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디자인 이정현 기자

MBC 〈나 혼자 산다〉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다. 출연자의 일상과 그에 대한 다른 출연진의 반응을 보여준다. 출연자들의 특이한 물건이나 기이한 행동을 웃음거리로 삼는 장면이 많다. 지난해 추석특집 방송에 등장한 기벽은 ‘종이신문 구독’이었다. 출연자인 배우 김광규씨가 현관문을 열고 신문을 집어 들자, 다른 이들이 “종이신문을 구독하세요?”라며 깜짝 놀라는 장면이 나왔다. 뉴스는 당연히 인터넷으로 본다는 것이다. 김씨는 “휴대전화로 보니까 눈이 너무 아파서…(종이신문을 본다)”라고 ‘해명’했다. 방송 후 몇몇 신문사가 ‘종이신문의 강점’을 설파하는 칼럼을 내보냈다.

언젠가부터 포털사이트를 통한 뉴스 소비가 대세가 되었다. 종이에 인쇄된 문자로 뉴스를 읽는 일은 대중적이지 않다. 특이한 취미에 가깝다. 이 당연한 관행이 개별 언론사뿐만 아니라 공론장 형성에도 해롭다는 논의가 일고 있다. 불씨를 댕긴 것은 정치권이다. 기존 포털 중심의 뉴스 시스템을 개편하고 완전히 새로운 후원 정책을 접목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국만큼 포털이 뉴스 환경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나라는 사실상 없다. 지난 2월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온라인 설문에 따르면, 지난 일주일간 온라인 뉴스를 이용한 주된 경로로 ‘검색엔진 및 뉴스 수집 사이트’라고 답한 응답자는 72%로, 46개국 중 1위다. 46개국 평균은 33%로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 한국인들이 온라인 뉴스를 이용하는 플랫폼 가운데 단연 두드러지는 것은 모바일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0 언론 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지난 일주일간 스마트폰·태블릿 PC로 뉴스를 봤다’고 답한 응답자는 80%였다. 20대부터 40대 응답자 가운데서는 이 비율이 90% 이상이다.

반면 종이신문의 쇠락은 참담한 수준이다. 2020 언론 수용자 조사를 보면, ‘지난 일주일간 TV로 뉴스를 본 적이 있다’고 한 응답자는 85%다. 10년 전보다 10%포인트 떨어졌다. 반면 일주일간 종이신문으로 뉴스를 본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10.2%이다. 1993년 조사에서 87.8%에 달했던 이 응답은 지난 10년간 매해 4~5%포인트씩 줄어들고 있다. 이 지표만 놓고 ‘한국인은 1990년대에 비해 신문 기사를 읽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다. 종이신문, 컴퓨터, 스마트폰, TV 등 어떤 경로로든 신문 기사를 읽었다고 답한 응답자는 90%에 달한다. 종이로 보지 않을 뿐, 절대다수는 신문 기사를 접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이 수치를 앞세워 ‘읽는 방식만 바뀌었을 뿐 신문 기사의 인기는 여전히 높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언론재단 연구자들은 신문 기사 결합 열독률 절반 가까이는 TV를 통해 이뤄지며, 이는 사실상 “우연적 접촉에 가깝다”라고 적었다. 눈앞에 보이니 읽을 뿐, 신문 기사를 능동적으로 찾아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 조사에서 종이신문을 정기구독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단 6%였다.

신문 구독 방식의 변화는 매체 환경에 영향을 줬다. 매체를 개별적으로 구독할 때에 비해 포털을 통해 본 기사는 매체 및 기자 이름을 잘 확인하지 않는다. 그냥 ‘포털(예컨대 네이버)에서 봤다’고 기억한다. 언론사 처지에선 당장의 조회수를 위해 매체 신뢰를 깎아먹어도 그 손실이 바로 와닿지는 않는다. 다수의 인터넷 매체들은 노골적으로 광고에 가까운 기사나 선정적 기사를 싣는다.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매체들도 온라인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어뷰징(비슷한 기사를 조금씩 고쳐서 수십 번씩 포털로 송고하는 행위)을 일삼고 있다. 자극적인 제목과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담은 기사가 인터넷에서는 인기를 끈다.

