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7일 양곤에서 시위대를 취재하던 케이 존 응웨 기자가 체포돼 연행되고 있다. ⓒAFP PHOTO

1980년 5월 당시, 광주항쟁의 실상은 제대로 보도되지 못했다. 신군부의 언론 검열 및 통제 때문이었다. 취재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보도 금지에 항의하며 제작 거부에 돌입했다. 그때 해직당한 기자가 1000여 명에 이른다. 김준범 전 기자도 그중 한 명이다. “나는 광주를 다녀온 뒤 밤마다 전에 못 마시던 소주를 몇 잔씩 마시는 버릇이 생겼다. (…) 그때 광주의 기억은 수십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미디어오늘〉).” 수많은 1980년 당시의 해직 기자들이 이처럼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에 시달렸다.

2월1일 이후 그의 관심사는 온통 미얀마로 향해 있다. 언론인 수십 명이 ‘가짜뉴스 유포’ ‘선동’ 혐의로 체포되고 독립 언론사들이 문을 닫았다. 김 전 기자는 “이제 미얀마에 대한 국내 언론의 관심이 줄어드는 것 같다”라며 안타까워했다. 41년 전 5월 광주를 취재했던 기자에게 미얀마 민주화 항쟁은 어떤 의미일까. 아래는 그가 미얀마 언론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다.

저는 1980년 5·18 당시 광주에서 취재 활동을 했고, 신군부에 의해 강제로 해직됐다가 7년 만에 복직한 수많은 언론인 중 한 사람입니다. 그 후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The Organization of 1980 Dismissed Journalists)’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했습니다.

미얀마 쿠데타 소식을 처음 접하던 날, 저는 유엔을 비롯한 자유 우방 진영이 머지않아 미얀마 사태를 평정하리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어갔지요. 군부가 처음에는 물대포나 고무탄을 쏘다가 시위대의 저항이 격렬해지자 전투용 실탄을 무차별 발사하면서 사상자가 속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불길한 예감은 여지없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TV로 미얀마 소식을 접할 때마다, 41년 전 광주의 유혈사태를 다시 보는 듯했습니다.

국제사회가 효과적인 해결책을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미얀마 사태는 점점 내전 위기로까지 치닫고 있습니다. 그럴 조짐은 13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미얀마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반군 무장 조직인 카친독립군(KIA)은 카친주를 공습한 정부군의 헬리콥터를 격추시켰고, 남동부에서는 카렌민족연합(KNU)의 무장한 시민군이 미얀마 군 20명을 사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러다 제2의 베트남전쟁이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미얀마 쿠데타군의 최고 실력자로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이 언론에 노출됐을 때 저는 41년 전 한국의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연상했습니다. 두 사람은 국적만 다를 뿐 권력 지향적인 정치군인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더 많습니다. 4월24일 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약속한 합의문조차 흘라잉은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미얀마 국민의 불행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권력욕에만 몰입해 있는 것 같습니다.

5·18 광주의 비극을 겪어본 한국인들은 미얀마 쿠데타와 군부의 만행을 누구보다 깊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특히 광주에서는 미얀마 시민들에 대한 연대와 지지가 강도 높게 이어지고 있지요. 광주 5월 어머니회는 한국에 유학 온 미얀마 대학생들을 초청해 그동안 모아둔 위로금을 전달했습니다. 다른 5·18 관련 단체들도 조용히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쿠데타 발발 이후 코로나19 확진자 수와 미얀마 시위대의 사망자 숫자를 확인하는 것이 일과처럼 되었습니다. 정부도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SNS를 통해 미얀마 국민의 고통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고, 정의용 외교부 장관도 미얀마 군과의 모든 협력관계를 잠정 중단하라고 각 부처에 요청했습니다.

4월13일 언론단체들이 주한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군부의 언론 탄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군부 쿠데타? 흘라잉의 쿠데타!

쿠데타 발생 석 달을 넘기고 있는 시점에서 시위대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일까요? 언론인으로서 미얀마 사태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공동대표로 있는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는 지난 4월13일 서울 용산구 주한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미얀마 국민의 정의로운 항쟁에 강력한 지지를 보내며, 미얀마 민주시민사회와의 굳건한 연대를 약속한다”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지요. 이날 미얀마의 야만과 언론 탄압 중지를 즉각 선언하고, 유엔 평화유지군 파견과 국제 제재 단행 등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군부의 학살과 폭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유엔과 각 우방국에 촉구했습니다.

쿠데타 초기부터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체포·구금된 미얀마 언론인들의 처지는 더욱 비참할 것입니다. 기자라는 신분만으로 군부의 표적이 되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음에도 굴하지 않고 취재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미얀마 언론인들에게도 같은 언론인으로서 깊은 존경과 경의를 표합니다. 한국의 시민·종교단체에서 모으는 성금이 부디 은신처를 돌며 취재 중인 언론인들에게도 전달되기를 고대합니다.

어떤 시위대원은 한국 언론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군경의 폭력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무기”라며 ‘M16 소총’ 같은 무기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맨몸으로 저항하는 시민들을 지켜보고만 있는 상황에서 그의 마음을 저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미얀마 군의 기강도 갈수록 허물어지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최근엔 길 가는 행인을 체포·구금한 뒤 부모에게 금품을 요구하는 등 인질극을 벌이기도 한다지요. 쿠데타군이 시민의 돈과 생명을 빼앗는 강도로 변했으니 이제 자멸의 길로 들어선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는 이번 쿠데타가 ‘군부 쿠데타’라기보다는 ‘흘라잉의 쿠데타’라는 주장에 동의합니다. 흘라잉의 군부가 과연 언제까지 지탱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짧게나마 민주화를 맛보았고 개방적인 시스템 속에서 살아본 젊은 세대들이 군부 통치에 결사적으로 저항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저는 한 줄기 빛을 보았습니다.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어 탈영을 결심했다는 미얀마의 한 육군 대위는 자신의 얼굴과 신상을 공개하며 언론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그는 진압에 동원된 장병의 절반 정도가 조직의 명령에 동조하지 않고 있다고 폭로했습니다. “쿠데타군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시위대는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결속력이나 정신력 측면에서도 시민군이 훨씬 강하고, 역사는 후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시민군이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시대착오적인 한 군인의 권력욕에서 비롯된 이번 미얀마 군부 쿠데타는 미얀마 국민의 끈질긴 저항에 부딪혀 결국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미얀마는 지금 어둡고 긴 겨울밤을 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먼동이 트고 새봄이 오면 어둠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거짓은 참을 이기지 못하고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100일 동안 쿠데타 군경의 잔학한 폭력에 저항하다 목숨을 잃은 미얀마 시민 800여 명의 명복을 빕니다. 미얀마에 평화가 정착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한국의 시사주간지 〈시사IN〉은 미얀마의 민주주의와 일상 회복을 응원하는 #WatchingMyanmar #지켜보고있다 특별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이 캠페인에 참여한 시민들이 모아주신 기금으로 미얀마 언론인과 시민기자들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시사IN〉 미얀마 특별 페이지를 참조하세요. 


미얀마어로 읽기(Myanmar language)   /     영어로 읽기(English)
이 기사는 미얀마어와 영어로 번역됩니다. 세계 시민에게 ‘1980년 광주 정신’을 널리 알리고  미얀마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촉구하기 위해서입니다. SNS로 이 기사 링크를 널리 공유해주세요.
 


 

기자명 김준범 (전 동양방송 기자,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