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고통 위에서 호사 누리는 인간들
  • 허진 (문학평론가)
  • 호수 652
  • 승인 2020.03.2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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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
이형주 지음
책공장더불어 펴냄
ⓒ한성원 그림

김훈의 소설 〈흑산〉에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인물을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조선 말 ‘천주교’라는 ‘다른 꿈’을 꾸었던 사람들의 삶을 다룬 이 소설에는 정약전·정약현·황사영·정명련 등 실존 인물이 등장한다. 정약용의 맏형인 정약현은 명련이라는 딸을 두었는데, 정명련은 조선 후기의 천주교 지도자인 황사영과 결혼했다. 황사영은 1801년 일어난 신유박해의 실상과 대응책을 비단에 적어 중국 베이징의 구베아 주교에게 전달하려다 미수에 그치고, 처형당한 인물이다. 이 사건을 ‘황사영 백서 사건’이라 한다. 〈흑산〉에서 김훈이 정명련의 성격을 서술하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신부 명련은 겨울에는 개밥을 데워서 먹였다. 개에게 먹이를 던져주지 않았고, 밥을 줄 때는 나무그릇이나 깨진 사기그릇에 담지 않고 질그릇에 담아서 주었다(〈흑산〉, 학고재, 2011).” 눈이 밝고 감수성이 예민한 독자라면,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정명련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동물(권)에 대한 책을 전문적으로 펴내는 출판사 책공장더불어의 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책공장더불어는 동물권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미 꽤 알려진 곳이다. 이 출판사는 오로지 동물에 대한 책만 낸다. 과학에 대한 책만 내는 출판사도 있고, 미술에 대한 책만 내는 출판사도 있고, 사진에 대한 책만 내는 출판사도 있지만, 동물에 대한 책만 내는 출판사가 한국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나는 무척 반갑게 느껴졌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책공장더불어가 사실상 동물에 ‘대한’ 책이 아니라, 동물을 ‘위한’ 책을 내는 출판사로 보였기 때문이다. 동물에 대한 책은 그 책을 읽는 사람을 위해서 출판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동물을 위한 책은 독자가 책을 읽고 난 뒤, 동물에게 기여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간된다. 즉 독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자기 계발을 위해서, 자녀 교육을 위해서가 아니라, 동물에 대해 지식을 쌓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동물에게 기여하고, 동물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책공장더불어의 책을 읽는다. 출판물의 다양성이 곧 그 사회의 지적·문화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척도라는 점을 생각해봐도, 동물(권)에 대한 책을 전문적으로 펴내는 책공장더불어의 존재는 소중하다. 덧붙여, 책공장더불어의 책은 “환경과 나무가 보호되어야 동물도 살 수 있”(이형주,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 2016)다는 신념에 따라, 폐지로 만든 재생종이에 인쇄되고 있다.

책공장더불어에서 나온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는 우리가 일상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폭력에 동참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불편한 진실을 상기시켜준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동물원에 한 번쯤 가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혹은 돌고래 쇼와 같은 동물 쇼를 본 적 있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타이나 캄보디아를 여행하다가 코끼리의 등에 타본 사람도, 루왁 커피를 마셔본 이들도, 몸에 좋다는 곰쓸개 즙을 먹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는 스페인에서 투우를 본 경험이 있는 사람도, 밍크나 라쿤의 털이 달린 옷을 입어본 사람도, 악어가죽으로 만든 가방이나 지갑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개를 먹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인간이 누리는 이 모든 호사와 편리함은 동물의 고통이라는 대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등에 사람을 태우는 코끼리는 ‘파잔(phajaan)’이라는 의식을 거쳐 길들여진다. 파잔은 코끼리를 나무틀에 가둔 뒤, 쇠꼬챙이로 여러 날 동안 반복해 찌르는 고문을 가해 코끼리의 자의식을 완전히 파괴하는 일이다. 파잔을 거친 코끼리는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 “‘사람을 등에 태우고 같은 길을 끊임없이 걷는’ 동물로 다시 태어난다.”

동물도 삶을 ‘영위’할 자격 있다

또 다른 사례로 고급 커피의 대명사로 꼽히는 루왁 커피는 사향고양이를 학대해 채취한 것이다. 사향고양잇과의 동물을 인도네시아에서는 ‘루왁(luwak)’이라고 부르는데, 이 고양이가 커피 열매를 먹고 난 뒤, 배설하는 똥에 섞여 나온 커피콩으로 만든 커피가 루왁 커피다. 원래 루왁 커피는 식민지 시대에 인도네시아의 가난한 농부들이 마시던 커피였다. 네덜란드인들이 운영하던 커피 농장의 농부들이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에 섞여 나온 커피 열매를 채취해 커피를 만들어 마셨던 것이다. 곧 루왁 커피의 독특한 맛은 네덜란드인 농장주들에게도 알려졌고, 이 커피는 서양에도 수출됐다. 루왁 커피가 서양에서 인기를 끌자, 인도네시아에서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을 채취하는 대신, 사향고양이를 잡아 가둔 뒤, 커피 열매를 먹여서 루왁 커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런 탓에 사향고양이는 평생 철창에 갇혀 살며, “커피 열매만 먹고 배설하는 일이 전부인 삶”을 살게 되었다.

이 밖에도 사육 곰은 쇠창살로 된 케이지 안에 갇혀서 배에 구멍이 뚫린 채 쓸개즙을 착취당하고, 투우에 동원되는 소들은 투우사의 안전을 위해 신체를 훼손당한 채 경기에 나온다. 투우에 대해 조금 부연하면, 이 책은 투우에 나오는 소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시야를 흐리게 하기 위해 눈에 바셀린을 바르고, 잘 듣지 못하도록 젖은 신문지로 귀를 틀어막거나 콧구멍에 솜을 집어넣어 호흡을 제한하기도 한다. 중심을 잡지 못하도록 다리에 부식성 용액을 바르거나, 민감한 생식기에 바늘을 꽂아서 움직임을 어렵게 하는 경우도 있다. …투우 경기에 나오는 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코에서 김을 뿜으며 달려드는 힘이 세고 폭력적인 야수가 아니라는 뜻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럽고 불안한 데다 이미 당할 대로 당한 고문으로 아프고 지쳐 있는, 극도로 겁에 질린 동물일 뿐이다. 깜깜한 곳에 갇혀 불안함에 떨던 소는 경기장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면 살기 위해 빛이 보이는 곳으로 온 힘을 다해 질주한다. 그러나 고통의 끝인 줄로만 알았던 불빛 너머에서 기다리는 것은, 그들에게는 고문과 같은 한 시간이 넘도록 진행되는 투우 경기와 자신의 죽음 앞에 환호하는 관중들이다.”

동물이 겪고 있는 이러한 학대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이유는 첫째로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삶을 영위할 자격이 있기 때문이고, 둘째로 동물이 겪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품격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수준은 그 나라에서 동물이 어떤 취급을 받는가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고다마 사에, 〈유기동물에 관한 슬픈 보고서〉, 책공장더불어, 2019)”라고 한 마하트마 간디의 말처럼, 동물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사람도 저렴한 대우를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타자에게서 ‘편리’와 ‘이익’을 취하는 대신, ‘불편’과 ‘손해’를 자발적으로 감수하는 선한 사람들이 무한히 더 많아지기를 나는 소망한다. 그런 세상에서라면, 모두가 강자가 되려고 애쓸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물에 대한 연민은 결국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를 사랑하는 마음과 맞물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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