이에 따라 기이한 언론시장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취재에 공들이는 매체는 경영난으로 문을 닫고, 어뷰징 전문 매체가 그 자리를 채웠다. 언론의 공익적 구실에 의문을 품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국인의 뉴스 신뢰도는 세계적으로 최하위권이다.

포털사이트의 기사 배열을 규제하는 법안을 내놓은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 ⓒ시사IN 이명익

언론인 출신인 김의겸 의원(열린민주당)은 현재와 같은 포털 중심 환경이 언론 전반의 질적 저하를 불러와 신뢰를 떨어뜨리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포털에 실린 기사는 어느 매체가 썼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책임하에 생산하지 않는다. 공유지에 쓰레기를 버리는 셈이다. 각 매체 고유의 정체성과 지향점은 사라지고 클릭 수에만 매몰되었다.” 포털 개혁이 언론개혁의 핵심이라고 보는 김 의원은 여러 방안을 구상해왔다. 지난 4월 정부가 돈을 들여 ‘공영 포털’을 만들자고 제안한 데 이어, 6월에는 포털사이트의 기사 배열을 규제하는 법안을 내놓았다. 인공지능(AI)이 이용자에게 맞는 기사를 추천하는 기능을 금하자는 게 골자다. 대신 이용자 스스로 ‘구독’한 언론사의 뉴스만 포털이 매개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민주당 미디어혁신특별위원회 역시 포털의 뉴스 편집권 폐지를 포털 개혁의 주된 방향으로 설정했다.

일각에서는 정치권의 의도를 의심한다. 대선을 앞두고 언론에 압박을 가하려 한다는 것이다. 사실 포털 뉴스를 향한 불만은 이전 정권에서도 누차 터져 나온 바 있다. 2007년 제17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캠프의 뉴미디어 팀장이었던 진성호 전 의원은 “네이버는 평정됐고 다음은 여전히 폭탄”이라고 말했다. 2015년 새누리당의 여의도연구원은 “네이버와 다음카카오 모두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 관련 콘텐츠에 부정적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라고 주장했다. 정보통신 관련 시민단체인 사단법인 오픈넷의 손지원 변호사는 “애초 정부 권력을 비판하는 게 언론 역할이고, 그런 기사가 많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포털 뉴스를 제재하는 것은 영업의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이용자의 권리도 제약한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여당 일각에서 제기하는 AI의 기사 추천 알고리즘 공개 요구도 부정적으로 본다. “알고리즘이 공개되면 그다음은? 추천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한지 검증하는 주체가 국가인데, 과도한 압력이다.”

그런데 김의겸 의원의 생각은 단순히 ‘네이버는 보수적’이라는 비판이나, ‘알고리즘이 수상하다’는 음모론과는 궤가 좀 다르다. 그는 포털사이트가 특정 정치색을 지니고 능동적으로 언론 환경을 조작한다고 보지 않는다. 그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포털 뉴스의 목적은 클릭을 최대한 유발하고 사용자가 웹사이트에 오랜 시간 머무르도록 만드는 것이다. 둘째, 각 언론사는 포털에서 자사 기사를 최대한 눈에 띄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선정적 기사가 쉽게 이 목적을 달성한다. 셋째, 이 알고리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분석하고 적응하는 데 자본과 인력을 투입할 수 있는 곳은 대형·보수 매체다.’

국민에게 후원 쿠폰 나눠주는 바우처법

포털이 특별히 보수적이거나 선정적이라서가 아니라, 보수적이거나 선정적인 매체가 포털이 추구하는 상업성에 알맞다는 것이다. 이에 김 의원은 한 가지 논리를 덧붙였다. “기사 배열은 언론 고유의 편집권이다. 포털은 언론이 아니다. 따라서 포털이 기사를 배열하는 것은 부당하다.”

