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이 교수는 기본소득이 ‘신자유주의적 작은정부’ 시대를 여는 트로이 목마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시사IN 신선영

이상이 교수(제주대 의과대)는 오랫동안 복지국가 운동을 해온 전문가이자 운동가다. 2007년부터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를 창립해 13년 동안 공동대표를 지냈고, 현재는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최근 〈기본소득 비판〉이라는 단행본을 펴냈다. ‘기본소득이 보편적 복지국가의 사회보장 제도를 구축(驅逐:쫓아낸다)한다’는 이유로 기본소득을 강하게 비판했다.

기본소득에서 ‘충분성’ 요건을 강조하는데.

기본소득 담론의 핵심은 ‘사회구성원 모두의 실질적 자유 구현’이다. 실질적 자유가 구현되려면 물질적으로 자유로워야 하고, 물질적으로 자유로우려면 6가지 원칙(보편성·무조건성·개별성·정기성·현금성·충분성)이 지켜져야 한다. ‘충분성’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푼돈’에 불과하다. 이재명 지사는 일반예산 조정으로 10조~25조원까지 마련해 5200만 국민에게 연간 20만~50만원 기본소득을 주겠다는 거다. 월로 따지면 1인당 1만6600원~4만1600원이다. 나중에 조세감면 축소를 통해 50조원을 마련해 연간 100만원 지급한다는 게 중기 목표다. 그래봤자 월 8만3000원이다. 이 금액으로는 기초 생계도 해결할 수 없다. ‘용돈’ 수준이다. 이 50조원은 보편적 복지국가를 발전시키는 데 써야 할 돈인데, 이 돈을 기본소득으로 나눠주는 데 쓰는 거다. 이는 용도의 변경인데, 기본소득론자들은 이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기존 복지 혜택을 누리면서 매달 8만3000원을 줄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알래스카 기본소득도 액수가 크진 않은데.

기본소득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2020년에 우리 돈으로 112만원을 나누어주었다. 가장 많이 나누어주었을 때도 알래스카 주민 1인당 GDP의 3% 수준이었다. 스위스에서 기본소득 국민투표를 할 때 스위스 시민단체가 홍보했던 방안은 GDP의 39%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GDP의 25% 정도를 나누어줄 수 있다면, ‘완전기본소득’이라고 부를 만하다. 유럽에서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은 충분성 요건을 갖춘 완전기본소득이다. GDP의 10~15%까지 차지하는 부분기본소득 논의까지는 기본소득 개념의 엄밀성 차원에서 인정한다.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핵심 이유는?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결국엔 한정적 재원을 두고서 보편적 복지국가 노선과 재정적으로 경합하고 충돌하게 되기 때문이다. 복지제도의 효과성·효율성이 크게 하락하면서 시민들의 효능감이 떨어져 더 이상 복지국가의 사회보장 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상태라면, 기본소득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적으로 정부와 재정의 역할이 오히려 점점 더 강조되는 추세다. 특히 한국은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 2030년이면 한국의 노인인구 비중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게 된다. 생산가능연령 인구는 매년 34만명씩 줄어들고 있다. 2030년까지 보편적 복지국가 시스템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한국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기본소득과 현재 복지국가의 사회보장 체계는 병립할 수 없나?

절대 병립할 수 없다. 인류는 1942년 베버리지 보고서를 통해 ‘보편적 복지의 사회보장’ 원리를 발견했다. 트랙터가 나오면 가축의 힘에 의존하는 농경 방식은 사라진다. 베버리지 보고서의 원리가 트랙터라면 220년 전에 나온 기본소득 방식은 가축 농경에 비유할 수 있다.

기본소득 아이디어가 처음 나온 220년 전에는 행정력이 지금만 못했다. 누가 위험에 처했고,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한지 파악할 수 없었다. 또 그 당시에는 절대 다수의 사람이 빈곤했으니까, 똑같이 나누어주는 방식이 가장 편하고 효율적이었을 터이다. 그러나 베버리지 보고서 이후에 ‘필요와 욕구의 충족(시민들의 필요가 체크되고 이로 인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의미)’이 사회적으로 가능해지면서 보편적 복지국가로 발전했다. 그러다가 1962년에 우파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국가가 복지제도를 너무 많이 만들어놓았으니 복지행정을 없애고 단순화하자’고 제안한 게 ‘음의 소득세’ 방식이다. 기존 국가복지를 폐지할 수 있다고 본 거다.

