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9일 미얀마 카야주에서 쿠데타 군부의 군인이 난민촌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 ⓒMPA

제이 파잉 씨(35)는 미얀마 사진기자 모임 ‘MPA(Myanmar Pressphoto Agency)’의 편집장이다. 사진기자 17명이 소속된 이 비영리 매체는 지난 넉 달간 미얀마 곳곳에서 일어나는 반쿠데타 시위 현장을 최일선에서 기록했다. 30만명이 팔로하는 MPA의 페이스북에는 쿠데타 초기 대규모 집회부터 총격 현장, 게릴라 시위 등이 매일 업로드되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MPA 기자 2명이 양곤과 만달레이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제이 파잉 씨는 “위험한 상황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얀마 사태가 길어지자 무장투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실제로 미얀마 일부 지역에서는 시민군과 군경 간에 교전이 일어난다. MPA가 5월24일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 중에는 직접 만든 무기로 훈련 중인 시민방위군(PDF:People Defence Force)의 인터뷰 기사가 있었다. 쿠데타 이후 4개월, 시민불복종운동(CDM)으로 대표되던 비폭력 운동은 어떻게 무장투쟁으로 전환되었을까? 미얀마 시민방위군과 소통하는 제이 파잉 씨에게 현지 상황에 대한 기사를 부탁했다. 그는 ‘무장투쟁만이 유일한 출구인가’라는 제목으로 아래 기사를 〈시사IN〉에 보내왔다.

2월9일은 미얀마 민주화 시위의 첫 희생자가 나온 날이다. 군부의 실탄사격으로, 시위에 참가한 19세 여학생 카인이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했다. 이날 이후 시민들의 분노는 전국 시위로 이어졌다. 그러나 군부는 기관총과 대포까지 동원해 밤낮으로 시위를 진압했다. 희생자가 속출했다. 쿠데타 이후 지금까지 민간인 800여 명이 사망하고 4000여 명이 구금되었다. 미얀마 시민은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를 ‘테러리스트’라고 부른다.

고립된 시민은 유엔의 R2P(보호책임원칙) 적용 등 국제사회의 개입을 호소했지만 진전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미얀마 군부는 카렌주와 카친주, 카야주 등 소수민족 지역에 공군을 투입해 공격을 일삼았다. 게다가 친주 민닷 지역 주민을 ‘인간 방패’로 사용해 인근 마을을 진압하는 등 범죄행위를 저질렀다. 시민들은 스스로를 보호해줄 수 있는 ‘혁명군’이 만들어지길 간절히 원했다. 급기야 일부 청년들은 군과 맞서 싸우기 위해 무장단체가 있는 지역에 들어가 군사훈련을 받기까지 했다. 소수민족 무장단체인 카친독립군(KIA)과 카렌민족해방군(KNLA)은 일찍이 군부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카야주에서 활동하는 시민방위군. 일부 지역에서는 쿠데타 군부와 직접 교전을 벌인다. ⓒMPA

동사무소를 공격하는 이유

이런 목소리에 힘이 실리자 미얀마의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는 5월5일 시민방위군(PDF) 창설을 공식 발표했다. NUG는 공식 성명에서 “경찰과 군부가 반쿠데타 시위대에 치명적인 무기를 배치함에 따라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창설했다”라고 밝혔다. 원래 NUG는 소수민족 무장단체들과 연방군을 창설하고자 했다. 70년 넘게 이어진 소수민족과의 갈등을 종식하고 이들 무장단체와 연대해 군부에 대적하겠다는 것이다. 시민방위군은 연방군의 전신 격으로 등장했다.

미얀마 시민 대부분은 NUG의 시민방위군을 적극 지지했다. 시민방위군이 전국적으로 만들어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쿠데타 군부 및 경찰과 직접 교전을 벌인다. 특히 친주에 있는 민닷, 타롯, 하카 지역 등에서는 시민방위군의 활동이 눈에 띈다. 이들은 집에서 사냥총 등을 직접 만들거나 무기를 밀반입한다. 양곤 지역 시민방위군(PDF)에서 활동하는 한 23세 청년은 “우리가 거리로 나왔을 때 쿠데타 군부와 맞서 저항하는 이들은 우리뿐이었다”라고 말했다. 더 이상 맨몸으로 싸울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무기를 들었다. “나는 무장투쟁이 두렵다. 그러나 군부의 폭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무기를 들어야만 했다.”

