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3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아프간 협력자 가족들이 기자회견 전 피켓을 나누어주고 있다. ⓒ연합뉴스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 8월23일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고개를 저으며 재차 강조했다.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 주한미군에서도 본국 정부로부터 그런 가능성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 없다고 분명히 발표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8월21일자(현지 시각) 기사에서 ‘미국 정부가 한국을 포함한 해외 미군기지에 아프가니스탄(아프간) 난민 수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한 내용을 두고 사실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같은 날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최종적으로 정리된 것은 미국이 지리적 여건이나 편의성에 따라 중동이나 유럽 지역에 있는 미군기지를 활용한다는 것”이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프간 난민 수용 문제는 국민의 수용 여부를 고려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대단히 복잡하고 신중해야 할 문제다.”

이튿날인 8월2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아프간 난민들에게 국경을 열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과 ‘난민 받지 말아주세요’라는 글이 나란히 올라왔다. 한국도 아프간에 파병을 했던 나라라는 점에서 현재 아프간의 상황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첫 번째 청원에 동의한 국민은 8월26일 기준 1000여 명에 불과했다. 반면 “아프간인들은 여태 타국이 주는 돈으로 먹고 놀고 아무런 노력도, 뭘 해보려는 의지도 없다가 미국이 철수하자마자 본인 나라를 그냥 내팽개쳤다. (…) 종교 문제도 심각하다. 한국인들과 절대 어울려 살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두 번째 청원에 동의한 국민은 2만2000명을 넘어섰다.

아프간 난민을 옹호하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사람들은 비난을 받았다. 8월20일 자신의 SNS에 “경제적·정치적 부담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생명과 인권이 위협당하는 사람들을 눈앞에 두고 먼저 문을 닫아거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라고 적은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사흘 뒤 “의원실에 항의 전화하는 사람들이 보좌진에게 퍼붓는 언어폭력과 인격모독이 도를 넘고 있다”라며 의견을 표현하는 건 좋지만 폭력은 멈춰달라고 다시 글을 올려야 했다.

마치 법을 위반할 것처럼 상정하는 것

8월25일 카불 공항 인근에서 한국의 우방국 병사가 한국행 아프간인을 찾고 있다. ⓒ외교부 제공

8월23일자 〈경향신문〉에 ‘아프간 난민, 한국 오지 마라’는 반어적인 제목의 글을 실어 한국 사회가 난민에게 요구하는 까다로운 기준을 풍자한 오찬호 사회학자도 SNS 등을 통해 비난 메시지를 여러 통 받았다. “난민 입국을 반대할 수는 있다. 다만 토론이라는 건 하면 할수록 서로 성숙해져야 하는데, 유독 난민 문제에 대해서는 토론을 거듭할수록 오히려 유치해진다. ‘그러다 유럽 꼴 난다’고 하는데 유럽이 난민을 받아들인 건 사실이지만, 그들이 사회적 주류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는 주지 않았기 때문에 융화될 수 없었던 거다. 오히려 그걸 반면교사로 삼아 한국 사회는 어떤 자세로 난민을 맞아야 하는가에 토론의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데 결국에는 ‘그렇게 난민들이 좋으면 당신 집에나 데리고 가라’는 말로 끝나버린다.”

지금까지 아프간 난민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국민 수용 여부’의 주된 여론을 따라가고 있다. 8월25일 외교부는 브리핑을 통해 아프간에서 한국 정부 활동에 협력했던 현지인 직원과 그 가족 380여 명을 국내로 이송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교부는 이들이 “난민이 아니라 특별공로자로서 국내에 들어오는 것임”을 특히 강조했다.

난민 인권 문제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이일 변호사(공익법센터 어필)는 “본국에 남아 있으면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한다는 점에서 이들도 본질적으로 똑같은 처지의 난민이다. 난민을 보호하는 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대한민국 정부가 마땅히 져야 하는 의무인데, 이걸 마치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선물을 주듯이 접근해버렸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법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현지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현재 국내에 머무르고 있는 아프간 국적 사람들을 ‘인도적 체류 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합법 체류 중인 362명에게는 “정확한 신원 파악을 위한 실태조사를 거쳐” 체류를 허용하고, 미등록 체류 중인 72명에게는 강제출국을 자제하되 “신원보증인 등 국내 연고자가 없는 경우나 형사 범죄자 등 강력사범”은 보호조치(외국인보호소에 구금)하겠다는 방침이었다. 난민인권네트워크는 즉각 성명을 발표해 법무부의 표현에 유감을 표했다. “중대한 위험에 처한 아프간인들을 일반적으로 묶어 ‘국민의 안전’과 반대되는 존재들로 형상화하는 것, ‘엄정한 조치’를 하지 않으면 마치 법을 위반할 것 같은 존재로 상정하는 것, 난민이 국익과 반대되는 것처럼 반복해 언급하는 것은 또다시 난민들을 한국 사회에서 지워버리고, 동시에 직접적으로 난민 혐오를 조장하는 것밖에 안 된다.”

이슬람 겪어본 군인으로서 댓글들 동의 못해

8월25일 카불 공항에서 아프간 협력자들이 한국 공군 수송기에 오르고 있다. ⓒ외교부 제공

법무부의 발표에 대해 이일 변호사는 ‘인도적 체류 조치’는 법적 지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난민협약)에 따른 ‘난민 인정자’도 아니고, 고문방지협약에 따른 ‘인도적 체류자’도 아니다. 그럴싸하게 들리도록 만들어낸 단어다. 이슈가 있을 때마다 여론의 눈치를 살펴 어떤 권리는 주고 어떤 권리는 뺄지 입맛에 맞게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지위는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 변호사는 이런 조치가 당사자에게는 물론 한국 사회 전체에도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1년마다 체류 허가를 갱신하러 가야 한다면 이곳에서 온 마음을 다해 살아가야겠다는 의지가 생기겠나. 이들을 물리적으로 쫓아내지 않았을 뿐 결국 심리적 난민을 만드는 셈이다.”

2011년 말부터 2012년 말까지 대한민국 아프간재건지원단(오쉬노 부대)을 이끌었던 최완규 전 단장(예비역 준장)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같이 파병 갔던 전우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데 다들 정말 안타까워하고 있다. 요즘 뉴스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온통 이슬람을 악마화하고 있는데, 현지에서 그 문화를 직접 겪어본 사람으로서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 어느 사회나 그렇듯 그 안에는 복잡한 맥락이 있는데 그걸 이해하지 못한 채 밖에서만 바라보면 타자화하기 쉽다.”

최 전 단장은 이번에 입국한 380여 명이 한국 정부에 협력했던 현지인들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한 명이라도 더 데려올 수 있다면 집에 초대해 함께 지내고 싶은 심정이다. 난민도 마찬가지다. 난민이든 공로자든 말장난에 불과하다. 우리 입장에서는 ‘수용’이지만 아프간인들 입장에서는 목숨을 건 ‘대피’다. 인도적인 지원도 국격에 맞게 해야 한다.” 외교부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난민’이든 ‘특별공로자’든 380명 이외 추가로 국내 이송할 계획은 아직 잡혀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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