드러내놓고 말하는 이는 드물지만, 포털의 배열 기능을 축소해야 한다는 개혁론의 밑바탕에는 ‘매체가 너무 많다’는 문제의식도 깔려 있다. 어뷰징과 광고,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물 인용 등 질 낮은 기사만 양산하는 매체들이 포털에 기대어 수익을 낸다는 것이다. 뉴스 공급을 언론사별 구독 시스템으로 강제하거나 포털의 뉴스 서비스를 금지하면 질 낮은 기사를 양산하는 매체들이 도태되고 언론 신뢰도 회복되리라는 게 이들의 기대다.

7월8일 서울 명동거리의 한 신문 가판대 모습. 주인은 신문이 팔리지 않는다고 말했다.ⓒ시사IN 조남진

하지만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이 기획에 맹점이 있다고 말했다. 언론사가 포털에 ‘종속’됐다는 시각이 옳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매체별 디지털 역량 차이가 몹시 크다. 대부분 언론사는 독자적으로 구축해야 할 디지털 환경을 플랫폼(포털사이트, SNS)을 통해 해소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역량이 가장 강한 언론사는 대형 보수언론이다. 지금도 네이버 입점 여부가 사세를 결정하는 지역 언론사로서는 대응하기 어렵다.”

그래서 새롭게 떠오른 안이 있다. 포털의 자의적 배열은 막고, 기사의 질만으로 경쟁하도록 하되, 대형 매체가 시장을 독식하지 못하게 만들자는 방안이다. 지난 3월 김승원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미디어 바우처’법이다.

미디어 바우처는 정부가 18세 이상 국민 모두에게 ‘쿠폰’을 나눠주는 것이다. 이 쿠폰은 언론을 후원하는 데만 쓸 수 있다. 온라인에서 읽은 기사가 마음에 들면 본문 옆 ‘후원’ 버튼을 누르는 방식이다. 사용하지 않은 후원금은 정부가 도로 회수한다. 1인당 연간 2만~3만원. 총 1조원을 지급한다. 일견 공상으로 여길 법한 정책이지만 김 의원은 실현 가능하다고 말한다. 김 의원은 민주당 미디어혁신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이기도 하다.

정부는 매해 언론에 정책·기관 광고를 집행하는데, 이 광고 단가를 매길 때 매체 유료 부수를 참고한다. 유료 부수와 영향력이 비례한다고 보고, 부수를 많이 발행하는 매체에 더 높은 광고료를 집행할 수 있다. 유력 일간지는 매해 평균 50억~100억원씩 광고비를 받았다. 2017년 5월부터 2020년 8월까지 〈동아일보〉에 305억원, 〈조선일보〉에 265억원, 〈중앙일보〉에 174억원이 정부 광고비로 집행됐다.

광고 집행에 ‘새 기준’이 필요하다고 여기게 만든 사건이 지난해 11월 일어났다. 인쇄매체 유료 부수를 조사하는 곳은 한국ABC협회(ABC협회)이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ABC협회 내부고발자가 ‘협회가 부수 부풀리기를 해왔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유료 부수가 많은 매체가 더 높은 정부 광고료를 받는 상황에서 일부 대형 신문사들이 세금으로 부당한 이득을 얻은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ABC협회와 관련된 조사를 추진했으나 협회는 추가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황희 문체부 장관은 7월8일 “(ABC협회는) 지난 3개월 동안 협조할 의지가 없었다”라고 발표했다. 문체부는 ABC협회 자료를 정책에 활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 조사 대신 국민이 직접 선호하는 매체를 ‘투표’하도록 해, 합당한 광고 단가에 따라 분배한다는 게 미디어 바우처법의 기본 목적이다.

김 의원이 이 제도가 현실적이라고 보는 까닭은 추가 예산이 거의 들지 않기 때문이다. 후원금으로 지급할 주된 재원은 지금도 지출되는 정부의 언론 광고비다. 매해 1조원(인쇄매체는 약 2500억원) 안팎을 집행하고 있다. 김승원 의원이 구상한 미디어 바우처 제도에는 포털 시스템과 연계해, 독자들이 어떤 기사를 후원했는지 정확히 체크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술을 구현하는 데 20억~30억원 정도 재원이 추가로 필요할 뿐이다. “정부가 지원하는 신문 우송비가 이 정도(20억~30억원) 된다. 적잖은 신문이 나오자마자 곧바로 계란판 만드는 공장으로 가는데, 우송비를 여기 쓰자”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극단적인 진영 논리가 작용할 것을 우려해 미디어 바우처 제도에 반대한다.ⓒ김흥구

김승원 의원실 보좌진은 지난 3월 제보를 받고 새로 나온 신문이 트럭에 가득 쌓인 채 폐지로 팔리는 현장을 직접 촬영하기도 했다.

