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는 어쩌다 공공의 적이 되었나 변진경 기자 ‘학부모 교권침해 민원사례 2077건 모음집’이라는 전자문서가 있다. PDF 파일과 노션(협업 기록 소프트웨어) 링크로 유포되었다. 편집자는 익명의 교사들이다. 이들은 지난 7월21일부터 7월23일까지 사흘 동안 초등학교 학부모 교권침해 민원 사례 2077건을 모아 한 권의 전자책으로 묶었다. '민원 스쿨(minwon_school)'이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업로드하고 추가 제보도 받고 있다.이 문서에서 교권침해의 주어는 온통 ‘학부모’다. ‘개인 번호 알아내 개학식 날 저녁 8시에 전화한 학부모’ ‘시험문제 직접 출제하여 내미는 학 기생충이라는 렌즈로 톺아본 한국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구충록정준호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한국 사람들은 기생충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하는 것 같다.”어린 시절 학교는 학생의 똥까지 살펴보는 곳이었다. 평소에는 잘만 나오던 똥이 채변 봉투를 앞에 두면 도무지 나올 생각을 안 했다. 누구나 몸 안에 기생충을 가지고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기생충이 완전히 ‘박멸’됐다고 상상되는 지금도 음식이 평소보다 많이 먹힐 때면 기생충과 식사를 나눠먹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구충제’로 고민이 이어진다. 저자는 한국 근현대사를 기생충이라는 렌즈로 톺아본다. 기생충이 한때 “우리 사회의 문학과 중견 작가 고민의 시대를 비추다 [2022 행복한 책꽂이] 김영화 기자 문학의 인기가 도드라진 한 해였다. 출판인이 추천한 올해의 책(국내서) 상위 10권 중 문학 분야가 절반을 차지했다. 최근 몇 년간 출판인이 응답한 〈시사IN〉 ‘행복한 책꽂이’ 목록을 보면 에세이나 사회비평서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문학작품은 소수에 그쳤다. 올해는 달랐다. 소설부터 시, 각본집까지 여러 문학 작품들이 2022년 올해의 책으로 이름을 올렸다. 신인 작가보다는 중견 작가가 주를 이뤘다.출판인들의 압도적 추천을 받은 책은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다. 딸의 시선에서 ‘전직 빨치산’ 아버지의 장례식 3일을 다뤘다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음악 평론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나를 절망에 빠트린 작가가 몇 있다. 최초 ‘수필가’로서 김훈이 왔고,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뒤를 이었다. 나는 아직도 〈자전거 여행〉과 〈몰락의 에티카〉를 처음 접한 순간을 잊지 못한다. 이 외에 내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작가는 부지기수다. 존 쿠시, 리처드 도킨스, 도리스 레싱 등, 리스트를 대자면 한도 끝도 없다. 그만큼 내 필력이 가난하다는 뜻이리라.가장 많이 탐독한 분야는 아무래도 음악 평론이다. 그렇다. 빼어난 평론과 음악 역사에 대한 글을 많이 읽어야 더 잘 쓸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악 조심스레 흙을 파내자 치아 68개가 나왔다 정희상 기자 경기도 안산의 작은 섬 선감도. 지금은 육지와 연결됐지만 불과 30년 전만 하더라도 대부도에 딸린 외딴섬이었다. 지난 9월26일부터 닷새 동안 이곳(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산 37-1번지)에서는 선감학원 사건 희생자 유해 매장 추정지 시굴 조사가 이뤄졌다. 시굴에 앞서 김훈 작가가 추도사를 했다. “우리는 언제까지 ‘미안해’를 거듭하면서 살아가야 하는가. 