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러시아 랭이 찍은 미국 대공황기, 떠돌이 농민 여성. 〈라이프〉에 실리면서 ‘공황에 맞서는 위대한 미국의 어머니’로 포장되었다. ⓒ도러시아 랭

〈조선일보〉가 큰 사고를 쳤다. 불법 성매매 기사에 일러스트를 함께 실었는데, 조국 교수 부녀의 모습이 담긴 것이다(그뿐만 아니라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이병헌·변요한의 모습도 담겨 있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이 일러스트가 자사 지면에 서민 교수가 쓴 ‘조민 추적은 스토킹 아니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칼럼에 이미 실렸던 것이라는 점이다. 즉 일러스트를 재활용한 것이다.

이 사건에서 내가 궁금했던 점은 〈조선일보〉의 자사 이미지 라이브러리의 운영 방침이었다. 사건 직후 〈조선일보〉는 일러스트의 재활용을 금지하겠다고 했지만, 그 라이브러리에는 일러스트뿐 아니라 사진도 포함된다. 그렇다면 사진은 여전히 재활용이 가능한 것일까? 비평가 존 탁의 이야기처럼 “사진은 자체로 아무 말도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일까?

사진을 아카이브로 만들어 활용하는 곳은 주로 언론사나 전문 라이브러리 업체들이다. 어떤 의미로 활용되든 상관치 않는 라이브러리 업체 사진과 달리 언론사는 나름의 규정이 있다. 지금처럼 데이터로 제공하기 전에는 8x10인치로 프린트된 사진의 뒷면에 상세한 캡션이 붙어 있었고 이 범주에서 벗어나는 왜곡 사용을 규제했다. 하지만 지난 100년간 이런 규정이 잘 지켜진 예는 없다. 대부분이 사진을 가져다 자기 매체의 구미에 맞게 재가공하고 왜곡해 사용했다.

프랑스 사진가 로베르 두아노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파리의 카페’를 주제로 연작 사진을 만들어 〈르프앵〉이라는 잡지에 팔고 동시에 사진 통신사에도 위탁했다. 통신사는 사진을 판매할 뿐 그 매체가 어떻게 사용할지는 간섭하지 않았다. 곧 이 사진은 반알코올 연맹이 발행하는 신문에는 ‘술주정뱅이의 말로’로, 스캔들 잡지에서는 ‘매춘’으로 왜곡됐다. 사진의 원래 의도와 상관없는 왜곡이 유통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미국 농업안정국(FSA) 소속 사진가 도러시아 랭은 미국의 대공황기 농촌을 돌아다니며 한 떠돌이 농부 가족의 여성을 찍었다. 그녀는 삶의 고통과 땅의 황폐함을 표정에 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진이 〈라이프〉에 실리면서 ‘공황에 맞서는 위대한 미국의 어머니’로 포장됐다. 너무 유명해진 이 사진은 우표로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엄밀해 말해서 사진을 원래 의도와 달리 왜곡해 사용한 것이다.

사진 자르기와 캡션의 왜곡 금지

언론사들의 사진 왜곡과 횡포에 맞서 에이전시 ‘매그넘’을 만들었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이런 사진 활용의 문제점을 깨달았다. 그는 사진의 프린트에 테두리를 만들어 자의적인 크롭(사진 자르기)과 캡션의 왜곡을 금지했다. 이는 사진 저작권 중에서 인격권에 해당하는 것으로 창작물을 구매해 사용하는 이가 작가의 의도에 반해 왜곡 사용할 수 없다는 원칙을 남겼다.

사진의 외양만으로는 반언어(半言語)의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그 모호함이 문제를 일으킬 때는 항상 생산한 자나 사용한 자의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긴장감과 희열을 안겨주는 예술의 영역이 아닌 기록과 저널리즘에서는 더욱 그렇다.

기자명 이상엽 (사진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