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 하나와 루페(돋보기)만 갖고 걸어 다니는 지질학자, 삽과 줄로 한 장소에 끈질기게 붙어 있는 고고학자, 카메라를 든 채 걷고 머무르기를 반복하는 사진가는 공통점이 있다. 기록하거나 기록을 수집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그 기록을 해석해서 역사를 재구성한다. 지질학자는 47억 년 지구 역사를 지층을 통해 알아낸다. 고고학자는 고분을 발굴해서 문헌에 글로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해석한다. 사진가들은 도서관과 박물관, 심지어 개인의 앨범 등에 묻혀 있던 사진을 발굴해 그동안의 사회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를 ‘사진 고고학’이라 부른다.
얼마 전 전북 남원으로 취재하러 갔다. 그 지역에 삼국시대의 소국이 존재했다는 소문을 듣고 호기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남원의 동북쪽 아영면의 지리산 기슭에는 지름 20m가 넘는 두락리 32호분이 위용을 자랑한다. 이 주변 구릉에만 고분이 40여 기나 존재하고 수년 전부터 발굴 작업 중이다. 이곳에서 5세기 후반 백제 금동신발과 대가야의 토기, 왜의 청동거울 등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역사 문헌에 나오는 ‘기문국’으로 추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고고학자들은 유물을 파내고 나는 그것을 카메라로 기록한다. 구릉에 서서 아영면을 조망하면 순식간에 1500년을 거슬러 올라가 백제와 대가야 사이 변경에서 나름의 독자적인 사회를 형성하며 살았을 고대인들의 마을이 신기루처럼 겹친다.
그런데 이 기문국이 2020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가야’ 특별전에서 논란의 중심이 됐다. 대가야의 영역 지도 근처에 〈일본서기〉에 기록된 기문(국)을 표기했기 때문이다. 문제를 제기한 이들은 이를 ‘임나일본부 인정’ 문제로 비약시켰다. 언론은 가십 거리로 취급했다. 급기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까지 임나일본부 문제가 올라왔다. 결국 특별전은 반일 성토장이 됐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기문은 중국 양나라의 외교문서인 ‘양직공도(梁職貢圖:양나라 측이 외국 사신들을 그린 그림)’와 당나라 역사서 〈한원(翰苑)〉에도 등장하는 지명이다. 또한 기문이라는 지명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서 ‘임나일본부’설(說)이 성립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일부 역사 애호가들은 고대사 전공자들과 박물관 학예사들을 일본 극우파의 논리에 동조하는 친일파로 매도하고 말았다.
‘말이나 글로 표현되지 않은 정보’
최근 역사왜곡방지법의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 5월13일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역사왜곡방지법은 “헌법 정신을 위반하는 일제 찬양과 역사왜곡 행위에 대한 법적 근거가 미비한 현실에서 헌법적 가치를 지키고 국가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법률로 명시되어 있다. 외견상 이 법률은 일제강점기에 대한 왜곡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일제가 주장한 것이 임나일본부설이니 ‘기문’도 범법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교과서 시도를 반대했던 21개 역사학 단체들이 이 법안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일제강점기와 무관할 것 같은 고대사학회와 고고학회까지 성명에 참여했다.
삽이나 카메라로 발견한 기록에는 ‘말이나 글로 표현되지 않은 정보’가 담겨 있다. 역사 해석은 사실에 기반해 논쟁하고 수정해나가야 할 문제이지 법의 영역 안에서 단죄할 사안이 아니다. 요즘 들어 부쩍 카메라가 무겁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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