과거의 악과 화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가능하다면 오직 사실의 바탕 위에서만 화해가 가능하다. (오늘 유해 발굴로) 많은 시신들이 확인돼 그 힘에 의해 화해의 단초가 잡히기 "영웅 안중근에 가려졌던 '청년 안응칠'에 바치는 책" 변진경 기자 김훈 작가(74)는 젊은 시절 우연히 안중근 신문조서를 읽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쏜 뒤 체포된 안중근 의사가 일본인 검찰관과 나눈 문답이었다. 김 작가는 “말 못할 충격”을 받았다. 안중근의 대의와 명분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김 작가는 ‘영웅 안중근’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서른한 살 ‘청년 안응칠(안중근의 아명)’을 읽어냈다.조서 속에서 안 의사는 자신의 직업을 ‘포수’ 혹은 ‘무직’이라 밝혔다. ‘어디를 겨누었느냐’는 질문에 ‘가슴을 겨누었다’고 답했다. 김 작가는 “강과 약의 이항대립으로 구성되는 이 세계의 벽을 작가가 되고 싶은 당신에게 하고싶은 이야기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엘렌 식수의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풍월당, 2022)은 글쓰기 책처럼 보이지만 글쓰기에 필요한 실용적인 조언은 없다. 어쩌다 글쓰기에는 “오랜 수습 기간이 수반”된다는 하나 마나 한 말도 있지만 그런 친절조차 희귀하다. 독자는 이런 불가해한 문장과 마주쳐야 하죠. “글쓰기를 시작하려면 죽음이 있어야 합니다.” 알제리에서 태어난 유대계 프랑스인 엘렌 식수는 그와 똑같이 알제리에서 태어난 또 한 사람의 유대계 프랑스인 자크 데리다와 함께 탈구조주의 비평을 구상했고, 평생 동안 그와 교유하며 공동으로 글을 쓰기도 했다. 페미니스트 팬데믹 속 죽음은 발전의 원동력 송병기 (인류학 연구자) 유년 시절, 겨울이면 혹여 감기에 걸릴까 전전긍긍했다. 감기라는 질병이 두려웠다기보다는 동네병원이라는 장소가 싫었다. 병원의 진한 소독제 냄새를 맡고, 할아버지 의사의 무뚝뚝한 표정을 볼 때면 몸이 굳었다. 병원에 가는 날은 건강에 대한 의사의 지루한 설교를 듣는 시간이었다. 의사는 진료실 벽에 걸린 커다란 액자를 등지고 앉아서 왜 아프면 안 되는지 열변을 토했다. 그 액자 안에는 “온 세상을 얻고도 건강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문장이 있었다. ‘온 세상’의 자리에 어떤 단어를 넣어도 말이 됐다. 예컨대 ‘친구’ ‘용돈 새로 나온 책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언론인 ‘안깡’ 안병찬김영희 지음, 나녹 펴냄“초년부터 나의 취재 전술은 축구공을 내지르고 돌진하는 ‘킥 앤드 러시’였다.”별명이 책 제목이 되었다. 1962년 〈한국일보〉 공채 견습 13기. 사회부 선배들은 햇병아리 기자에게 ‘안깡’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배짱과 뚝심, 취재원에 대한 잔혹할 정도의 집착으로 편집국에서 ‘깡’으로 불린 안병찬(〈한국일보 30년사〉).” 신문사 역사를 정리하면서 한 기자의 별명을 따로 설명한 경우는 드물다. 언론학자인 저자가 한국 언론사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기자 안병찬을 조명했다.후배 김훈의 음악 없이도 아주 잘 살 수 있지만… 배순탁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작가) 지금이 기회다 - 행복한 방구석 ⑲ 레너드 코언의 ‘할렐루야(Hallelujah)’ 신뢰하지 않는 몇 가지 선언이 있다. 그중 하나, 바로 “난 음악 없인 못 살아요”다. 음악뿐만이 아니다. 무엇을 논하든 간에 ‘절대’를 상정하는 문장은 언제나 불편하다. 예외를 허락하지 않고, 여지를 남기지 않아서 그렇다. 예외와 여지는 곧 가능성이다.