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 찰스 라이트 밀스는 익숙한 사회적 현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낯설게 보는 것을 가리켜 ‘사회학적 상상력’이라고 정의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려는 노력은 사진가에게도 꼭 필요한 덕목이다. 일상 속에서 쉽게 포착되지 않는, 이면에 잠재된 아름다움이나 관계를 발견하는 것은 사진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이를 ‘사진적 상상력’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촬영을 위해 집을 나서서 몇 블록 걷다가는 곧바로 ‘이런, 아무것도 찍을 게 없네!’ 하며 낙심하고 발길을 돌린다. 어느 정도 인내심을 갖고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당장 셔터를 누르지 않더라도 상상으로 사진을 촬영해보는 태도는 이후 실제 사진 작업에 큰 도움이 된다. 그냥 카메라를 들고 어딘가 나가서 ‘서성거리라’고 권유하고 싶다. 말하고 싶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거리 사진가가 작업을 하는 모습을 한번 떠올려보자.
“어떻게 나올까 궁금해서 찍는다”
프랑스의 사진비평가 질 모라는 “거리 사진가는 무심한 행인 혹은 체계적인 관찰자다. 자신의 모델을 공개적으로 혹은 비밀스럽게 촬영하면서 찰나의 순간을 추구한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거리 사진가는 사전 계획이나 동기 없이 특정 시간과 장소에 있게 되었지만 주변을 ‘빤히 바라보는 사람’이다. 여유를 갖고 느긋하게 산책하듯 이리저리 둘러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보라는 말이다. 사진 촬영은 계획했던 대로 착착 진행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많다. 때로는 ‘무계획이 계획’일 수 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직업 산책자’라고 불릴 정도로 걷기를 즐겼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길을 걷다 보면) 눈만으로는 볼 수 없는 무수한 ‘인식’을 제공받게 된다”라고 썼다. 평소 보지 못했던 것들을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수많은 유명 사진가들이 천천히 걷는 때를 ‘창의적 시간’으로 활용하고, 여기서 얻은 아이디어를 작업으로 연결해 작품을 내놓는다.
사진을 위해 걸을 때는 오지도 않은 메시지를 찾거나, 누군가 내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았을까 궁금해서 핸드폰을 들여다봐서는 안 된다. 핸드폰을 자꾸 들여다보는 것은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여럿이 같이 걷는 것은 혼자 걷는 것보다 덜 지루하고 즐거운 ‘토크’를 나눌 수 있는 정겨운 시간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이 또한 ‘사진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신은 왜 사진을 찍으시나요?’라는 질문에 미국의 거리 사진가 게리 위노그랜드는 “그 사물을 촬영하면 어떻게 나올까 궁금해서 찍는다”라고 답했다. 그의 단순명료한 답변은 사진적 상상력을 한마디로 압축한 중요한 조언이다. 한국에서 〈사진강의 노트〉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사진가이자 교육자 필립 퍼키스가 사진을 찍는 목적에 대해 ‘그냥 보려고(Just to see)’라고 얘기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코로나19로 다들 ‘방콕’이 생활화된 요즘, 마음껏 걸으면서 자신의 상상력을 사진으로 펼쳐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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