성한 것은 15일, 딱 열흘이 걸렸다.

아프간에서는 3년에 걸친 미군 점령통치가 끝나고 2004년 12월 새 헌법에 따라 민선 정부가 출범했다. 많은 아프간인들이 탈레반 정권 시절에 비해 더 개방적이고 더 현대적인 삶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부는 전국을 장악하지 못했고 내분과 부패가 심했다. 동남부에서는 탈레반이 무장투쟁을 계속했고 전근대적인 부족주의와 이슬람 극단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미국은 아프간에 평화도 번영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미국 유학파 출신인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탈레반이 진격해오자 외국으로 도망쳤다. 미군의 지원에 의존하던 정부군은 반격을 포기했고, 미군이 내준 무기들은 고스란히 탈레반 손으로 넘어갔다.

미국의 이별 선물, ‘새롭게 개선된 탈레반’

탈레반은 1994년 남부 파슈툰족 출신 물라 무함마드 오마르가 결성한 무장조직이다. 소련군이 물러나고 군벌들이 횡포를 부릴 적에 탈레반은 이슬람 규율로 무장하고 내전에서 승리해 1996년 카불에 정권을 세웠다. 2001년 미군의 공격에 탈레반은 별다른 반격도 못해보고 카불을 내줬으나, 미군이 ‘아프간군 훈련’으로 방향을 틀자 2015년부터 다시 세력을 불리기 시작했다. 미국은 전쟁 비용과 아프간 재건 비용으로 2조2610억 달러(약 2645조원)를 쏟아붓고도 끝내 탈레반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현재 탈레반 전투원은 8만5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 이란 전문가 하미드 다바시 교수는 최근 알자지라 방송 논평에서 “미국은 아프간에 ‘새롭게 개선된 탈레반’을 이별 선물로 남겼다”라고 적었다.

되돌아온 탈레반은 분명 20년 전과는 다르다. 알자지라 방송은 탈레반이 최근 소셜미디어에 올린 특수부대의 모습에서 그들의 ‘진화’를 포착했다. ‘바드리 313’이라는 특수부대 전투원들은 통일된 군복에 미국제 M4 라이플을 들었고 야간투시용 고글까지 갖추고 있다. 더 이상 전통 복장에 터번을 쓰고 구식 러시아산 자동소총 칼라슈니코프를 든 모습이 아니다.

다바시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이제 탈레반 지도자들은 “살아남기 위해선 공포가 아니라 통치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자신들의 정권이 국제적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카불 점령 뒤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탈레반은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을 거론했고, 국제사회의 원조가 필요하다는 걸 인정했다. 며칠 뒤에는 외국인이나 기업, 투자자들이 아프간 내 은행 자산을 안전하게 보호받을 것이라 약속했다. 그럼에도 그들이 진짜로 달라졌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적다. 탈레반 고위 사령관 중 한 명인 와히둘라 하시미는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민주주의는 우리나라에는 기반이 없는 체제”라면서 “아프간은 민주주의가 아닌 이슬람법에 의해 인도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8월25일 돈을 찾으려는 아프간 시민이 ‘카불 은행’ 앞에 줄지어 서 있다.ⓒAP Photo

탈레반이 근간으로 삼는 것은 샤리아(이슬람 성법) 통치다. 그러나 탈레반이 만들겠다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에미리트’가 샤리아를 어떻게 적용할지 아직은 불확실하다. 탈레반의 변화를 주목하는 이들도 없지는 않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이슬람연구센터의 H.A. 헬리어 연구원은 알자지라 방송에서 “탈레반은 1990년대와는 다른 새로운 아프간을 마주해야 하며, 여성과 그 밖의 집단들에 이미 다른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 아프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톨로 방송의 여성 저널리스트들은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한 뒤에도 일을 계속하고 있으며, 탈레반 지도부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그들은 변함없이 이슬람 수니 극단주의자라는 점이다. 탈레반 대변인은 여성들의 교육과 취업을 허용할지를 ‘이슬람법 안에서’ 검토하겠다고 했다. 인간의 권리를 종교 교리로 결정하겠다는 것이며, 그 결정권은 남성 극단주의자들이 쥐고 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8월24일 인권이사회 보고에서 “아프간에서 민간인 즉결 처형과 여성 탄압이 자행되고 있다”라면서 그들이 여성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가 ‘레드라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8월24일 주요 7개국(G7) 화상 정상회의에서 정상들은 탈레반 정권이 ‘인정해줄 수 있는 조건’을 논했다. 우선 20년간 자신들과 협력한 아프간인들의 안전을 보장해줄 것을 요구했고, 향후 탈레반을 인정할 것인지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판단하겠다”라고 밝혔다. 공동성명에서 정상들은 “우리는 탈레반이 테러를 막고 여성과 소수민족의 인권을 보호하고 정치 안정을 추구하는 데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탈레반에 경고를 보내긴 했지만 탈레반의 집권이라는 현실은 부정하지 못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의회 연설에서 “탈레반이라는 아프간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의 위기와 어두운 미래

