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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보장 대안 논의에서 기본소득의 윤곽이 거의 만들어진 듯하다. 처음에 기본소득이 등장했을 때는 기존 현금복지를 대체한다고 소개되었다. 이후 정치권이 앞다투어 기본소득을 제시하고 외국에서 기본소득 실험까지 진행되면서 유형도 다양해졌다. 이제는 ‘어떤’ 기본소득인지를 먼저 따져야 하는 상황이다.

많은 논쟁의 성과라고 이해한다. 우리가 다루는 기본소득의 구체적 모양과 근거가 명확해지고 있다. 우선 시민들에게 충분한 금액을 제공하는 ‘완전기본소득’은 지금 논의 주제가 아니다. 미래에 탈노동 사회가 도래해 시민 대부분이 노동시장에서 소득을 얻지 못하게 되면 논의할 수 있는 유형이다. 농민기본소득, 돌봄기본소득 등 특정 집단에 적용되는 ‘범주형 기본소득’도 복지국가의 사회수당과 이름만 다를 뿐 원리는 비슷하다. 재정 마련, 대상 선정 등 제도 설계에서 여러 의견이 제시될 수 있으나 앞으로 도입의 필요성에는 큰 이견이 없다고 본다.

핀란드 정부가 실업부조 수급자를 대상으로, 캐나다 온타리오주가 생계급여 수급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은 ‘사회부조형 기본소득’에 속한다. 사실 우리나라 생계급여도 2020년부터 근로소득의 30%를 별도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사회부조형 기본소득의 요소를 지닌다. 서울시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추진하는 ‘안심소득’ 역시 이 유형에 속한다.

결국 지금 실질적인 논쟁 대상으로 국민 모두에게 제공하는 소액의 기본소득만 남는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월 4만원, 기본소득 옹호 단체들은 월 30만원 수준까지 제안하는 ‘보편적 소액기본소득’이다. 금액이 크지 않으니 기존 현금복지들은 그대로 유지된다. 전통적 복지제도와 기본소득이 함께 공존하는 혼합복지 모델이다. 여기서 논점은 제도의 효용성이다. 소액기본소득은 개인별 수급액은 적지만 소요 재정은 상당하다. 현재 생계급여 지출에 연 6조원, 기초연금에 19조원이 지출되고 있는데, 기본소득의 경우 월 10만원을 지급하는 데도 연 60조원이 필요하다. 막대한 재정을 사용하지만 정작 소득지원이 절박한 사람에게 적정 급여를 제공하지 못하는 한계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이재명 지사는 기본소득이 비록 소액일지라도 지역화폐 방식으로 수요주도성장을 도모하는 ‘복지적 경제정책’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지역화폐는 다른 현금지급에서도 적용될 수 있으니 본질적 쟁점은 아니다. 수요 진작 역시 보편·선별 방식보다는 투입된 재정 규모가 관건이라 소액기본소득을 옹호하는 논리로는 빈약하다. 또한 모두에게 제공해야 증세가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으나 증세정치의 본령은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선 사회연대임을 잊지 말자.

진영을 떠나 열어놓고 논의하자

근래 기본소득을 주창하는 진영에서 내세우는 핵심 근거는 ‘공유부’이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정관에서 기본소득을 “공유부에 대한 모든 사회구성원의 권리”라고 정의한다. 공유부는 토지·지식·빅데이터 등 사회가 지닌 공통 자본이다. 이는 인류의 유산으로서 모든 사람의 것이므로 여기서 만들어진 부도 모두에게 동일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시야를 넓히면 n분의 1 분배가 정말 공평한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불평등이 구조화된 자본주의 시장체제다. 공유부 역시 이 체제 안에서 작동하므로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자산이기도 하다. 오히려 토지·특허·빅데이터 자산이 야기하는 불평등이 더욱 심각한 게 현실이다. 이렇게 시장에서의 1차 분배 격차가 큰데도, 공유부라고 이름 붙인 생산 자산에서 걷은 세금을 n분의 1로 나누어버리면 재정을 통한 재분배 효과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다른 대안들이 더 나와야 한다. 사람마다 소득 부족액이 다른 만큼 처지에 맞추어 소득을 지원할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안심소득도 후보이고, 현행 생계급여와 근로장려금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소득 파악이 관건인데, 최근 실시간 소득 파악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논의 여건은 그 어느 때보다 좋다. 진영을 떠나 열어놓고 이야기하자.

기자명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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