이재명 지사의 안처럼 10조원으로 시작해 점차 확대할 가능성은?

기존 복지제도의 확대에 쓸 돈을 빼서 10조원은 마련할 수 있다고 치자. 그 이상은 어렵다. 노인에게 30만원씩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데 연간 18조8000억원이 든다. 25조원은 무척 큰 금액이다. 그 금액을 구조조정으로 어떻게 마련하나? 지금도 정부재정이 모자라 해마다 국채를 발행해 지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매달 1만6600원을 나누어준다고 하면 복지국가의 확충은 ‘스톱’되는 거다.

기본소득의 액수가 적으면 어떤 문제가 있나?

기본소득 액수가 적으면 그 돈으로 기초 생계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일을 해야 하는데, 고용주 처지에서는 임금을 적게 주는 알리바이가 될 수 있다. ‘당신이 기본소득 얼마를 받으니, 임금을 좀 낮추자’ 하는 식으로 간다면, 시장 임금이 낮아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기본소득론자들은 기본소득을 받게 되면 협상력이 생겨 저임금 일자리를 가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사회의 임금수준이 높아질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건 완전기본소득 상황이 되어야 가능하다. 당장 기본소득 도입을 찬성하는 우파들은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기업의 부담을 줄여준다’고 주장한다.

2017년 7월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요구하는 시민단체 사람들. 내년이면 기준이 사라진다. ⓒ연합뉴스

기본소득으로 ‘복지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의 복지재원이 부족해서 그렇다. 한국은 조세부담률이 너무 낮다. 그래서 보편적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이들은 OECD 평균 수준의 조세부담률인 GDP의 25% 수준까지 높이자고 주장한다. 이렇게 된다면 지금보다 연간 100조원의 복지재원을 더 조달할 수 있다. 지금의 복지 사각지대를 어느 정도 메울 수 있는 재원이다. 또한 제도개선으로도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 내년이면 국민기초생활제도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아무리 빈곤해도 자식 등 부양 의무자가 있으면 그들에게 전혀 지원을 받지 못해도 기초생활보장금을 받을 수 없었다)’이 사라진다. 절대 빈곤의 사각지대가 상당히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한국은 ‘상대 빈곤자’에 대한 복지가 아직 미비하다. 소득 기준 하위 5%는 ‘절대 빈곤자’라고 볼 수 있다. ‘기준 중위소득(보건복지부가 매년 고시하는 국민 가구소득의 중위값. 2021년엔 487만6290원)’의 절반 이하를 상대 빈곤자라고 하는데, 소득 기준으로 따지면 하위 5%에서 17%에 해당하는 계층이다. 이들에 대한 복지급여가 매우 미비하다. 더욱이 생계급여를 받는 사람이 2.5%에 그치는데, 이는 절대 빈곤자 중에서도 생계급여를 못 받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결국 정부재정을 키워야 한다. 재정을 늘리면 지금 생계급여를 못 받는 절대 빈곤자와 차상위계층 등 소득 기준 하위 7~8%까지는 사각지대 없이 기초 생계를 보장받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생계급여 수급 범위를 늘리면 노동능력이 있는 사람이 포함될 거다. 이분들이 노동 의욕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노동 유인’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은 생계급여 수급자가 일을 해서 100을 가져오면 정부가 70을 환수하고 당사자는 30만 가져간다. 당사자가 가져갈 수 있는 비율을 40~50%로 높여주자는 게 내 주장이다. 그렇게 하면 노동 유인이 생긴다. 50조원 정도면, 이런 제도들과 함께 전 국민 고용보험, 취업 지원 등을 시행할 수 있다. 50조원을 기본소득으로 나누어주는 것보다 훨씬 우월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기존 복지제도를 두고서 추가적으로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나?