매체가 현재 지닌 영향력을 평가하는 것만이 이 정책의 목적은 아니다. 포털 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처럼, 미디어 바우처법의 장기적 목표도 “언론 생태계 변화”다.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일부 매체가 주도하는 여론 지형을 바우처를 통해 바꾼다는 것이다. 구체적 방안은 후원 상한제다. 한 사람이 매체 하나에 후원할 수 있는 액수, 한 매체가 받을 수 있는 바우처 총액에 한계를 둔다. 이 제도가 도입된다면 〈조선일보〉에 가는 정부 광고비는 예년의 절반 이하 수준으로 줄어든다. 일찌감치 후원 상한액을 채운 큰 언론 대신 내실 있는 기사를 쓰는 작은 언론의 기사에도 주목하게 된다. ‘가짜뉴스’나 ‘낚시성 기사’ 등을 몰아내기 위한 ‘마이너스 바우처’ 조항도 있다. 기사에 대한 불호를 표현하는 지표로, 지급 총액에서 마이너스 바우처 액수만큼 제외된다. 국민의 선별을 거치는 과정에서 군소·지역 매체가 살아남고, 실력 있는 매체가 대우받는 언론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다고 김 의원은 주장한다.

아직 미디어 바우처를 시행 중인 국가는 없다. 하지만 ‘언론에 기업광고 외의 수익원이 필요하다’는 논의 자체는 전 세계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20세기 이래 대다수 신문사는 수익의 70~80%를 광고에 의존해왔다. 이 구조가 언론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해친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나왔다. 주된 광고주인 대기업의 이해관계를 거스르기 어렵다는 것이다. 독자 구독료만으로 유지하기 어려웠던 대다수 언론사들은 광고주의 이익과 독자의 신뢰 사이에서 줄타기를 감행해왔다.

언론계에서 ‘광고 외 수익원’ 논의가 발등의 불이 된 것은, 독자 신뢰가 무너져서가 아니라 광고가 끊기면서였다.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인터넷 플랫폼에서 뉴스를 보는 추세는 세계적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0년대 말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개별 언론사가 아닌 디지털 플랫폼 기업이 단숨에 언론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 신문 한 부를 펼쳐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사람은 줄고, 웹사이트 메인 화면이나 ‘타임라인’에 뜨는 기사만 훑는 독자가 늘었다. 광고주에게 이 흐름은 언론보다 플랫폼 사이트가 광고 매체로서 더 큰 가치를 갖는다는 의미였다. 언론매체의 몫이었던 광고가 자연히 플랫폼 기업으로 몰렸다. 2019년 구글의 광고 수입은 약 1350억 달러(약 153조원)로, 10년 전의 6배에 달한다. 같은 해 페이스북 광고 수입(약 700억 달러, 약 79조원)은 10년 전보다 90배 늘었다.

광고란으로서 매력을 잃자 탄탄한 언론마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독자가 많은 영어권 언론도 겪은 일이다. 2010년대 미국에서는 언론사의 매각과 통폐합이 줄을 이었고 수많은 언론인이 명예퇴직했다. 163년간 이어온 미디어그룹 매클래치(McClatch)도 지난해 헤지펀드에 매각됐다. 10여 년간 광고 수입이 줄어든 데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까지 겹치면서다. 광고를 유치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기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 기자들도 ‘수입 창출’ 부담을 졌다. 아서 슐츠버거 회장의 입에서 “뉴스룸은 (광고) 영업부서와 협력해야 한다”라는 말이 나왔다.

‘왜 언론을 지원해야 하는가?’