눈길을 끄는 것은 중국의 움직임이다. 지난 7월 탈레반 대표단이 중국을 찾아가 왕이 외교부장과 면담한 데 이어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한 뒤에는 카불 주재 중국 대사가 탈레반 측과 만났다. 중국은 2015년부터 탈레반과의 접촉을 늘려왔다. 섣불리 아프간에 개입하려 하지는 않겠지만, 중국이 인도양으로 진출하려면 내륙의 아프간이 안정돼야 한다.

탈레반에게는 경제적 도움을 줄 세력이 필요하다. 최근 서방 언론들은 중국이 아프간의 광물자원에 눈독을 들여왔음을 부각하는 보도를 잇달아 내보냈다. 과거 중국 기업들이 아프간 측과 체결한 구리광산이나 유전 채굴 계약은 이후 개발이 진행되지 않아 실효가 없었다. BBC는 “중국 혹은 어느 나라로부터든 투자를 받으려면 탈레반은 이전 정부보다는 유능하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바꿔 말해 탈레반이 이전 정부보다 더 확고하게 권력을 틀어쥐고 치안을 유지한다면 중국의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이 이미 95억 달러(약 11조원)에 이르는 아프간 중앙은행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한 터라 탈레반의 중국 의존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탈레반의 잠재적 자산 중에 손꼽히는 것은 휴대전화 등에 들어가는 광물인 리튬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아프간의 리튬 매장량이 ‘1조 달러(약 1170조원)어치’라고 보도했다.

이란은 이슬람 시아파 종주국으로서 수니파 극단 조직 탈레반에 적대적이었다. 그러나 미군 철수가 역내 패권을 노리는 이란에 호재인 것은 분명하다. 카불 함락 뒤 기름값이 치솟자 탈레반은 이란에 손을 벌렸고, 탈레반의 공세가 시작된 8월6일 석유 수출을 중단했던 이란은 8월25일부터 기름을 보냈다. 탈레반은 관세를 이전 정부 때보다 70% 줄여준다며 손짓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은행의 3월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간 경제 사정은 아주 심각하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198억 달러의 43%, 공공지출의 75%가 외국에서 들여온 원조금이었다. 2003~2012년 10년 동안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9.4%에 이르렀지만 이것도 원조금 덕분이었으며 외부 지원이 줄어든 2010년대 후반에는 성장률이 2.5%대로 떨어졌다. 탈레반 대공세로 외국 원조기구들이 문을 닫자 아프간 사람들의 고난이 시작됐다. 유니세프는 아프간 아이들 1000만명에게 시급히 도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데이비드 비즐리 사무총장은 아프간 인구 4000만명의 3분의 1에 이르는 1400만명이 먹을 것조차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아프간 원조를 중단했다.

당장의 위기도 문제이지만,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하는 것은 20년 동안 쌓아온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게 됐다는 사실이다. 힘겹게 치른 선거의 경험, 여성들에게도 점차 개방해왔던 학교 교육, 자유로운 언론과 치안 노력 같은 것들 말이다.

2019년 아프간의 여성 취업률은 22%에 이르렀다. 탈레반 정권 시절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1979년 18%였던 여성의 문자해독률은 2011년 31%에서 2018년 43%로 올라갔다. 그런데 모든 게 다시 뒤집혔다. 아프간 유일의 여성 기숙학교인 ‘아프가니스탄 리더십스쿨(SOLA)’은 학생 수십 명과 교직원들을 동아프리카 르완다로 피신시켰다. 난민이 된 여학생들이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소녀들뿐 아니라 지식인, 관료, 언론인, 교육자들이 탈출하기 시작했다. 독립언론인 빌랄 사르와리 씨는 알자지라 방송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가장 교육받고 능력 있는 세대를 잃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구정은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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