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2월23일 〈조선일보〉 1면에 살이 통통하게 오른 남자아이 하나가 옷을 벗고 앉아 있는 모습의 사진이 실렸다. ‘전라’의 아기는 지탱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커다란 메달을 목에 걸고 대형 트로피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사진은 당시 대구에서 열린 우량아 선발대회를 후원했던 한 유제품 회사를 홍보하기 위해 사용된 광고 이미지였다. 대회에서 선발된 ‘우량아’는 아기를 가진 많은 부모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우량아 선발대회는 기업의 사회공헌 프로그램 차원에서 출범했지만, 이후의 경제성장과 국민인식 변화에 따라 1980년대에 이르러 폐지된다.
우량아 선발대회는 일제강점기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현주 연구원의 〈1910년에서 1930년까지 미국과 한국에서의 베이비 쇼에 관한 소고〉에 따르면, 1910~1930년대에 아동의 발달 상태를 측정하고 순위를 매기는, ‘우량아 선발대회’와 유사한 행사들이 미국 전역에서 유행했다. 유아사망률이 높던 1910년대 미국에서는 아동의 건강이 국가 미래를 좌우한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다. 아기를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미래의 자원으로 보았던 박정희 정권 분위기에서 장려된 선발대회는 미국의 대회들과 유사한 목적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이런 대회를 장려한 목적은 따로 있었다.
불임수술법 시행의 배경
최초의 미국 우량아 선발대회는 1908년 루이지애나 농업박람회에서 개최되었다. 이 대회가 열린 곳이 농업박람회였다는 것 자체가 우선 흥미롭다. 대회에서 실제로 의사들은 가축 심사위원들이 소를 심사하는 방식과 똑같이 아기를 심사했다. 물론 이후 대회의 측정 항목에는 키와 가슴둘레 이외에 지적 능력을 포함하게 되었고, 우승한 아기들에게는 ‘과학적 우량아’라는 호칭을 부여하고 은제 트로피를 수여했다. 이런 대회에 힘입어 우량아 열풍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더 나은 아기(Better Baby)’ ‘완벽한 아기(Perfect Baby)’ ‘적절한 가족(Fitting Family)’ 등으로 명명되었던 미국 내 우량아 선발대회의 명칭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가축이나 애완동물을 품종개량하는 것처럼, 우생학자들은 인간 역시 인위적 ‘세대 형성’을 통해 자손을 우량하게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우생학자들은 낮은 지적 능력과 가난이 대물림된다며, 이런 집단의 숫자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지목한 열악한 유전자를 가진 집단은 가난하고, 영양상태가 좋지 않으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유색인종과 후기 이민자들이었다. 계속 생산되어야 할 ‘더 나은 아기’는 건강하고 교육을 잘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는 백인이다. 우생학자들의 주장에 편승한 미국의 저명한 사상가와 정치가들은 1924년 차별적인 이민법을 통과시켰다. 이로부터 3년 뒤, 미국 대법원은 정부가 ‘우량하지 않다고 판단한’ 여성에게 불임시술을 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미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1933년 나치가 불임수술법을 시행하는 배경이 될 수 있었다. 독일에서도 35만여 명이 강제로 불임수술을 받아야 했다.
미국 국회도서관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사진들 가운데에서 ‘더 나은 아기’ 선발대회와 관련한 많은 이미지를 찾을 수 있다. 모두 축하하고 기뻐해야 할 우승자와 참여자들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진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면 전혀 다른 차원에서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양손을 허리에 얹고 한 발을 앞으로 내밀고 포즈를 취한 윌리엄 찰스 플린이라는 아기는 무척 건강하고 당당해 보인다.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는 귀하고 무해한 존재다. 하지만 그의 사진이 우생학적으로 완벽한 금발 백인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목적으로 사용될 때,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사진이 가지고 있는 ‘묘한’ 능력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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