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를 위해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재한 미얀마인들로 구성된 ‘행동하는 미얀마 청년연대’는 미얀마 현지 목소리를 한국에 전달하는 것이 미얀마 군부를 압박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2월부터 반쿠데타 저항운동에 나선 미얀마 현지인과 한국인의 줌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시위 조직가, 초등 교사, NGO 활동가, 청소년, 국립병원 의사와 연결해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다(유튜브 ‘Voice of Asia People’). 인터뷰를 미얀마어에서 한국어로 통역할 때마다 매번 분노했고 가슴이 아팠다. 그중에서도 꼭 기록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미얀마 국영 석유가스공사(MOGE)에서 석유 시추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아웅 코 툰 씨였다.
MOGE에서 일한 지는 15년째라고 했다. 미얀마 제2 도시 만달레이 출신인 그는 5년 전 마그웨이주 민부시에 있는 MOGE로 파견 나갔다. 석유를 시추해 번 돈으로 가족과 함께 살 집을 짓겠다는 꿈을 가졌다. 그러던 중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아웅 코 툰 씨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2월2일부터 미얀마에서 ‘엘리트’라 할 수 있는 의료계, 교육계와 국영철도 노동자의 파업이 시작되었다. 아웅 코 툰 씨 같은 석유 시추 노동자들은 망설였다. 3월 초, 국영철도 노동자들이 시민불복종운동(CDM)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공동주택에서 쫓겨났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웅 코 툰 씨처럼 민부시 MOGE에서 석유 채굴을 하는 노동자는 900명이 넘는다. 대부분 미얀마 노동법이 규정한 수준의 임금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고 회사에 반기를 들 만한 처지도 못 된다고 그는 말했다. 근무한 지 15년째인 그가 받는 월급은 18만5000짯(약 12만4000원). 노동환경도 열악하다. 24시간 석유 시추 기계가 돌아가게 하기 위해, 그는 낮이건 밤이건 모터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해야 했다. 여름에는 기온이 45℃까지 올라 동료들이 열사병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잔업수당은 꿈도 못 꾸고, 노동조합이 있지만 유명무실했다. 처우 개선을 요구하면 회사 측은 멀리 파견을 보내버렸다.
그래서 노동자 900여 명은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 파업에 동참하지 못하고 눈과 귀를 닫고 계속 소처럼 일만 했다. “가족의 안전과 끼니를 걱정하느라 당장 용기를 낼 수 없었습니다. 은퇴 후 가족과 화목하게 살 수 있는 땅과 집 마련이라는 내 평생의 꿈이 깨질까 봐 파업을 주저했어요.” 아웅 코 툰 씨가 말했다.
군부는 포악하게 강경 진압을 하고 무고한 시민을 잔인하게 죽였다. 희생자 중 10~20대가 45%를 넘는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그는 부끄러웠다고 했다. ‘청년들이 맨몸으로 군부에 맞서 싸우는데 어른들은 뭘 하고 있는 건가.’ 저항운동이 시작되고 한참이 지난 4월20일, 뒤늦게 MOGE 노동자 530여 명이 시민불복종운동에 동참했다. 재래식 석유 시추 시설의 기계 작동을 중단하거나 일의 속도를 늦추면서 소극적 파업을 이어갔다.
회사 측에서 아웅 코 툰 씨를 포함한 파업 노동자들을 불렀다. “파업을 계속할 거면 공동주택에서 나가야 한다. 하지만 근무로 복귀하면 공동주택에서 살아도 된다.” 협박과 회유에도 시민불복종운동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5월14일, 나머지 노동자들까지 동참해 900여 명 대부분이 파업에 나섰다. 공동주택에서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쿠데타에 맞서 싸우는 청년들을 위해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당당하게 공동주택을 나왔다. “솔직히 갈 곳은 없었습니다. 공동주택을 나온 파업 노동자들은 근처 사찰이나 민간인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어요. 아예 짐을 싸서 가족과 다른 지역으로 피난을 가기도 하고요. 그마저도 없는 사람은 길가에 오두막을 거처 삼아 군경을 피해 다니는 상황입니다.”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지 129일째인 6월9일 현재, MOGE 파업은 50일째다. 아웅 코 툰 씨를 비롯한 MOGE 노동자 900여 명은 시민불복종운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지금이라도 항복 선언을 하고 돌아가면 적지만 안정적인 월급을 받는 예전의 삶을 살 수는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이를 거부했다. 불편하고 불안한 삶을 택했다. 부끄러움 때문이다. 군부에 굴복하는 것이 부끄럽고, 먼저 간 청년들의 희생에 부끄러웠다. 자라나는 어린 자녀들에게는 부끄러운 삶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군부의 자금줄을 끊을 수 있는 파업
미얀마의 대표 외화벌이 자원은 석유와 천연가스다. 석유나 천연가스 등 지하자원은 많지만 시추나 정유 기술이 부족한 미얀마는 외국 회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아웅 코 툰 씨가 일하는 곳 역시 선진 시추 기술이 없어서 전통 재래식 방식으로 석유를 캔다. 운 좋게 석유를 발견하면 월급이라도 받지만, 석유가 없으면 임금도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변변한 숙소도 없어서 재래식 시추 기계 옆에 비닐 천막을 치고 거의 노숙 생활을 하며 석유가 나오기만 기다린다. 일자리가 없는 미얀마인의 ‘마지막 생존의 보루’가 석유 시추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아웅 코 툰 씨는 5월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썼다. “재래식 석유 시추 시설 아래 미얀마인의 피와 눈물이 흐르고 있다. 지하자원을 퍼내서 가져가는 우리들의 삶, 뜨거운 태양열 밑에서 구슬땀을 흘려야 하는 우리들의 삶이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운영하는 슈웨 가스전이 미얀마 정부에 지급하는 대금은 2017년 한 해에만 1억8600만 달러(약 2073억원).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이 가스전을 MOGE와 합작해 운영한다. 미얀마 군부의 자금줄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포스코는 ‘미얀마의 문민정부 시절에도 추진되어온 사업이며 군부와 관계없다’고 주장하지만, 가스전 수익금은 명확하지 않은 회계처리로 군부에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MOGE의 수익금이 반쿠데타 저항운동을 하는 시민을 탄압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얘기다.
아웅 코 툰 씨는 회사 재정이나 수익 등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현재 가족을 이끌고 집도 없이 떠돌며 군부와 맞서고 있다. MOGE에서 일어나는 시민불복종운동의 중요성은 여기에 있다. 군부의 자금줄을 끊어놓을 수 있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금 미얀마 시민 모두는 불행한 시절을 겪고 있다. 기필코 군부를 종식하고 민주주의로 가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가, 먼저 간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이자 남은 자들의 의무가 아닐까.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으며 싸우는 아웅 코 툰 씨와 노동자 900여 명이 안전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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