언론은 어디서 수익을 내야 할까? 디지털 유료 구독은 성공 사례가 거의 없다. 디지털 유료 구독 유치에 가장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뉴욕타임스〉마저 줄어든 종이신문 독자를 일부 만회했을 뿐, 10년간 4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든 광고 수익을 보전하지 못했다. 공익 재단이나 재력가가 내미는 선의의 후원에 기대는 매체도 있다. 하지만 편집국 보도에 영향이 가는 경우가 없지 않다. 사실 포털사이트에서 거의 모든 기사를 무료로 볼 수 있는 한국 언론은 두 모델 모두 여의치 않다. 최후의 수단으로 거론되는 것이 미디어 바우처를 비롯한 정부의 재정지원이다.

2019년 시카고 대학의 조지 스티글러 경제국가연구소는 일군의 언론·경영학자들을 모아 언론 위기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했다. 연구자 7명은 ‘디지털 플랫폼 시대의 저널리즘 수호’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우리는 미디어 바우처가 언론에 자금을 조달하는 최고의 계획이라고 본다”라고 적었다.

지난 3월 더불어민주당 미디어·언론 상생 TF 소속 의원들이 국회 소통관에서 신문 부수 조작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은 지금도 대부분 국가가 다양한 방법으로 언론에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지적한다. 지급 방법만 미디어 바우처로 바꾸자는 것이다. 정부가 언론을 먹여 살릴 때 가장 큰 문제는 독립성이다. 정부 눈치를 보느라 비판 기사를 쓸 수 없는 매체가 나올 수 있다. 자금을 지원할 매체와 그 액수를 국민이 판단한다면 이 치명적 단점이 사라진다고 학자들은 적었다. “(국가는) 기사 내용이나 논조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매체를 똑같이 취급할 것이다. 다시 말해, 정부 재량권이 적용되지 않는 공적자금이 늘어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로 대중적 인기를 끈 매체가 정부 지원금을 타가는 상황이 자연스러워진다. 연구 책임자인 가이 롤닉 시카고 대학 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미디어 바우처 정책의 핵심은 (언론 관련 공적자금의) 분배 과정에서 정치를 배제하고 최종 수요자(시청자·독자)가 결정하는 것이다. 지원금의 용처는 일반 대중이 통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2019년 경기도의회 발주로 비슷한 연구를 수행한 이들이 국내에 있다. 한신대학교 산학협력단(강남훈, 김진오, 이준형)이 경기도의회의 발주를 받아 ‘경기도 언론 공공성 확대를 위한 언론 기본소득 실현 방안’ 보고서를 펴냈다. ‘언론주권자 배당’이라는 용어로 미디어 바우처 제도를 연구한 보고서다. 이들은 ‘왜 언론을 지원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언론의 공익적 역할에 대해 기본소득(내지 참여소득)의 개념을 응용해 답한다. 이들은 대중의 참정권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언론이 ‘공동선’에 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본다. 소유주나 광고주에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언론이 국민이 아니라 소수의 이익을 대변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언론이 주권자의 뜻에 따르는 보도를 할수록 안정적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면 ‘보통 사람들’의 참정권 실현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정작 언론계에는 부정적 기류가 흐른다. 지난 6월14일 한국신문협회(회장 홍준호 〈조선일보〉 발행인)는 문체부에 미디어 바우처법 제정안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다. “일반적으로 바우처는 실질적 금액을 지원하지만 이번 제정안은 언론사에도 국민에게도 직접적 지원이 없다”라고 적었다. 별도 예산을 만들어 언론사를 지원하는 게 아니라 이미 대형 매체를 중심으로 제공되고 있는 정부 광고비의 배분 기준을 새로 만드는 것에 대한 반발이다. 이미 정부 광고의 상당 부분을 수주받고 있는 유력 일간지로서는 미디어 바우처 때문에 광고 수입이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후원 상한 액수를 정해둔 것에 대해서도 “언론사의 실제 영향력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 자유경쟁시장 체제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방식이다”라고 한국신문협회는 비판했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도 반대 의견을 보였다. 그는 특히 마이너스 바우처 조항을 지적했다. “마이너스 바우처는 사실상 언론사에 대한 ‘징벌’이다. 각 언론에 대한 극단적 진영 논리가 작용할 것이다. ‘진보 매체’와 ‘보수 매체’의 움직이지 않는 지지자들이 있다. 진영에 속하지 않고 공론의 장에서 열심히 취재하고 보도하는 언론사의 설 자리가 오히려 사라질 수 있다. 이 구조가 정말 좋은 저널리즘을 키울 것인지 확신이 없다.”