처음에는 10조원 그러다가 나중에 25조원, 50조원 규모로 기본소득을 도입하겠다고 하면 그 재원이 어디에서 나올까? 기존 복지제도를 확충하기는커녕 일부를 축소해서 기본소득 재원을 만들게 될 것이다. 자칫 기본소득이 ‘신자유주의적 작은정부’ 시대를 여는 트로이 목마가 될 수 있다. 많은 돈을 나누어줄 것처럼 말하지만 그 결과는 기존 복지의 폐지인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기에 로봇과 인공지능(AI) 등으로 인해 일자리가 줄고, 불안정 노동이 늘기 때문에 전통적 고용을 중심으로 설계한 기존 복지국가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기반으로 불안을 조장하려는 이야기다. 미래시대에 사라지는 일자리가 있긴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술 발달로 인해 어떤 일자리는 없어지고 다른 일자리가 발생한다. 일자리 소멸 시대가 올 것으로 보지 않는다. 다만 지금보다 노동에서 불확실성·불안정성이 커질 것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 정부가 노동자들이 새로운 능력을 습득할 수 있도록 교육과 직업훈련을 강화해야 한다. 기본소득으로 돈을 나누어주는 작은정부로는 노동권을 지킬 만한 힘을 가질 수 없다. 국가의 힘은 국가의 재정 능력에서 나온다. 기본소득 국가는 재정 능력이 없다.

핀란드의 사회실험에 대해서는?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실험이 아니다. 기본소득 방식을 도입했을 때 장기 실업자의 고용률을 높일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한 사회실험이었다. 핀란드는 실업수당을 받다가 그게 끊어지더라도 생활보조금을 계속 받을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의도적으로 실업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핀란드 정부는 이 실험에서 기본소득 형식의 돈을 받는 실업자들이 취업해서 일을 하면 그 보수 역시 모두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라도 장기 실업자들의 노동 의욕을 높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실험의 결과는 ‘실망스럽다’는 것이었다. 결국 우파 정부는 기본소득 정책을 포기했고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흐지부지되어버렸다.

김세연 전 의원의 기본소득안이나 안심소득제에 대해서는?

한국은 조세부담률이 20%가량이다. 명목 GDP를 2000조원 정도로 잡으면, 연간 조세수입은 대략 400조원이다. 국세가 300조원, 지방세가 100조원가량 된다. 400조원을 걷어서 정부가 지출하는데, 이 중 200조원을 기본소득에 쓰겠다는 주장이다. 그래봐야 1인당 월 32만원 수준이다. 더욱이 복지·노동·행정 전반에 대해 전면적인 구조조정을 전제로 한다. ‘작은정부의 우파 기본소득’ 버전이다. 그런데 월 32만원으로 ‘기초 생활’이 되나? 1인당 월 48만원까지 주려면 100조원이 더 필요한데, 그러면 추가로 증세를 하겠다고 한다. 기존 복지국가를 전면적으로 해체하고 기본소득 국가로 만들겠다는 주장이다. 기존 복지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공공 재정을 획기적으로 축소한다지 않는가. 국민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 신자유주의적 성격 때문에 정치적 수용성도 낮다.

안심소득제는 맹점이 있다. 중위소득까지 해당하는지 아닌지 소득을 파악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고, 행정비용도 많이 든다. 소득 말고 자산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방안도 없다.

기본소득론자는 ‘많이 걷고 많이 돌려주는’ 기본소득 제도하에서 증세가 더 쉬울 수 있다고 하는데.

한국에서 직접세는 상위 20%가 90% 이상을 부담한다. 그 돈으로 하위 10% 계층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증세를 하면 상위 20%가 더 부담할 수밖에 없다. 나는 상위 20%가 더 부담하는 추가 세금으로 하위 10%보다 혜택 범위를 더 늘리고 더 두툼하게 지원하자는 쪽이다. 기본소득론자들은 상위 20% 사람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걷어서 중간계층에까지 나누어주자는 것이다. 하위계층은 그동안 복지 혜택을 받기 때문에 추가 이익이 크지 않다. 결국 상위계층의 소득을 중간계층에 이전하는 메커니즘이다. 상위계층이 이걸 납득할 수 있을까?

*“기본소득 도입해 증세 가능성 높이자”(강남훈 교수) 인터뷰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975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