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에서 촬영 통제로 사진을 찍지 못한 필자가 우연히 야외의 물안개 쇼를 촬영했다.ⓒ김성민 제공

〈찍지 못한 순간에 관하여〉(윌 스티어시 지음)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는 유명한 사진가들이 찍지 못했지만 기억하고 있는 소중한 순간이 글로 적혀 있다. 너무나 사랑해서, 너무나 안타까워서, 혹은 너무나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서 셔터를 누를 수 없었던 순간의 기록이다. 나도 그런 순간이 있다. 아들이 군 훈련소에 들어가는 날,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았다. 핸드폰으로도 사진을 찍지 않았다. 한동안 헤어져 있을 아들의 얼굴을 오래도록 마음속에 기억하고 싶었다. 그 순간에 몰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행 전문가 김민철은 말한다. “나에겐 타임머신도, 두 번의 기회도, 좋은 머리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쓸 수밖에 없다. 쓰면서 그 막연함을 약간이라도 구체화할 수밖에 없다. 글을 쓰면 적어도 복기할 기회가 주어지니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태에 대해 이해할 수 있으니까. 내 감정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니까. 아니, 이해해보려고 적어도 노력해볼 수는 있으니까. 그러니 쓴다는 것은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방식 중 하나이다.”

이렇게 복기한 것을 다음 촬영에 이용한다면 어떨까? 더 좋은 사진을 촬영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욕심을 부려 억지로 프레임 수를 채우는 것보다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때로 사진은 대상에 대한 몰입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진을 찍지 말고 장면에 몰입하는 순간도 있어야 한다. CF 제작의 대부라고 불리는 윤석태씨가 자신은 “눈으로 사진을 찍는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기억한 이미지를 나중에 자신이 제작하는 CF에 응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진을 찍는 행위와 그 순간을 기억하는 행위가 완전히 다르고 모순되는 관계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이 둘을 상호 보완할 때 사진가는 엄청난 힘을 얻을 것이다.

사진은 찍었지만 기억하는 순간은 없다

움베르토 에코는 1960년에 프랑스의 많은 대성당을 돌아다니다가 문득 사진 찍기를 중단하게 되었다고 한다. 틈만 나면 미친 듯이 세상의 모든 것을 렌즈에 담는 습성을 가지고 있던 그가 사진을 포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진을 찍고 집에 돌아가면 자신의 앞에는 늘 나쁜 사진만 수북이 쌓여 있었고, 정작 자신이 본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후 그는 자신이 본 것들을 모두 마음에만 담았고, 타인과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기억하려고 마음에 드는 엽서를 사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행을 다니면서 늘 사진은 찍었지만 중요한 실제의 순간들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에코처럼 사진 촬영 자체가 의미 없으니 포기하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단지 사진이라는 활동에 스스로 발을 묶어서 여행의 중요성이나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프로 사진가도 그렇지만, 아마추어도 마찬가지다. 무엇인가를 꼭 사진에 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풍경을 감상할 때 오히려 더 좋은 사진을 만나기도 한다. 때로는 풍경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낄 필요도 있다. 그래서 좋은 풍경을 눈앞에 두고도 사진에 담지 못했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그냥 지켜보면서 느끼는 것이 삶에 더 큰 활력소가 될 수도 있다.

기자명 김성민 (경주대학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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