‘가짜뉴스를 처벌한다’는 목적에도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가짜뉴스라는 표현 자체가 정치적 수사라고 본다. 여론재판을 통해 허위 조작 정보라고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 지금 당장 마음에 안 드는 주장이라도 징벌 대신 논박으로 ‘탈락’시키는 게 아름다운 방법이다.” 윤 위원장은 굳이 미디어 바우처를 실험한다면, 연간 1조원 규모의 정부 광고와 미디어 바우처를 연계하는 대신 지자체를 통한 소규모 시범 사업을 수행해보자고 제안했다.

윤 위원장의 기우로만 보기 어렵다. 세계적으로 언론판은 극단으로 쏠리는 추세다. 미국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맷 타이비는 〈헤이트:우리는 증오를 팝니다〉에서 양극단으로 치닫는 미국 언론 지형을 다뤘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기점으로 ‘친트럼프 매체’와 ‘반트럼프 매체’가 극명하게 나뉘었다. 각 언론과 그 지지자들은 상대를 ‘히틀러’처럼 묘사하며, 상대방의 논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언론이 꺼내든 새로운 상술, 정파성

흥미롭게도 타이비는 과거 언론이 객관성이나 중립성을 주된 덕목으로 내세웠던 것 역시 광고 시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적는다. 광고주들이 불특정 대중의 반감을 사지 않기를 원했기에 언론에 객관성을 요구했다는 것. 광고가 줄어들자 언론이 꺼내든 새로운 상술이 정파성이라고 그는 본다. 스포츠 중계를 모방해 ‘팬덤’을 모으는 정파적 언론, SNS에 정치적 신념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언론인이 인기다. 객관성을 옹호하는 이는 도태된다.

2016년 미국 대선 과정에서 〈뉴욕타임스〉 공공 편집인 리즈 스페이드는 “기자 개인의 도덕적·이념적 판단으로 사안을 덜 취재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가 친민주당 성향인데도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 의혹을 너무 많이 다룬다’는 비판이 나오자 이를 반박한 것이다. 기자 개인이 민주당을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취재 필요성이 있는 사안에 대한 보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SNS에서는 스페이드의 이 발언을 두고 ‘기계적 중립’ ‘거짓 균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반드시 언론에 후원해야 하는 돈을 쥐여줬을 때 사람들은 어떤 언론을 택할까. 낙관론자들은 ‘좋은 언론’이라고 답한다. 지난 5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미디어 바우처 제도에 대한 국민 의견’ 조사 결과에 따르면, ‘허위정보 사실 검증’ ‘정치인 및 기업 비리 고발’ 등이 후원하고 싶은 기사 유형으로 수위권에 꼽혔다. ‘나의 정치적 입장 대변’이라는 답변은 최하위였다. 그러나 비관론자들은 ‘무엇이 허위 정보이며, 어떤 정치인의 비리 고발인가’라고 묻는다.

언론 소비자 처지에서는, ‘내’가 지지하는 정당에 불리한 정보가 ‘허위 정보’이며, ‘내’가 싫어하는 정치인이나 기업의 비리 뉴스만 선호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즉 최하위 순위의 답변인 ‘나의 정치적 입장 대변’이 사실은 최상위 순위일 수도 있다. 비관론자들은 지금도 성행하는 누리꾼들의 단체 ‘악플’ 공격이 표현의 자유를 저해하고 언론 재정에 직접 타격을 주게 될 것이라고 본다. 한국 언론과 그 수용자들의 역량은 어느 쪽 전망을 입증하게 될까.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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