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점에서 절대를 상정하는 선언은 크든 작든 폭력으로서 기능한다.괜히 돌려 표현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음과 같이 말해보겠다. 음악 없이도 우리는 잘 먹고, 잘 살 수 있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 전혜원 기자 “우리는 왜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넘어진 자리에서 거듭 넘어지는가. 우리는 왜 빤히 보이는 길을 가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날마다 도루묵이 되는가.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 우리는 왜 이런가.”지난 4월29일 38명이 숨진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화재를 두고 소설가 김훈은 이렇게 물었다. 그가 언급한 대로 4월의 참사는 처음이 아니다. 2008년 1월7일에도 같은 지역(경기도 이천) 냉동창고에서 화재로 40명이 숨진 바 있다. 그날엔 9개 업체 54명이 냉동설비 마무리 공사를 하고 있었다. 일부는 매일 신규 사망자 3명 [편집국장의 편지] 고제규 편집국장 매일 오전 10시 정부 책임자가 브리핑을 한다. “오늘 자정 신규 사망자 2명, 전체 사망자는 603명.” 언론은 브리핑을 매일 중계한다. 진단(Test), 추적(Trace), 치료(Treat)를 병행한다. 발생 장소를 공개한다. 회사명도 알린다. ‘안전 사회 만들기’ 캠페인 긴급문자도 자주 울린다.코로나19 방역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가 김훈의 글을 읽고 든 상상이다. ‘김국(편집국장으로 함께 일했던 그의 애칭)’의 사적 자아는 보수적이다. 그런 김국이 노년에 전향해 산재에 천착한다. ‘팩트 신봉주의자’ 김훈은 방역 대응이 일상적 새로 나온 책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이순신을 찾아서최원식 지음, 돌베개 펴냄“아직도 전선 열두 척이 있으니.”‘이순신 숭모’라는 ‘근대적’ 현상을 분석한다. 임진왜란 이후의 논공행상과 실록 등의 역사적 기록을 살펴보면, 근대 이전의 이순신은 민족·국민보다는 임금에 충성하는 신하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다. 이러한 이순신을 민족과 국민의 영웅으로 처음 호출한 이가 바로 단재 신채호다. 단재의 ‘수군제일위인 이순신’을 축으로 구보 박태원의 ‘이충무공행록’ 번역문,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에 등장하는 이순신, 김훈의 〈칼의 노래〉에 등장하는 이순신까지, 각각의 책에서 묘사된 이 이 주의 신간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디미트리오스의 가면에릭 앰블러 지음, 최용준 옮김, 열린책들 펴냄“혹시 진짜 살인에 관심 있으신지 궁금하군요.”세계대전이 휩쓸었던 20세기 초중반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스파이 소설’ 장르에서 최고 걸작이자 고전으로 이름 높은 작품. 영국의 추리소설가인 주인공 래티머가 어느 날 터키에서 시체로 발견된 악명 높은 국제적 범죄자이자 스파이 디미트리오스라는 인물에게 흥미를 갖게 되고, 유럽 곳곳을 오가며 그의 현란한 범죄 인생을 추적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체를 숨긴 채 유럽 각국의 온갖 범죄에 관여해온 수수께끼 같은 악 동물의 고통 위에서 호사 누리는 인간들 허진 (문학평론가) 김훈의 소설 〈흑산〉에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인물을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조선 말 ‘천주교’라는 ‘다른 꿈’을 꾸었던 사람들의 삶을 다룬 이 소설에는 정약전·정약현·황사영·정명련 등 실존 인물이 등장한다. 