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기자가 꼽은 올해의 책

“기자들에게 물으면 어때요?” 올해의 〈행복한 책꽂이〉를 어떻게 꾸릴지 고민하다 출판계 관계자에게 의견을 구했다. 많은 매체가 ‘올해의 책’을 선정한다. 대체로 출판평론가와 서평가 혹은 분야별 전문가의 조언을 바탕으로 한다. 그것도 좋지만 신간을 가장 빠르게 접하는 기자들이 잘 알지 않겠느냐는 의견이었다. 듣고 보니 그랬다. 〈시사IN〉 기자들은 매주 새로 나온 책을 접하고 신간을 소개한다. 책 담당 기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사IN〉 기자가 꼽은 ‘올해의 책’을 소개한다. 리스트는 다소 편향적이다. 기준은 오로지 기자 개인. 각자의 취향과 관심사를 반영했다. 

 

내 주변 많은 이들은 김훈의 글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너무 꼰대스럽다’는 것이다. 주제도 그러하고 문장도 그러하다고들 한다. 여성과 아이를 표현할 때 지나치게 대상화하고 중장년 남성들이나 좋아할 만한 비장미만 잔뜩 둘러친 글이라는 비판들을 한다. 그럴 때 나는 입을 다문다. 김훈의 글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이다.

스무 살 무렵 김훈이 〈한겨레〉에 쓴 ‘거리의 칼럼’을 읽고 충격을 받은 뒤 그의 책이 나올 때마다 빠짐없이 사서 읽었다. 새 책이 나올 때마다 늘 밑줄을 그으며 그의 문장들을 사랑해왔다. 올해 봄 나온 산문집 〈연필로 쓰기〉도 마찬가지다.

책의 1부 세 번째 산문에는 ‘꼰대는 말한다’라는 소제목이 달려 있다. 이 산문에서 김훈은 자신의 주례사를 소개한다. “…삶이 요구하는 형식을 존중하라. 삶의 내용은 형식에 담긴다. 형식이 소멸하고 나서도 존재할 수 있는 내용은 그다지 많지 않다. 좋은 형식은 인간을 편안하게 해준다. 나의 부모에게 잘하는 것은 쉽고, 나의 배우자의 부모에게 잘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이 쉽지 않은 형식에 익숙해져라. 내 배우자 부모의 생일, 기념일, 안부를 챙기고 명절 때 인사하라. 이런 진부한 일상의 소중함을 알라.”

이 잔소리 같은 주례사에 나는 또 밑줄을 그었다. 진보 매체에서 주로 진보적인 주제의 기사들을 쓰며 사는 나는 그가 설파하는 보수주의와 전통주의가 싫지 않다. 개혁과 변화는 짜릿하지만 전통과 안정에서 오는 달콤함과 아늑함도 분명 이 세상에 필요하다. 꼰대가 “이런 말 좀 꼰대 같지만…”이라고 시작하는 꼰대 같은 말에 우리 젊은이들이 조금 더 귀를 기울여봐도 좋지 않을까 종종 생각한다.

물론 아무 꼰대의 말이나 다 사랑할 순 없다. “나의 글은 다만 글이기를 바랄 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당신들의 긍정을 기다리지 않는다”라는 책의 서문처럼 작가는 세간의 일에 대개 시큰둥하고 퉁명스럽지만, 유독 두 가지 이 시대의 사건에 크게 반응하고 동요하는 모습을 보인다. ‘세월호’와 ‘김용균(으로 대표되는 젊은 노동자들)’이다. “자식 잃은 엄마들이 산 위에서 울고 물가에서 울던” 그 봄에 목포항·팽목항·동거차도·서거차도에 머물면서 이리저리 기웃거린 작가는 매해 세월호 주기가 돌아오면 그답지 않게 다소 격정적인 산문을 쓴다(‘동거차도의 냉잇국’, ‘살아가는 사람들’). 생명안전시민넷이라는 시민단체의 공동대표를 맡은 작가는 공장 기계 속에 몸을 숙이고 들어가는, 자전거용 헬멧을 쓴 채 빗길 속에 오토바이를 몰아 짬뽕을 배달하는 젊고 위태위태한 노동자들의 삶을 끊임없이 걱정한다(‘아, 100원’). 오랜 시간 응시하고 뜨거운 연민과 죄책감을 글로 토로한다. 이런 꼰대가, 이런 어른이 우리 사회에 좀 더 많았다면 실로 많은 것이 바뀌었으리라.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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