5월18일 오전 6시쯤 양곤의 차이나타운에서 사람 한 명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망한 상태였다. 군부는 그가 란마더구 제3 동사무소 소장인 45세 우묘루인 씨라고 발표했다. 군부에 따르면 우묘루인 씨는 자신이 관리하는 동사무소가 폭발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려고 나왔다가 누군가로부터 총격을 당했다.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출동한 보안군 7명도 추가 폭발 피해를 입어 다쳤다고 덧붙였다.

미얀마어로 ‘옥지’라고 부르는 동사무소 소장이 죽임을 당하거나, 동사무소에 화재가 나는 사건은 쿠데타 두 달째부터 여러 지역에서 종종 발생했다. 범인을 잡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군부는 동사무소 소장의 죽음이 ‘폭도’의 소행이라고 발표했다. 군부가 말하는 폭도는 바로 시민방위군이다. 이들이 폭탄과 총칼 등으로 암살을 시도했다는 게 군부 측의 주장이다.

현재 각 지역의 동사무소는 시민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군부 쿠데타에 반대하는 이들이 시민불복종운동에 나서면서 동사무소 관계자들이 친군부 인사로 대부분 교체되었다. 이후 동사무소 소장은 군부 관계자들 중에 시위에 참여한 이들의 정보를 군부에 넘기면서 ‘스파이’ 노릇을 했다. 또 피신 중인 시위대가 민가에 숨지 못하도록 집안의 손님 수를 등록하는 ‘손님 신고제’를 시행했는데 이를 수행하는 기관 역시 동사무소다. 동사무소가 무장 세력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 퍼지자, 군경의 진압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바리케이드는 이제 군경이 경비하는 동사무소 앞에 등장했다.

쿠데타 4개월, 시민방위군의 등장과 함께 미얀마 곳곳에서는 이제 무장 충돌이 본격화되고 있다. 카야 지역 시민방위군은 5월23일 샨주와 카야주 경계에 있는 모비에 지역의 경찰서 한 곳을 공격했고 경찰과 군인 일부가 사망했다. 정확한 피해 상황은 알려지지 않았다. 군부가 발표한 뉴스에서도 일반 경찰서 경비를 담당하는 보안군이 죽었다고만 보도됐다. 시민방위군 쪽에서는 시민군 한 명이 허리에 총을 맞고 네 명이 부상당했다고 발표했다. 한편 카야주 데모소 지역에서는 군부가 드론을 사용해 지형을 파악한 뒤 대포로 시민방위군을 공격하기도 했다.

5월29일 국민통합정부가 공개한 시민방위군의 첫 군사훈련 수련식 영상 캡처 화면. ⓒMPA

58개 시민방위군 중 12개 군이 활동 중

5월24일 군인과 군사용품을 실은 비행기가 카야주 로이코 공항에 여섯 번가량 드나들며 장갑차와 군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월등히 뛰어난 무기를 보유한 군부의 공격에 시민방위군은 자신들이 만든 총으로 반격하는 상황이다. 5월27일 군부가 카야주에 공군을 투입해 공격하자 지역 주민 수만 명이 밤중에 피란해야 했다.

무력 분쟁과 테러 자료를 분석하는 다국적 단체 ACLED는 미얀마 전역에서 적어도 58개 시민방위군이 결성됐고 이 가운데 12개 단체가 활동 중이라고 추정한다. 무장투쟁이 유일한 출구인가? 시위 초기부터 제기되었던 이 질문에 누구도 쉽게 답하기 어렵다. 시민불복종운동으로 평화롭게 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무장투쟁에 나선 이들은 ‘비폭력 평화 시위가 탄압당했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기 때문에 총을 들고 싸우는 길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NUG의 사사 대변인은 “미얀마 시민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습격, 체포, 고문, 살인 등 군부의 끊임없는 위협이 시민들로 하여금 무기를 들게 했다. 지금은 시작에 불과하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금 미얀마가 무장투쟁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기자명 제이 파잉 (미얀마 사진기자 모임(MPA)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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