정약용의 맏형인 정약현은 명련이라는 딸을 두었는데, 정명련은 조선 후기의 천주교 지도자인 황사영과 결혼했다. 황사영은 1801년 일어난 신유박해의 실상과 대응책을 비단에 적어 중국 베이징의 구베아 주교에게 전달하려다 미수에 그치고, 처형당한 인물이다. 이 사건을 ‘황사영 백서 사건’이라 한다. 〈흑산〉에서 김훈이 정명련의 성 이런 ‘꼰대’가 이 사회에 많았으면… 변진경 기자 〈시사IN〉 기자가 꼽은 올해의 책“기자들에게 물으면 어때요?” 올해의 〈행복한 책꽂이〉를 어떻게 꾸릴지 고민하다 출판계 관계자에게 의견을 구했다. 많은 매체가 ‘올해의 책’을 선정한다. 대체로 출판평론가와 서평가 혹은 분야별 전문가의 조언을 바탕으로 한다. 그것도 좋지만 신간을 가장 빠르게 접하는 기자들이 잘 알지 않겠느냐는 의견이었다. 듣고 보니 그랬다. 〈시사IN〉 기자들은 매주 새로 나온 책을 접하고 신간을 소개한다. 책 담당 기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사IN〉 기자가 꼽은 ‘올해의 책’을 소개한다. 리스트는 다소 편향적이 동생의 억울한 죽음, 그 진실을 찾아서 김연희 기자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며 남매는 배를 잡고 웃었다. KBS 〈전국노래자랑〉에 나와 손담비의 ‘미쳤어’를 부른 지병수 할아버지가 화제였던 때다. 누나 김도현씨(29)가 동생 태규씨(25)에게 영상을 보여주었다. 제대 후 한 대기업의 사내 하청업체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던 태규씨는 계약이 만료돼 새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이었다. 지쳐 보이는 동생이 잠시라도 웃기를 바랐다. ‘할담비’ 동영상을 보며 웃었던 4월6일은 남매가 함께한 마지막 날이 되었다.4월10일 수원의 한 아파트형 공장 신축 공사 현장으로 일을 나갔던 태규씨가 돌아오지 못했다 당신에게 도착하기까지 [편집국장의 편지] 고제규 편집국장 몸무게 120g, 키 26㎝. 나는 작고 가볍다. 내가 품은 노동자들의 땀방울 무게는 무겁다. 먼저 〈시사IN〉 식구들 노동이 담긴다. 대학노트에 빼곡히 취재를 하고, 할리우드 구강 액션을 하고, 머리카락을 뜯고, 손톱을 물어뜯으며 온몸으로 마감한 뒤에야 나는 이 세상에 나온다. 매주 금요일 새벽, 파주에 있는 인쇄 노동자들의 밤샘 작업을 거쳐야 제 모습을 갖춘다. 끝이 아니다. 이때부터 독자를 향한 여정이 시작된다. 나는 고양우편집중국으로 보내진다. 전국의 우체국 노동자들 손을 거친다. 집배원 노동자들은 241원을 받고 나를... 언제 어디에서나 엄지로 집필한다 임지영 기자 ‘나의 iPhone에서 보냄.’ 배우 봉태규의 에세이집 〈우리 가족은 꽤나 진지합니다〉의 머리말은 이렇게 끝난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글을 써서 책 한 권을 완성했다. 처음에는 시간이 없어서 메모하듯 써내려갔다. 아이가 잠들었을 때 짬을 냈다. 핸드폰으로 쓰니 분량을 가늠하기 어려워서 평소보다 길게 쓸 수 있었다. 최근 〈딸에게 들려주는 한국사 인물전〉을 펴낸 김형민 PD도 출퇴근 시간을 활용해 글을 쓴다. 매주 〈시사IN〉에 연재하는 200자 원고지 15장 분량의 원고 절반을 스마트폰으로 쓴다. 책상 없이도 쓸 수 있다는 게 ... 역사를 품은 ‘검은 산’의 기억 고재열 기자 흑산도 동백나무 숲길을 걷다가 문득 소름이 돋았다. 어디서 많이 본 동백나무 숲 같아서 기억을 더듬어보니 강진 백련사에서 다산초당 가는 길에 본 숲과 많이 닮았다. 그랬다. 손암 정약전과 다산 정약용 형제는 같은 이유로 유배당했고 비슷한 풍경의 동백나무 숲길을 걸었을 것이다. 동백나무 숲길이 시작된 마을의 이름은 소사리였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마을’이라는 설명이 달린 마을이다. 섬에서는 드문 풍경이다. 예전에 소사리마을 사람들은 항구 마을에 땔감을 가져가서 팔고 쌀과 생필품을 구입해 마을로 돌아왔다고 한다. 소사리마을을 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